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대차게 망한 통역
회사원 신분이든, 프리랜서이든 일을 하다 보면 크고 작게 ‘망했다!’라고 속으로 외칠 상황이 생각보다 많다. 이럴 경우 내 자신의 문제가 아닌, 거래처가 문을 닫거나 회사 시스템 변화 등의 외부적인 요인일 때는 오롯이 내 능력이 모자라거나, 자신의 엄청난 실수로 빚어진 ‘망한 상황’보다는 타격이 덜 하지 않을까 싶다.
조직이라는 울타리와 지붕 아래에 속해 있을 때는, 회사 구성원 신분인 내가 무언가 실수를 해도 동료들과 시스템으로 해결이 되는 구석이 분명히 있었다. 프리랜서가 된 이후에야 내게 어떠한 지붕도 방패 막도 없이 홀홀 벗은 내 몸뚱아리 하나로 정글 같은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그토록 내가 갑갑해 하던 조직 ‘방패막’의 위력을 실감하게 되었다.
프리랜서로써 나의 모든 평판과 생존력이 ‘무한책임’제로 나에게 귀속 된단 걸 깨달은 이후 나는 ‘망했다’라고 외칠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고 눈치를 보았다. 그렇게 연두부 같은 멘탈을 겨우겨우 붙들고 성냥개비로 집을 만들듯이 쌓아 올린 나의 커리어가 십년 쯤 되자, 나에게도 ‘깜냥’이란 것이 생기고 ‘그 동안 해온 감으로 어떻게든 되겠지’란 위험한 보루도 생겼다.
그리고, 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 했던 일들 중 가장 크게, ‘망’한 일이 벌어졌다.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화끈댄다. 통대원을 졸업한 전문 통역사처럼 동시통역을 하진 못해도, 다양한 기업과 기관에서 일했던 경험으로 누구보다 비즈니스 컨텍스트를 잘 이해하고, 고객이 만족하지 못할 일은 안 생길 것이라 믿던 내가, 그 날 이후 나의 영어실력에 끝도 없는 회의와 자괴감으로 두 달을 이불 속에서 나오지 않게 되었던 그 일 말이다.
3년 전 쯤 누구나 알만한 식품회사에서 통역 요청이왔다. 부사장님이 직접 주재하는 중동의 바이어 미팅인데, 바이어가 한국에 직접 와서 식품 공장도 둘러보고 난 후, 공식적으로 가지는 첫 미팅이라 했다.
여기서, 의문점은 이정도 규모의 회사라면 사내에 인하우스 통번역사를 둘 법도 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수출 영업을 담당하는 직원들이 영어를 못 할 리가 없었다. 아니, 내 상식 속 영업직 한국사람들은 영어는 물론이고 아랍어로 시장에 덤벼드는 사람들이다.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미팅에 참여하는 담당자들은 대부분 영어를 다 잘 하고, 부사장님은 '어느 정도' 알아들으시는데 아주 중요한 바이어 미팅이라서 좀 더 예우를 갖춰 미팅을 진행하고 싶다고 하셨다.
아, 나는 여기서 알아채야 했다.
부사장님이 '어느 정도' 알아 들으시는게 진짜 어느 정도인지, 미팅에서 담당자들이 얼추 다 영어를 잘하는데 통역이 끼면 얼마나 볼썽사나운지를...
이 날 벌어질 대 참사를 1도 예상하지 못한채, 나는 낭창하게 사전미팅을 하기로 한 본사 건물 대기실에 앉았다. 담당 대리님과 과장님이 오시고, 오늘 부사장님이 어떤 얘길 하실지 자기들도 모른다고 했다.
내가 사전에 받은 자료는, 매출 보고서 하나가 전부인데 그것마저 팀장님이 직접 발표하시기로 하고 부사장님과 그 중요한 VIP의 미팅 아젠다는 어찌 되는 것인지, 나는 '운에 맡기고' 약간의 쌔한 기시감과 함께 본 회의장에 들어섰다.
부사장님은, 큰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에 어울리는 수트를 입고, 날이 선 숏컷을 한 여자분 이셨다. 굳게 다문 입술에, 미소 없이 나를 보며 아주 가볍게 목례로 알은채를 하셨다. 나는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이분이 풍기는 결연함과 카리스마에 뒷목이 서늘해지면서 오늘 내가 이분의 ‘마음에 들’ 자신이 없어졌다.
기다란 회의실 테이블에, 양쪽 대표단이 앉고 두바이에서 온 VIP바이어는 자기 회사의 공동창업자인 한국인 사장과 함께 앉았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상대 한국인 사장님은 영어가 원어민 수준이었다.)
원래도 말이 별로 없으시고 내향적인 성격이시라고 담당 과장이 귀띔해준 것과 달리 부사장님은 첫 말문부터 환영인사를 단단히 준비해오셨다.
