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옴 Nov 15. 2019

13. 수술 디데이

차갑고 하얀 수술실

조금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의연하게.     


내 수술은 오후 1시로 정해져 있었다. 물론 앞 환자 수술이 제시간에 끝난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12시가 되어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 어차피 할 거라면 빨리 부르길 바랐다. 그래야 이 어정쩡한 초조함이 끝나지 않겠는가. 빨리 끝내고 나와서 밥이나 먹고 싶다고 괜히 투덜거렸다. 그 투정 뒤에 초조함을 감추었다.   

       

예정보다 30분쯤 더 지나서 드디어 내 이름을 불렀다.     

“OOO님, 이제 수술실 내려가실게요. 압박스타킹은 신으셨죠? 노란 고무줄로 머리 묶으세요.”   

  

수술 후기에서는 머리를 양갈래로 묶어야 한다고 배웠는데 이 병원은 그냥 하나로 묶으라고 했다. 유치원생 이후로 오랜만에 양갈래 머리 한번 해보나 싶었는데 아쉬웠다. 압박스타킹을 신고, 노란 고무줄로 야무지게 머리를 묶고, 이송 요원이 준 삼선 슬리퍼를 신고, 수액걸이를 질질 끌면서 수술실로 내려갔다. 두 다리가 멀쩡해서 그런지 수술실까지, 심지어 수술 침대까지도 내 두 다리로 걸어 올라갔다. 가족들에게 침대에 눕혀져서 실려가는 모습 보이기 싫었는데 다행이었다.     


드라마를 보면, 비련의 주인공이 병원 침대에 누워서 수술실로 실려갈 때 침대 양 옆에 가족들이나 사랑하는 연인이 주인공 손을 잡고 울먹였다. 현실은 드라마와는 달랐다. 나는 쿨하게 “갔다 올게~”멘트를 날리고 뚜벅뚜벅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 수술실 안에도 수술방이 여러 개 있어서 나 말고도 다른 수술 환자들이 같이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서 눈만 꿈뻑꿈뻑하시는 할머님 환자분, 감정에 복받쳤는지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마는 아주머니 환자분 등등 누워계신 환자분들 사이를 비집고 내 수액걸이를 밀고 씩씩하게 걸어 들어갔다.     


수술실에만 내려가면 바로 수술을 받는 줄 알았건만, 수술실 안에도 대기 공간이 있었다. 수술실 앞까지 배웅해준 가족들과 친구에게 멋지고 쿨하게 인사하고 들어왔건만 잠시만 여기서 대기하라는 간호사님의 말에 의자에 앉아서 기다렸다. 그 와중에 새로 들어오고 나가는 환자들 때문에 계속 수술실 문이 열렸다. 멋지게 마지막 인사를 했는데 자꾸 문이 열려서 눈이 마주치니 멋쩍은 미소만 지었다. 대기 공간에서는 헤어캡을 쓰고 항생제를 맞았다. 내가 본 수술실은 마치 바쁜 공장 같았다. 각각의 수술방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오가는 의료진들, 수술 대기 중인 환자, 수술이 끝나서 회복 중인 환자. 정신없는 수술실 광경을 구경하고 있다 담당 간호사가 다가왔다. 다시 한번 내 이름과 생년월일, 수술 부위를 확인하고 나를 수술해줄 로봇이 있는 내 수술방으로 들어갔다.     


간호사님의 안내에 따라 내가 수술받을 방으로 걸어갔다. 수술방으로 들어서자 실습 나온 의대생으로 보이는 청년 두 명이 나에게 인사했다. 반사적으로 나도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내에 따라 수술 대위에 올라가 누웠다. 여러 겹의 천 같은 것으로 나를 덮어 주었고, 큰 벨트 같은 것으로 몸이 움직이지 않게 묶었다. 미리 덥혀 놓은 것인지 수술대는 따뜻했다. 마취가 잘 되고 있는지 확인해주는 장치라며 얼굴과 몸에 이것저것 붙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마취 가스로 추정되는 것을 코 위에 가져다 대고 깊게 숨을 쉬라고 했다. 이 모든 것이 불과 1~2분 내에 일어난 일이었다.     


“심호흡하세요. 하나, 두울...”     

그리고는 기억이 없다. 다시 눈을 뜨자 하얀 천장이 보였다. 그곳은 너무 추웠다. 이가 딱딱 부딪힐 정도로 추워서 옆에 보이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춥다고 얘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수술 직후라 목소리가 크게 나지 않았고 다들 바빠 보였으며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덜덜 떨며 조금 기다리니 누군가 옆으로 다가왔다.    

 

“추워요... 너무 추워요.”     

내가 절박해 보였는지 다행스럽게도 그분은 내 말을 알아듣고 이불 안에 온풍기를 가져다 넣어 주셨다. 따뜻한 바람이 들어오니 한결 살 것 같았다. 그래도 여전히 너무 추웠다.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할 정도로 추워서 이를 악물고 있는데 침대가 움직였다. 병실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수술실 문이 열리니 어머니가 보였다. 병실에 도착하니 이미 늦은 밤이어서 다른 환자들은 대부분 자고 있었다. 간호사 몇 명이 붙어서 나를 침대로 옮기고 옷을 입혀 주었다.          


전신 마취를 하게 되면 자가 호흡을 할 수 없다. 장시간의 수술로 쪼그라든 폐를 펴려면 마취가 깬 뒤 심호흡을 2~3시간 정도 해야 한다. 두 시간 동안 잠도 자지 못한 채 딱 두 가지 일만 했다. 무통 주사 버튼 누르기와 크게 심호흡하기. 무통 주사가 몸에 맞지 않는 사람은 구토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아프다고 무통 주사 버튼을 마구 누르면 진통제가 한꺼번에 많이 들어가서 속이 울렁거렸다. 목에 힘이 안 들어가서 고개조차 들 수 없는 이 와중에 토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끔찍했기 때문에 무통 주사 버튼을 적당히 눌러야 했다. 아플 기미가 보인다 싶으면 한 번씩 눌렀다. 또 한 가지 중요한 할 일은 심호흡이었다. 폐를 크게 편다 생각하고 깊게 숨을 내쉬고 들이마셨다. 이 두 가지 일을 최선을 다해 두 시간쯤 하다 보니 이제 물을 마셔도 되고 잠을 자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깊은 잠을 잘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마음 편히 눈을 감아 보았다.     

이전 12화 12. 환자복을 입어보니 제 소감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