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미셸 오바마처럼?
Dignity는 위엄, 품위, 존엄성, 자존감, 자부심으로 번역되는데 영어로 유사한 단어 중 내게 가장 와닿는 단어는 decency (품위)와, self-respect (자기 존중)이다.
Dignity란 단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마도, 고1 때쯤 휘트니 휴스턴의 The Greatest Love of All이란 노래를 통해서였다. 내 기준,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컬리스트인 그녀의 영혼이 담긴 창법과 아울러 가사를 찬찬히 들여다보았을 때 받았던 충격을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게는 팝송이 아니라 '자유 선언문' 또는 영혼이 길을 잃을 때마다 들여다봐야 하는,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길을 알려주는 지도 같았다.
I decided long ago never to walk in anyone′s shadow If I fail, if I succeed at least I′ll live as I believe No matter what they take from me they can′t take away my dignity
난 오래전에 결심했죠. 내가 실패하던지, 성공 하든지 간에 그 어떤 누구의 그늘에서 걷지 않겠다고. 그들이 나에게서 무엇을 빼앗아가든지 상관없이, 나의 '존엄' (dignity)를 가져갈 순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그때 이후로, 나에게 dignity는 내가 인생을 사는 동안 주변인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그들은 또 나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한다면 그것이 나의 '존엄'을 지켜주는 일인지를 염두에 두고 결정하게 하는, 내 영혼의 오장육부 가장 깊숙한 곳에 깔린 배짱 같은 '기준'이 되었다.
나는, 내 삶의 전투력이 떨어질 때마다 노래방에 가서 The greatest love of all을 불렀다. 취준생 시절 백 군데 넘는 곳에 이력서를 냈지만 면접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때에도, 어렵게 들어간 조직에서 가장 좋은 성과를 내도, 계약직이란 이유로 차별 대우를 받으며 일할 때에도, 노래방 갈 기회가 생기면 나를 위해 이 노래를 부르며 나의 '존엄'이 내게 아직 짱짱하게 살아 있다고 부르짖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 안에 활활 타오르던 열정 화산이 폭발하던 때, 안정적인 회사 생활을 때려치우고 내가 좋아하는 일로, 잘하는 일로 자아실현을 하며 '존엄하게'살아 보겠다며 프리랜서 선언을 했다. 내가 자신을 더 존중하는 삶, 나답게 사는 삶이 될 것이라 호기롭게 프리랜서로 전향하고 지낸 지 14년이 넘었다.
그 시간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 계속하고 싶은 일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나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한없이 취약하며, 타인에게 보이는 내 모습에 늘 불안해하며 지냈다. 일이 끊어지면, 이 업계 어디선가 나에 대한 평판이 곤두박질쳐서 바닥을 벅벅 기고 있을 거란 상상을 하고, 다시 일을 하게 되면 안 좋은 피드백이 나올만한 싹을 자르기 위해 논란의 여지없이 무조건 '잘하기만'하는 상태가 되어야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나 자신을 '존엄하게' 대우할 수 있는 삶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졌다.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는 일의 횟수와 포트폴리오의 레퍼런스를 채우는 것처럼 살다가 1년 전, 어지럼증이 찾아오면서 나의 삶은 극도로 취약한 상태가 되었다. 무기력과 우울감을 동반한 어지럼증은 그동안 내가 무엇을 진심으로 찾고 있었나를 돌아보게 했다. 그 과정에서 내 삶을 관통하며 지나간 '단어들'을 끄집어 내 성찰한 이후의 나는 다시 나의 '존엄'을 찾는 출발선에 선 기분이다.
나는 무엇이 제일 두려운 것일까?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일까?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포기할 수 있을까?
십 년 후의 내 모습을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무겁고 육중한 질문들 중 몇 개는 선명하고, 몇 개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며, 어떤 것은 죽을 때까지 답을 못할 것 같다. 글을 쓰며,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헤매던 중 며칠 전, 미국의 민주당 전당대회에 전 미 대통령인 오바마와 그의 아내 미셸 오바마가 새로 지명된 카말라 해리스 후보를 위한 지지 연설을 하는 것을 보게 됐다.