그리고 이미 첫인상에 주눅이 들기 시작한 나의 통역은 환영인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용으로 보면, 그렇게 큰 오류는 아니었지만 고도로 집중해도 100%다 통역할 수가 없는데, 내가 ‘문장 대 문장’ , ‘단어 대 단어’로 통역하지 못한 그 어떤 것 때문에, 영어로 입을 뗀지 3분만에, 부사장님은 옆자리에 앉은 나를 똑바로 쳐다보시며, 작은 목소리지만 세상에서 제일 단호한 어조로
“한.문.장.도. 빼.놓.지. 말.고. 다. 통.역.하.세.요.”
라고 하셨다.
알고 보니 앞서 부사장님이 ‘어느 정도’ 알아들으신다는 것은, 거의 모든 걸 알아듣는다는 말이었다. 내가 놓친 단어 하나까지 심기가 불편할 정도로 다 알아듣는다는 말은, 스피킹만 안될 뿐, 이미 자신에게 익숙한 컨텍스트의 영어는 나보다 더 편하게, 날카롭게 듣는다는 말이었다. 부사장님의 수준이 어떤지 ‘실체’를 알게 된 이후, 통역하는 나의 멘탈은 연두부의 속살보다 더 취약하고, 모기향 피고 남은 재보다 더 파삭하게 박살이 났다.
의례적인 인사가 끝나고 본격적인 투자얘기로 들어서면서 두바이의 바이어가 ‘다르함’뭐라고 했는데, 이 순간까지도 나는 ‘다르함’이 두바이의 화폐단위인 줄 몰랐다. 내가 다르함을 못 알아듣자, 부사장님은 한숨을 크게 쉬고 나서 이때 부터 통역인 나에 대한 모든 기대를 접으셨는지 '직접' 영어로 말하기 시작하셨다.
완벽한 문장은 아니지만, 비즈니스 미팅에서 사실 완벽한 문법이나 수준 높은 어휘는 의미가 없다. 사업에서 얻고자 하는 것만 얻을 수 있다면, 단어만 늘어놓는다 해도, 계약을 따내겠다는 의지만큼 완벽한 통역은 없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부사장님은 회사가 경영위기를 맞이하면서 히트 상품도 직접 만들어 출시하고, 회사를 다시 일으키려고 모든 걸 다 던진 분이셨다. 이분의 원래 성격이 완벽주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회사가 모멘템을 얻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관계를 맺은 투자자이자 바이어에게 ‘완벽한’ 파트너쉽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래서, 회사에서 ‘창립이래 처음’, 외부 통역사를 불러다 통역을 하면 단어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상대의 의중을 다 들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던 것이다.
회의는 1시간 남짓 이어졌고, 회의 중반 이후부터는 두바이의 공동창업자인 한국인 사장까지 가세해서 거의 나의 통역을 거치지 않고 회의가 진행되었다. 두 회사간의 히스토리나 사업현황을 전혀 모르는 내가 껴서 얘기하는 것보다, 당연히 직접 얘기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 게다가 상대 측 한국인 사장님은, 그분이 점점 여자 부사장님의 통역사가 되어 얘기를 하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회의실에 모인 열 명 남짓의 직원들 중, 대부분 영어를 다 잘한다는 말은 앞서 30분 동안 이 회사의 현 상황이나 예전 투자 건에 대해 전혀 정보가 없는 내가 깜으로 한 통역이 ‘우스운’이야기가 됐단 말이다.
겨우겨우 멘탈을 붙잡고 내가 통역할 수 있는 부분에서 한국 정부의 투자 정책에 빗대어 ‘적확한’ 통역을 했을 때 딱 한번, 부사장님은 고개를 끄덕이셨고, 나는 이후 끝날 때까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회의가 끝나고 엘리베이터를 탈 때, 부사장님은 나에게 ‘수고하셨습니다.’라고 하셨다. 존대어로 말해서 더 무서운, 내 생애 가장 부끄러운, ‘수고’가 되었지만 말이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기분으로 차 키를 주섬 주섬 챙기는데, 담당 대리님이 회사에서 출시하는 제품들을 라면, 과자 등등 종류별로 가득 담은 박스를 트렁크에 넣어주셨다.
이걸 받을 만큼 오늘 일을 제대로 못한 것 같다고 안주셔도 된다고 했지만 원래 내방객들에게 드리는 선물이라고 가져가시라고 하셨다. 마지막으로 수고하셨다고 말을 건네는 대리님의 얼굴 표정이, 내 눈에는 씁쓸해 보였다. 몇 년 이나마 대기업을 다녔던 내 감으로 추측하기엔, 대리님의 마지막 표정이 “오늘 통역, 누가 섭외했어?”에 뭐라고 답을 해야 하나 난감한 표정 같았다.
