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안개 Mar 15. 2021

아이는 안 키워봐도 될 것 같아요

아기 강아지와의 첫 사흘

생후 두 달 된 강아지의 첫 사흘

신장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니요

스웨덴에서는 "강아지를 입양했다"는 게 수주 이상의 장기 휴가를 납득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 이전에 유기견 입양을 알아보던 때 입양 기관에서 제시한 질문지에도 그런 항목이 있었다. 입양 후 적어도 첫 2-3주는 휴가를 내고 함께 지낼 수 있느냐는. 성견을 입양해도 이처럼 적응기간이라는 게 필요한데, 갓 엄마 젖을 뗀 새끼 강아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아기를 키워보지 않아 직접 비교할 수는 없지만, 첫 3일 만에 우리는 이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익히 들어 알고 있고 마음의 준비도 했다지만 몸으로 경험하는 그것은 또 달랐다.



너도 나도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하루 종일 물을 마시고 하루 종일 집 안 여기저기를 뽈뽈뽈 돌아다니며 오줌을 쌌다. 하루 종일 쫓아다니면서 먹으면 안 되는 것을 입에 넣지는 않는지 위험한 곳에 가지는 않는지를 주시하고 똥오줌을 치우다 보면 어느덧 하루도 다 저물어 가고 저녁 무렵이 되었다. 밤이 되어 거실 한가운데를 꽉 채우는 넉넉한 사이즈의 퍼피용 펜스 안에 살포시 넣어 재우려는데, 우리가 침실에 들어가기 무섭게 온 집안에 쩌렁쩌렁 울리도록 비명을 지르며 울어대는 통에 강아지도 우리도 그 누구도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아직 우리와 유대감이 생긴 것은 아니고, 엄마와 형제들이 있던 집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이 아팠다. 중간중간 나가서 들여다보면 잠시 멈추는가 싶다가도 눈에서 안 보이면 또 울고, 그걸 반복하다 강아지도 지쳤고 나도 지쳐서 잠이 든 것 같다.



둘째 날 아침.

전날 밤에는 울어도 계속해서 내버려 두면 그러다 마는 건가 싶었는데, 다음 날 아침 거실에 나왔을 때 문제의 심각성을 확인하게 되었다. 새로 사다 준 꽤 근사했던 강아지 침대는 분노로 물어뜯은 흔적(안에 들어 있던 솜이 바깥으로 흘러나와 있었는데, 그마저도 껌처럼 씹고 있었다)과 함께 다 망가져 있었고, 똥을 싸고 그 위를 지나간 흔적, 심지어 먹어 없앤 흔적까지 아주 가관이었다. 



둘째 날 밤.

이날 밤은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예상했다는 듯 시작부터 감정표출이 더 강력해진 느낌이었다. 벽을 무너뜨리겠다는 건지 이제는 멀쩡히 세워둔 펜스를 향해 일부러 몸을 던져 흔들어대고, 나중에는 펜스 위로 넘어가려고 담장 타듯 올라타는 소리마저 들렸다. 삑삑 우는 소리, 펜스와 씨름하는 소리가 20분 정도 들렸을까. 얼마 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잠잠해진 거실. 방 안에서 귀를 기울이며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가 불길한 적막감에 서둘러 나가 보니, 40cm 높이의 펜스를 뛰어넘고서 착지하다 아팠는지 잠시 그대로 누운 채 그 큰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는 아기 강아지가 있었다. 얘를 정말 어쩌면 좋아... 이건 다시 안아서 넣어봤자 의미가 없었다. 얘는 이미 펜스는 넘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펜스를 아주 치워버릴 수는 없기에 난감했다. 퍼피들은 행동반경을 제한해주지 않으면 밤새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똥오줌을 싸는 것은 물론 전기코드를 잡아 빼거나 질겅질겅 씹는 등 위험한 행동을 벌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이날부터 우리는 강아지 펜스 옆 소파에서 쪽잠을 자게 되었다.



셋째 날 밤.

이제는 당연하게 거실 소파에 이불을 깔고 눕는다. 어차피 타고 넘어가 버릴 펜스, 그거 뛰어넘도록 두는 게 더 위험한 것 같아 치워버렸고, 자꾸 솜뭉치를 먹으니까 이틀도 못 쓴 침대 역시 쓰레기 통으로 들어갔다. 강아지 이빨에 구멍난 침대를 꿰매 줘 봤더니, 꿰맨 그 자리가 울퉁불퉁한 게 건드리기 좋은지 거기만 집중 공략하는 탓에 손을 들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떠나온 집 생각, 옆에서 살붙이고 자던 형제들 빈자리가 아쉬워지는건지 아기 강아지는 여전히 삑삑 울 때가 많았지만, 그래도 우리 중 누가 옆에 누워 있으면 아기 강아지의 반응도 훨씬 나았다. 금세 조용해져서는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위아래로 크게 몸이 들썩였다. 그렇게 우리 중 한 사람은 소파에서, 강아지는 바닥에 깔아 둔 폭신한 매트 위에서 잠을 청했다. 새벽녘 변의를 느낀 강아지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응가 냄새를 풍기기 시작할 때는 벌떡 일어나서 똥을 치웠다. 그러지 않으면 촵촵촵 방금 나온 변을 먹어 없애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껏 딱히 "아기를 꼭 갖고 싶다" 혹은 "아기는 낳고 싶지 않다"에 대해 명확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편은 아니었는데, 강아지가 온 지 사흘 만에 이런 생각은 들었다. 

'아기.. 는 더 힘들겠지..? 그렇다면 나는... 강아지 열심히 키워야겠다... 졸립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기 강아지도 성질을 내는 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