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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해로 Jun 10. 2021

군인의 계급장과 청춘의 자존심

9. 아름답다는 이유로 꽃을 꺾지 말라

군복을 입은 젊은이들을 보면 가슴이 짠하다. 부모들의 욕심으로 경쟁력이 심화된 한국사회에서 친구들과 순위 경쟁하며 의무교육을 마치고, 세상의 자유를 만끽할 20대 초반에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익숙했던 자신의 습관들을 버려야 한다. 


자신의 청춘을 잠시나마 국가에 맡길 수 있는 것은 국가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춘의 믿음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망망대해의 일엽편주(一葉片舟)처럼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국가의 외면으로 절망을 겪고 있는 군인들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군복을 입은 청춘들이 적이 아니라 상관에 의해서 목숨을 잃고 있다.  

   

군인이 국가를 신뢰한다는 것은, 내가 목숨 걸고 지키려는 국가가 내 목숨과 내 가족을 지켜줄 것을 믿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군대의 체계를 따르고 상명하복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현재 평상시 군대에서 상관의 명령에 절대복종해야 하는 군대의 규율이 적으로부터 나와 내 가족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은 없다. 상명하복의 지휘체계는 자본주의 군대의 괴물이 되어 청춘들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적보다 더 조심해야 할 추악한 상관과 진실 앞에서 뻔뻔스러운 계급장은 군대의 존재가치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군복에서 계급장은 절대적이면서 명예로운 것이다. 계급이 높을수록 군인으로서 책임이 무거워지고 해야 할 업무도 중요해진다. 작대기 하나 이등병에서 별 4개의 대장까지 모두 국가의 중요한 자원이지만 계급사회의 특성상 상급자와 하급자의 관계는 매우 특별하다. 명령은 상급자가 내리고, 실행은 하급자가 하기에 상관의 말 한마디에 졸병의 운명이 바뀌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올바른 상관을 만나서 군인의 책무를 다하는 것이고, 운이 나쁘면 양아치 같은 상관을 만나서 괴롭힘을 당하다가 짐승처럼 비참한 시간 속에서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이다. 

     


오늘도 20대의 젊은 청춘이 목숨을 잃었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여자의 몸으로 부사관이 되어 공군 제20 전투비행단에서 근무하던 중사였다. 애석하게도 수십 년 전부터 있었던 성범죄 때문이었고 사회와 격리된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을 이용해서 피해자를 회유와 협박으로 일관하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상명하복이라는 군대의 특수성을 이용한 범죄이니 조용히 묻히리라 생각했던 군 지휘체계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불안하다. 아름다운 여자라는 이유로 생명의 꽃망울을 무참히 짓밟아버린 군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겠다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 아닐까’하는 마음이다.  

   

남성들이 절대다수로 많은 군대라는 집단에서 '어머니'라는 단어는 절대적이다. 모든 남성들에게 어머니는 가장 숭고(崇高)하지만, 군인들의 어머니는 그리움에 사무치는 숭고함이다. 수많은 적들과 맞서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순간에도 어머니와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목숨도 두렵지 않다. 그리고 외롭고 힘들 때 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에 위안이 되고 힘이 솟는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갖고 있는 모성애는 전 세계의 귀감이 될 정도로 위대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어머니가 되어야 할 여성을 성추행하고 희롱하는 것은 도대체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이란 말인가? 짐승보다 못한 행동을 하는 군인들의 계급장에 국민들의 분노가 불타오른다. 군인들은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 몸과 정신을 강하게 단련시켜야 한다. 그런 군인들의 몸이 향락(享樂)에 젖어 쾌락을 좇고, 정신은 나약하여 이성을 잃어 집단 이기주의를 만들고 있다. 적과 싸워서 이겨야 하는 군인정신을 잊고 보고와 신속대응이라는 군대의 원칙을 어기면서 집단 이기주의와 타협하려 한다면 위험하다. 몸은 자본주의의 이기적인 체질로 게을러지고, 계급은 사리사욕을 채우는 수단이 되고, 군대의 규율은 진실을 덮는 악마의 율법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은 자유와 평등, 인간의 존엄성 그리고 박애정신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들은 생명의 존엄성과 자유와 평등을 외치면서 자연스럽게 인간을 상류층, 중산층, 하류층으로 나뉘고, 권력적 계급사회를 만들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정의로운 법은 권력층과 상류층에게는 특별한 혜택을 주고, 그렇지 못한 사회적 약자들인 하류층에게는 법의 공정함을 이유로 준엄하게 심판하고 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던 국가도 법률의 편견 앞에 널브러진 불평등과 불공정 그리고 추악한 정의를 외면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법이 돈과 권력의 맛을 알게 되자, 법의 여신은 눈을 가리고 공정과 정의를 바라보지 못하게 되었다.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 눈을 가렸던 법의 여신은 결국은 공정과 정의까지 잃게 된 것이다. 그리고 불합리한 공정과 추악한 정의는 제복의 계급장에서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법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지 못하면 1980년 5.18 광주민주화항쟁이나, 현재의 미얀마처럼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는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군인들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는 것은 비극을 넘어 참극이다.  

   

끊이지 않는 성추행과 성폭행에 관한 범죄는 남성의 잘못된 성인지 감수성에서 비롯되는 경향이 크다. 우리나라는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유교적인 사상에서 기인한 오랜 관습이 낳은 남아선호 사상도 한몫을 하고 있다. 남성은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잘못된 생각이 여성들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무시하고, 싫다고 거절해도 좋다는 뜻으로 인지하거나 강제적으로 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성 평등을 위한 과목이나 성인지를 위한 교육을 하고 있지 않다. 행정부는 성에 관한 사회적 인식 변화를 위한 정책을,  입법부는 성범죄 예방을 위한 법률적인 제도를, 사법부는 일벌백계(一罰百戒)하여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깨우치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와 국민이 안일하게 생각하는 동안 총제척인 문제가 쌓여서 지금의 성범죄를 키워나가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청춘들이 치욕스러운 성범죄를 당하고 회유와 협박으로 목숨까지 버리고 나면 이와 관련된 어른들의 태도는 너무나 뻔뻔스럽다. 매 년 반복되는데도 '앞으로 재발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 거나 ‘엄정하게 조사해서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하겠다’라는 말 뿐이다.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를 악용하는 범죄자들의 인터뷰를 보면 더욱더 기가 막히다.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들의 표정을 보면, 재수가 없어서 걸렸다는 듯이 무덤덤한 불만이 베여있다.  

   

오늘도 공군 제20 전투비행단 이 중사의 영정에 청춘들의 서러움이 켜켜이 쌓여가고 있다. 나는 조용히 기도해 본다.


법의 여신 ‘아스트라이아’여, 이제 가린 눈의 매듭을 풀어 온 세상을 바라보소서. 당신의 저울 속에 담긴 불공정과 불공평의 균형을 맞추려고 법 경전을 들고 있는 모습은 안타까울 뿐. 그리고 당신이 쥐고 있는 칼은 범죄자가 웃을 정도로 무디어져 있소. 당신의 법을 가지고 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거나, 정당하지 못한 법 집행을 하는 자의 가슴에 당신의 칼을 꽃아 붉은 피로 당신의 잘못을 용서받아야 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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