반농담, 반진담으로 오늘 내가 제대로 못해서 나중에 윗분들한테 혼나시는거 아니냐고 물어봤지만 그냥 괜찮다고만 하시는데, 이 분이 진정 괜찮았을런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집에 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참을 생각했다. 회의 아젠다는 하나도 몰랐지만, 두바이에서 온 바이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두바이의 화폐단위를 사전에 공부하지 않은 건, 명백한 나의 준비 부족이지 않나… 싶었다. 지금은 누가 자다가 깨워서 물어봐도 두바이의 화폐는 다르함이라고 외칠 수 있지만.
이 날 이불을 뒤집어 쓰고, 참담함을 곱씹던 내 상태는 말 그대로 devastated 였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비탄에 빠진, 황폐화된’. 지진이나 쓰나미가 훑고 간 곳을 devastated라고 하는데, 그 때 이후로 한참을 나는 바싹 바싹 말라 타 들어간, 재만 남은 상태에서 일어 날 수 없었다. 그나마 내 상태가 ‘완전 황폐해진’ 수준이라 인지한 것만 해도 아주 고무적인 일일 정도였다. 흔히들 말하는, 바닥을 치고 올라올 일만 남은 상태랑 비슷한 것이었다. 다시 통역 일을 할 수 있을지, 앞으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스스로에게 ‘무한 책임’과 ‘무한 질문’을 쏟아 부으면서 나는 devastation이란 단어를 질겅질겅 씹었다.
그러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아, 내가 완전 황폐해졌구나… 지금부터 한참은 못 일어나겠구나…나에겐 다시 일터에 나갈 용기도, 실력도 아무것도 남지 않았구나,’라고 인정을 하면서부터 아주 밑바닥에서부터 아지랑이처럼 다시 세상 속으로 나갈 힘이 피어 오르고 있었다. 나를 지지해주는 가족들과 신의로 똘똘 뭉친 친구들이 있지만, 내 일에서만큼은 온 우주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었다. 애초에 내가 내 자신을 믿어줬기에 가능했던 프리랜서로써의 삶이었다. 그 모든 결정의 시작과 끝에 외부의 영향력은 전혀 없었다. 타인에게서 용기나 동기부여를 얻을 수 없는 일이라면 폐허의 바닥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라도 나는 내 자신에게 말을 걸고, 나를 인정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셈이다.
두 달 가까이를 내 실력에 비웃음을 보내고, 의심하고, 자책하면서 나의 상태를 인정했다. 실수와 실패, 부족함을 받아들이는 데 그만한 시간이 필요했던 셈이다. 그리고 나서야 내게 부족하고 결핍된 부분을 메우고 다시 세상으로 나갈 의욕이 생겼다.
이 날 이전에도, 이후에도 내가 ‘투명인간’이 되어서 통역을 하거나 일을 한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이 날 통역 이후로 나름의 원칙을 세우게 되었기 때문이다.
1. 회의 참여자가 영어를 거의 다 알아듣는 경우는 통역을 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는 사실 통역이 필요 없다고 봐야 한다.)
2.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통역이, 모든 발표내용이 사전에 주어지는 컨퍼런스 동시통역 수준인지 아닌지를 확인한다. 통대원에서 특별한 기술과 경험을 쌓아야 할 수 있는 ‘동시통역’(부스 안에서 2인 1조로 진행)과 순차통역의 차이(대부분의 사람들은 순차를 동시통역과 같다고 생각함)를 확실히 이해시킨다.
3. 통역대학원을 간다 생각하고 훈련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호되게, 맵게 겪은 통역 이후로 어디선가 devastation을 보게 되면, 난 여지없이 3년 전 그날의 나로 돌아간다. 그러나, 내게 devastation은 더 이상 ‘참담함의 끝’은 아니다. 씁쓸하긴 하지만, 정말 완벽하게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다시 일어나는 순간의 시작이다.
<프롤로그>
식품회사에서 준, 라면 중 매운 맛이 있었는데 평소에도 맵찔이인 나는 주변에 다 나눠주고도 남은 마지막 라면을 먹으면서 눈물 콧물 줄줄 흘리며, 속이 화끈대서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담당 대리님이, 굳이 내 트렁크에 꾸역 꾸역 넣어준 이유가…바로 이것? 이었을까 생각하면서…
나는 이후에 마트에서 이 라면을 볼 때마다 내 인생 최대 매운맛의 통역을 알게 된 이 날이 생각난다. 그리고
이후 매스컴에서 이 회사의 근황을 들을 때 마다 진심으로 이 회사가 잘 되길, 응원하게 된다.
나는 그분을 호된 경험으로 알게 됐지만 바이어 의중의 단어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결의로 회사를 경영하는 그 분의 의지와 열정은 매출로 보상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말투는 차가웠지만, 부하직원들에게 시종일관 존댓말과 예의 바르게 행동하시던 그 분의 조심스러운 실루엣은(그래서 더 무섭기도)오랫동안 내 뇌리에 남았다.
물론 ‘한문장도 빼놓지 말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