갑상선과 이별하고 첫날밤
갑상선 없이 보낸 첫날밤이었다. 갑상선의 부재에 대한 감상에 젖어있을 새도 없이 그날 밤의 모든 순간은 참 치열했다. 혼자서는 물을 마실 수도, 고개를 들 수도 없었다. 심지어는 바닥으로 떨어진 무통 주사 조절기를 주울 수도 없어서 밤새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수술을 하고 기침을 세게 하면 수술 부위가 벌어질 수 있다는 말을 들은지라 기침이 나오려 할 때마다 얼굴이 빨개지도록 참고 빨대로 물을 마셨다. 물 마시고 무통 주사 버튼 누르고, 또 물 한 모금 마시고 무통 주사 버튼 누르고, 이 반복이 지겨워질 즈음 간호사님이 오셨다.
간호사님은 매일 새벽 네 시쯤 오셨다. 아침마다 채혈을 하고 체온을 쟀다. 입원 기간이 길지 않았음에도 금방 이 패턴에 적응해서 잠을 자는 동안 피를 뽑는 경지에 이르렀다. 비몽사몽간에 간호사님이 다녀가시고 한참을 더 자다 일어나면 6시가 되었다. 병원이란 아침형 인간이 될 수밖에 없는 곳이다. 7시가 되면 밥 냄새가 솔솔 난다. 병원도 사람 사는 곳임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식사 시간이 되면 침대에 연결된 밥상을 펴 놓고 여사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린다. 각자 이름이 쓰인 플라스틱 식기를 받으면 식사가 시작된다. 환자마다 먹는 음식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이름을 꼭 확인하고 먹어야 한다. 나처럼 수술 직후이거나 소화기 관련 수술을 한 환자는 보통 흰 죽을 먹었고 어떤 환자는 일반식을 먹기도 했다. 또 어떤 환자는 금식 중이라 흰 죽이나마 먹는 환자를 부럽게 바라보기도 했다.
밥을 먹고 나면 보통 소화를 시키러 나갔다. 병원 실내에서 가장 긴 구간을 찾아놓고 그 구간을 한 바퀴 돈다. 외래 환자들과 직원들, 나처럼 조금이나마 걸으려고 온 입원 환자들이 뒤섞여 복잡했다. 병원 건물 두 동을 연결하는 구름다리에는 늘 입원 환자들 서넛이 앉아서 햇빛을 쬐고 있었다. 나도 그 대열에 동참했는데, 통유리로 된 구름다리가 그나마 실내에서 가장 햇빛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옥상에 있는 하늘정원으로 나가자니 아직은 바람이 서늘해서 건물 안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구름다리는 입원 환자들에게 바깥세상과 병원을 이어주는 공간이었다.
가끔은 오후에 연주회가 열리기도 했다. 무료한 병원 생활에 1층 로비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는 큰 즐거움이었다. 입원 중이 아니었다면 휙 지나쳐 버렸을지도 모를 공연이지만 일부러 시간을 맞춰 로비로 내려갔다. 조금만 걸어도 목과 가슴이 당겼고 머리는 어지러웠지만 그래도 걸어 다닐 수 있음에 감사했다. 짧다면 짧은 입원 기간 동안 나름 적응해가며 하루하루 회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