원래도 미셸 오바마의 광팬이었던 나는 그녀의 '컴백'이 너무나 강렬했다. 나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그녀의 카리스마와 연설력에 그녀가 얼마나 걸출한 인물인가를 '다시'되새기고 있다. 21세기 가장 뛰어난 연설가로 평가받는 *오바마조차 그녀 바로 뒤에 연설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유머러스하게 말했을 정도이다.
그녀의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을 보며, 나는 dignity의 '육화'를 체험한 기분이었다. 정치적 배경과 공과는 차처 하고, 남편의 정치 인생을 위해 뒤에서 뒷바라지하며 백악관의 '안주인'으로 살아야 했던 시간 동안 '미셸'이란 한 여성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 스스로가 '정치적 거물'급의 재능과 역량을 가졌지만 많은 이의 바람과 달리 그녀는 정치계에 절대 발들이지 않겠다 선언했고, 이번에도 다른 이의 배경이 되어주길 자처했다.
그러나, 그녀의 자유로움이 물씬 풍겨 나는 아프로 헤어스타일과, 여전사의 전투복을 연상시키는 의상, 논리와 라임을 딱딱 맞춘 발성과 설득력, 무엇보다 자신을 천박하게 깎아내리는 상대(Donald Trump)를 가장 고급스러운 유머로 희화화하는 그녀의 재능에 나는 미친 듯이 박수를 보냈다.
'취약성'에서 출발한 '나를 안아준 단어들'의 마지막 피스는, 화염 방사기 같은 에너지를 가진 미셸 오바마 덕에,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dignity가 되었다. (그녀 또한, 자신의 연설 중 미국 민주주의의 dignity를 위해 일어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To stand up, not just for our basic freedoms but for decency and humanity; for basic respect, dignity, and empathy; for the values at the very foundation of this democracy.")
전 미대통령의 영부인이었던 미셸 오바마와 같은 삶을 살고 싶지도, 살 수도 없겠지만 나는 그녀가 흑인으로써, 여성으로서, 누군가의 그늘에 가리어져 지내야 했던 사람으로서 자신의 삶을 충만하게 살아온 것에 영감을 얻는다. 유명세를 등에 업은 백만장자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연설을 들으면 허상을 쫓아 사는 사람은 절대로 할 수 없는 진정성과 위엄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뚝뚝 떨어지는 삶의 진정성과 가치관이 그녀의 빛나는 재능과 어우러져서 폭발할 때는, 냉소주의와 무력감에 주저앉아 있던 이들이 벌떡 일어나 그녀의 POWER HOUSE로 걸어 들어가게 되는 순간이다. 나 또한 그 무리들 중 한 사람이 되었다.
무엇이 될지, 어떻게 이뤄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dignity란 단어를 알게 된 순간부터 나와 다른 이의 '존엄'을 지키며 살고 싶었던 17세의 나는 마흔 살이 넘어서 인생 중후반부에 내가 그리는 '존엄한 삶'이 어때야 할지 상상해 본다.
'내가 오래전에 결심했듯이'(I decided long ago), 다른 이의 감정을 위해 살지 않으며, 그것이 나 자신일지라도 나를 존중하지 않는 것에 no라고 말하며, 내게 주어진 사람들을 끝까지 품고, 그들의 삶이 '존엄'과 '존중'으로 나아가는 것을 지지하며, 빛나는 재능이 무관심과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나 자신을 믿어주는 믿음 한 스푼이 필요할 때 내면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는 것이, 나에겐 새로운 '존엄한 삶'의 첫걸음이 될 것 같다.
"나를 안아 준 단어들"의 연재를 11화로 마감합니다.
그동안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공감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브런치에서 계속 글로 뵙겠습니다.
* 오바마는 전당 대회에서 자신의 연설 초입에 , 'I'm the only person stupid enough to speak after Michelle Obama'(나는 미셸 (바로) 뒤에 연설할 만큼 바보 같은 유일한 사람)라고 말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