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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각커피 Aug 23. 2021

생존을 위한 기싸움

카페는 오픈했지만 몇 달 동안은 손님이 정말 없었다. 이미 구질구질한 내 치부는 웬만한 건 다 오픈하였으니 솔직히 털어놓자면, 가게를 오픈하고 세 달 동안은 월 매출이 20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충격적인 수입이라 자존심 때문에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지만... 실화다.


몇 개월 월세가 그냥 나갈 걸 대비는 했지만 정말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계속 이러면 어떻게 가게를 유지해야 할까? 지금 벌려놓은 판을 어떻게 수습을 해야 하나? 순간순간 심장이 조여왔다. 계속 손님이 없을까 봐, 이대로 가게가 망할까 봐 마음이 불안했다.


그런데 이렇게 장사가 심각하게 안 되는 카페에 반갑지 않은 손님들은 계속 찾아왔다.


'딸랑'


"어서 오세요~!"


"사장님 되세요? 사업자 카드 안 하셨어요? 저희 카드가~~"

"이 마스크 팩 한 번 써보세요, 저희가 다이어트 프로그램도 있고~"

"교회 다니세요? 아~ 그럼 00동에 무슨 교횐데 하나님 말씀~"

"00 단체인데요~ 전 세계 아이들을 위해 좋은 일 한 번~"


정말 많은 이유를 가진 사람들이 가게를 방문했다. 음료를 사러 오는 손님은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오지 않는데, 이런 분들은 어떻게 이 골목에 가게를 차린 걸 알고는 줄줄이 들어왔다.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하는 내향형인 나로서는 불청객의 방문이 고역이었다.


안 그래도 적자에 허덕이는데, 가게로 무작정 들어와 금전을 요구하면 솔직히 거북하고 부담스럽다. 마음 같아서는 소리치고 싶었다.'갖고 있는 것 중에 뭐라도 팔게 없나, 몸에 팔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뭐라도 때어다 팔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하루하루가 초초한 사람에게 영업이 먹히겠어요?'


어느 날은 몸집이 큰 남자분이 가게로 불쑥 들어오셔서 대뜸 기부를 요청했다. 가끔 기부를 할 때도 있었지만 그날은 정말 나도 번 돈이 없었다. 가게에 있는 돈을 주면 오늘 내 하루가 적자다. 앞서 영업사원 셋을 단호히 거절하지 못한 대가로 두 시간의 사업설명과 함께 다단계에 가입할 뻔했다. 그들의 방문은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정신적으로 맞서는 게 힘들었지만 그 사람이 살기 위해 가게로 들어왔듯, 나도 살아야 했고 이제는 맞서 대응해야 했다.


"정말 죄송한데 가게가 잘되지 않아서 드릴 돈이 없어요. 죄송해요."


그 남자는 내가 정중히 거절을 했는데도 나가지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서 거친 숨을 내쉬며 아무 말 없이 계속 서 있었다. 그렇게 계속 나가지 않는 점점 무섭고 두려웠다. 제발 나가길 바라면서도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한가한 골목, 굳이 쳐다보지 않으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이 깊숙하고 작은 공간에서 해코지라도 당한다면 나는 무조건 피해자가 된다.


"어쩌죠.. 정말 죄송해요. 저도 형편이 좋지가 않아서.. 죄송합니다."


두 손을 모으고 몇 번을 사과했다. 내가 왜 사과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허리를 숙였다. 울고 싶었다.


"하... 씨.."


한참을 서있던 남자는 낮은 한숨과 짜증을 뱉고는 가게를 떠났다. 힘이 풀리며 다리가 살짝 후들거렸다. 그때의 안도감과 서글픔은 겪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가게를 하면서 종종 ‘살아낸다'는 느낌을 피부로 실감한다. 모두가 각자의 생존을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생존을 위한 전쟁을 치른다. 어떤 사람들은 우아하게 손가락 하나를 까딱이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하루하루가 처절하다.


그런 분들이 가고 나면 진이 빠지고 후폭풍이 심하게 온다. 정말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벼랑 끝에서 버티는 심정으로 카페를 시작했는데, 음료 주문은커녕 왜 내게  돈이라도 맡겨놓은 것처럼 뭘 사달라고 하고, 돈을 달라고 하는 걸까? 무슨 권리로 무작정 내 가게에 쳐들어와 내 평범한 생활을 망치고 죄책감까지 안겨주고 가버리는 걸까?


영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나 같은 '개인 사업장'은 좋은 먹잇감이 된다. 작은 가게는 아르바이트생 없이 사장이 직접 운영하는 데다 손님이 없어 한가하니 붙잡고 멘트를 할 시간도 충분하다. 


조금만 마음이 약해 보이고 순하고 착하게 보인다 싶으면 그걸 이용하려는 사람이 너무 많다. 눈에 보이는 호의가 진짜 순수한 호의가 아니라는    경험해보고 상처를 받고 나니 마냥 세상이 올바르고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상대가 먼저 내민 호의는 우선 의심부터 하게 되고 한 발 물러서 우선 의심과 경계를 하게 된다. 하지만 카페는 서비스업이고 고마운 손님까지 소홀히 할 수 없으니 하루 종일 누가 들어올지 모르는 경계 속에서도 미소와 친절을 유지해야 한다. 요즘은 속 마음과 다른 두 얼굴을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은 게, 거짓 웃음을 짓고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내가 조금은 슬퍼진다.

차에 주유를 하듯 기가 부족한 사람에게 원하는 기를 주유해주는 '기 팍팍 주유소'가 있었으면 좋겠다. 영업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이 보이는 순간 요동치는 심장을 수백 번 다잡는 나에게는 그들과 맞설 수 있는 단단하고 강한 정신적인 에너지가 필요하다. 한때는 큰소리치는 여자에게 '기 센 여자'라며 비난했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음이 나쁜 걸까? 나는 어느 때보다도 기 센 사람, 기 센 여자가 되고 싶다. "기 가득이요!" 강인한 기운으로 내 안을 빵빵하게 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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