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여행기 12일
2023.12.07.목요일
오늘의 일출은 숙소 베란다에서 보았다. 베란다에서 내다 보이는 숲쪽 방향에서 해가 뜬다. 처음에는 노을처럼 붉어져서 예뻤는데 갑자기 두꺼운 구름이 몰려왔다. 에잇! 오늘은 해가 뜨는 것을 못 보나보다 싶어서 방으로 들어와서 인터넷을 보면서 노닥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해져서 밖으로 나갔다. 앗, 해가 뜬다. 구름과 나무 사이로 해가 빼꼼, 얼굴을 내민다. 이야, 역시 아침 해는 정말 밀당의 고수구만. 연속 이틀 일출을 보아서 기분이 너무 좋다. 게다가 오늘은 숙소에서 한발짝도 안나가고 편하게 베란다에 앉아 일출을 보았다. 요즘 하는 속된 말로 '개꿀'이다.
오늘도 아침 부페에 가서 신선한 오믈렛을 받았다. 오늘은 야채 외에도 햄와 생선살도 다 넣어달라고 했다. 어떤 맛일까 궁금해서였다. 근데 예상했던 맛과는 좀 다르다. 어제 먹은 야채만 넣은 것보다는 씹히는게 많지만 맛은 비슷하다. 어쨋든 맛있다. 내 미각은 그다지 예민하지 않아서 그냥 다 맛있다. 야외의 멋진 경치가 보이는 자리에 앉아서 먹었다. 혼자라서 가급적 작은 테이블에 앉으려 했는데 야외석에는 큰 자리만 있다. 어쩔 수 없지. 커피와 쥬스까지 곁들여서 배가 터지게 아침을 먹었다. 이렇게 먹고도 살이 찌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여행이 힘들긴 한가보다.
아침을 먹고 나서 비치타올과 물병으로 해변의 선베드를 찜해 두고 다시 숙소로 왔다. 오늘은 이곳을 떠나는 날인데 버스는 오후 4시에 출발한다. 이곳 호텔은 채크아웃을 하고도 놀다가 갈 수 있게 해준다. 아주 좋은 시스템이다. 갈아입을 옷과 몇 가지 세면도구를 작은 가방에 넣고 나머지 짐은 트렁크에 넣었다. 로비에 가서 채크아웃을 하고 나서 트렁크를 맡겼다. 그리고 택시를 2시에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다시 해변으로 나가서 마지막 일광욕과 수영을 즐겼다. 오늘은 어제보다 파도가 약해서 그나마 바닷물에 몸을 담글 수 있었다. 역시 수영장보다는 바다가 더 재밌다. 파도가 발가락을 간질간질 한다. 깊은 곳까지 갈 자신은 없어서 그냥 얕은 곳에서 깔짝깔짝대다가 나왔다. 튜브가 있으면 파도타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빌려주는 곳이 없다. 다시 선베드로 와서 쉬면서 앞에 앉아 있는 여성을 관찰했다. 옷을 잔뜩 껴입는 걸 보니까 일광욕을 즐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잠을 자는 것도 아니다. 그냥 파도멍하다가 휴대폰을 보다가 하면서 앉아있다. 선베드에 기대지도 않고 한참을 앉아 있는데 허리도 안아픈가 보다. 내가 바다에 두세 번 왔다갔다 하는 내내 그녀는 거기에 앉아 있었다. 뭐 그것도 그녀가 이곳을 즐기는 방식이겠지. 사람은 다 제각각이니까.
바닷가 사진도 찍고 영상도 촬영하고 사람들 구경도 하다가 살짝 졸기도 했다. 가급적 휴대폰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나는 휴대폰, 인터넷 중독이다. 정말 한시도 가만있지를 못한다. 그래서 여기에 오면서는 휴대폰과 노트북을 멀리하리라 마음 먹었다. 결론은 절반의 성공이다. 낮에는 사람들 구경하고 물놀이하느라 휴대폰과 노트북을 멀리할 수 있지만 밤에는 너무 심심해서 그게 잘 안되었다. 에잇, 그냥 살던대로 살란다.
마지막 물놀이를 하고 나서 야외 샤워실에서 씻고 로비 화장실에 와서 옷을 갈아입었다. 상쾌한 기분으로 마지막 점심을 즐겼다.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파스타가 일품이다. 평소에는 가급적 탄수화물을 먹지 않으려 하지만 이따가 먼길을 떠나므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자. 끝으로 피나콜라다 한 잔.
인클루시브의 서비스를 마지막까지 알차게 누렸다. 정말 좋은 시스템이다. 세계적인 인클루시브 호텔이 많은 곳으로 멕시코의 칸쿤이 제일 유명하다. 그런데 거기보다 여기 쿠바의 바라데로가 조금 더 저렴하단다. 기회가 된다면 칸쿤도 한번 가봐야겠다. 두 곳의 인클루시브 서비스를 비교해보면 재밌을 것 같다.
호텔에서 불러준 택시는 뜻밖에 오픈 올드카이다. 아름다운 해변을 오픈 올드카를 타고 신나게 달린다. 햇볕이 너무 뜨겁지만 바람은 너무 시원하다. 푸른 바다와 야자수, 파란 하늘과 구름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달리는 기분이 아주 좋다. 바라데로는 멋진 바다와 편한 휴식으로 기억될 것 같다.
버스 터미널에 와서 표를 받고 기다렸다. 여기는 너무 작은 터미널이라 짐을 부치는 곳이 따로 없다. 그냥 버스를 탈 때 바로 부치란다. 버스가 도착해서 타려고 승객들이 줄을 서 있으니까 버스 기사와 보조가 짐을 직접 받고 확인증을 준다. 이 버스는 중간에 다른 곳에 들르지 않고 곧바로 아바나로 가기 때문에 짐을 굳이 미리 부치지 않아도 되나보다.
아바나로 가는 길에 길다란 굴뚝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는 것들을 여러개 보았다. 화력발전소의 굴뚝이라는데 좀 무서운 것 같다. 근처에는 가지 않는게 좋겠다. 물론 갈 일도 없겠지만서도. 쿠바는 주로 화력발전에 의지해서 전력을 공급하는데 시설이 낙후되고 원료 공급도 수월하지 않아서 툭하면 정전이 된단다. 그러고 보니까 내가 다니는 동안 정전으로 인한 곤란함은 겪지 않았다. 운이 좋은 편이다. 버스는 화력발전소를 여러 개 지나고 바닷가 마을도 여럿 지나갔다. 그리고 해가 뉘엿뉘엿 지는 언덕길을 쉼없이 달려갔다.
오후 4시에 출발한 버스는 7시가 다 되어 아바나에 도착했다. 어느새 사방이 어두워지고 있다. 오늘의 숙소는 아바나의 버스 터미널 바로 옆에 잡았다. 늦은 시간에 도착할 것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일 아침 7시 20분에 비냘레스행 버스를 타야한다. 따라서 6시20분쯤 버스 터미널에 가서 버스 채크인을 해야 한다. 이런저런 동선을 짜면서 바라데로에서 비냘레스로 곧장 넘어가는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결국 아바나에 와서 비냘레스에 가는 버스를 타야했다. 비냘레스에 가겠다는 일념으로 꼬인 동선을 감수해야했다. 그만큼 꼭 가보고 싶었던 비냘레스! 과연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