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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각커피 Jul 13. 2021

자신감 있는 친절을 위해


처음부터 고분고분한 성격은 아니었다. 일러스트 외주 작업을 몇 차례 받는 동안 고분고분해졌다. 아니, 고분고분해져야 했다.


점점 오르기느커녕 후려치기만 당하는 작업 단가에 광분하며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한 가기가 평가절하당하는 것이 속상했고, 지금 내가 마땅한 대우를 주장해야 현직 일러스트레이터들 모두가 편해지는 길이라 생각했다.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내 앞날도.


가뭄에 콩 나듯 문의가 들어와도 직장생활이라곤 막내 역할밖에 안 해본 나로서는 이런 가격 협상과 업무 진행은 꽤 버거웠다. 합당하게 측정된 구체적인 가격을 먼저 제시하는 곳은 극히 드물었다. 몇 번의 협상 경험으로 계약서를 쓰고 그림 작업을 시작해도 '예술가'라는 자부심을 와르르 무너지게 하는 푸대접에 멘털이 나가기 일쑤였다.


그들은 언제나 갑이었고, 나는 항상 절대적 을이었다.(계약서상 내가 갑일 때도 있지만 내용을 읽어보면 결국 을로서 행동해야 한다.) 그 '을'도 내가 회사에서 계약서를 보내달라고 간절히 청한 끝에 얻을 수 있는 자리였다. 그림으로 더 돈을 벌고 싶을수록, 외주를 받아 경력을 쌓고 싶은 마음이 크고 간절할수록, 나는 점점 초라하고 작아졌다.


그때의 고분고분함이 지금 카페를 하면서도 그대로 나타날  몰랐다. 계속 절박한 을로만 살아와서 일까? 그림값을 받고 그림을 그려줄 때도, 커피값을 받고 커피를 만들어줄 때도 난 계속 을이었다. 늘 주눅 들어 있었다. 손님이 오면 가게의 부족한 부분과 내 미숙한 행동을 보고 불쾌한 마음에 다음에 다시는 오지 않을까 봐, 혹시나 인터넷에 나쁜 후기를 써 올려 다른 손님의 발걸음마저 끊길까 봐 손님 표정과 눈빛 하나하나에도 긴장하고 걱정했다.


오픈 초기에는 갑자기 음료 주문이 일고여덟 잔씩 밀린 적이 있는데, 손님들을 기다리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재료를 급하게 옮기다 유리병이 깨져 옷과 주방이 난리가 나기도 했다. 직접 작업한 바닥에서 새 집 냄새가 올라와 후각이 예민한 손님들은 카페에서 안 좋은 냄새가 난다며 인상을 찌푸리고 다시 나간 적도 있다. 본의 아니게 마음에 상처를 받았었다. 한적한 골목에 자리 잡고 있어 저녁 여섯 시만 되어도 한산해져서 마감 시각을 아홉 시로 정했는데, 그걸 모르고 계속 앉아 있는 손님들에게 나가 달라고 말할 용기가 없어서  열 시가 넘도록 말 한마디 못하고 손님들이 나가기만 을 기다리기도 했었다.


부족한 부분만 계속 떠올리고 신경 쓰다 보니 내 카페의 예쁜 구석은 다 잊어버리고 나쁜 점만 보였다. 사장으로서 보여야 하는 전문적인 태도보다는 '주눅 든 고분고분함'으로 비위를 맞추고 미리 사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따뜻하게 바라봐 주신 분들이 많았기에 여러 시행착오 속에서도 지금도 버티며 장사를 해오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의 모진 언행과 행동은 마음을 절벽 끝까지 떨어뜨리곤 했다.


이 '주눅 든 고분고분함'이 내가 만만해 보이고, 상대가 제멋대로 행동하게 만든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당장 초라하고 능력 없는 내 존재가 죄송스러워 손님분들께 당장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의 대처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나를 더 옥죄었다.


짧다고 하면 짧고, 길다고 하면 긴 시간 동안 자영업을 하면서 느낀 점은, 찾아준 모든 손님을 만족시키기는 어렵다는 거다. 내게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더 노력하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다. 내 가게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나 환경이 불편하고 싫은 사람도 있겠지만, 좋아해 주시고 꾸준히 찾아주는 분들이 더 많기에 그분들을 잊지 말고 떳떳해져야 한다. 내 태도는 신뢰와 믿음이 되어 그대로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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