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일찍 퇴근하셨나 봐요? 8시에 갔는데 문 닫으셨더라고요."
도둑질을 들킨 사람처럼 마음이 뜨끔했다. 안내문도 미리 써두고 손님이 없는 한가한 평일 중에 한 시간 일찍 문을 닫았는데, 하필 그날 귀한 손님이 카페 문 앞에서 그냥 돌아가셨다. 죄송한 마음이 들면서도, 괜히 자격지심에 오픈한 지 얼마나 됐다고 멋대로 마감 시간을 지키지 않느냐는 질책처럼 들려 속상했다. 카페를 소홀히 하진 않았지만, 뜻박의 작가 생활이 시작되면서 정해진 24시간을 나눠 써야 했다.
그사이 브런치 연재는 완결이 가까워졌고, 여러 출판사에서 제안이 더 들어온 덕분에 메일은 계속 쌓여갔다.
한 달 안으로 어떻게든 미팅을 끝내서 한 곳과는 계약을 해야 했다. 하지만 내가 쉬는 일요일에는 출판사 편집자도 쉬는 날이기에 미팅을 할 수가 없었다. 평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카페에 묶여 있으니 평일 저녁 마감을 한두 시간 일찍 해서 미팅을 갖는 게 나의 최선이었다.
계약을 하고 원고만 쓰면 책이 바로 나오는 줄 알았다. 책 출간은 항상 똑같은 카페 지킴이의 생활에 반짝하고 일어난 재미난 에피소드 정도로 생각했다.
막상 책 작업을 시작해보니, 처음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만 해도 출간을 염두하지 않고 모바일 환경에 맞춰 그림을 그리고 작업을 했던 게 문제가 됐다. 스크롤을 아래로 내려가며 보는 형태로 작업한 것을 책 판형과 가로 읽기 흐름에 맞춰 변형을 해야 했다. 그림도 한 페이지에 적당히 배치를 해야 했는데 디자이너와 나의 생각이 맞지 않아 여러 번 수정을 해야 했다. 그림에 쓴 손글씨의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고치고, 정사각형 사이즈로 그린 그림을 책에 맞는 긴 형태로 다시 그렸다. 뿐만 아니라 아무래도 내 경험을 쓴 에세이다 보니 편집자가 제시한 흐름상 매끄러운 문장은 나의 의도와 다른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메일과 통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 수정을 되풀이했다. 그림만으로도 바빴는데 글도 함께 수정하려니 정신이 없었다.
최대한 카페 손님들 앞에서는 다른 일을 하는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정해진 출간일이 다가올수록 카페 마감 후에 작업을 하면 영 작업 속도가 나지 않았다. 손님이 안 계시는 한적한 시간마다 작업을 하느라 하루에도 몇 번씩 작업 책상과 주방을 왔다 갔다 했고, 책상 한 구석 프린트한 수정 원고와 작업 노트 더미는 깔끔한 카페에 옥에 티가 됐다. 편집자와 주방에서 통화를 하다가 손님이 오면 제대로 전화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급하게 끊어버리는 실례도 몇 번 했다.
다른 사람의 시선과 주변 사람의 평가에 휘둘리고 싶지 않아 비밀로 부친 일인데, 한편으로는 지금 내 바쁨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힘들고 답답했다.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쓴 책만 아니었다면 엄마한테 딸내미 책 낸다고 자랑하며 우쭐할 수 있는 기회인데! 지금까지 예술 나부랭이 하면서 뭐 한 거 있냐고 무시한 엄마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줄 수 있었을 텐데! 정말 인간은 이기적이고 인생은 아이러니다.
최종 원고를 넘기고 얼마 후 드디어 책이 나왔다. 출간이 되면 작가에게 출간 기념 증정본을 몇 부 받는데, 주변에 챈 낸다고 알리지 않았으니 책은 많은데 누구 한 명 줄 사람이 없다. 집으로 배송받을 수도 없어 가게 주소로 받았더니 내 인생에 첫 책은 받자마자 사람들 손에 닿지 않는 찬장 신세가 됐다. 그 뒤로 보물처럼 소중하지만 감당 못 할 책들은 sns 이벤트를 열어 나눠드렸다.
책을 내고 보니 진짜 세상에 쉬운 건 없었다.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이 한 권 한 권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이 많은 책들이 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나온 책이란 말인가...!! 하드커버에 묵직한 전공책은 라면 먹을 때 냄비 받침으로 아주 유용하게 써먹었는데, 이 얇은 책은 모기 잡을 때 쓰고, 저 두꺼운 책은 네 잎 클로버 말리는 용으로도 아주 잘 썼는데.. '사랑스럽고 진정성이 가득 담긴, 숨겨진 보석 같은 내 책'은 모서리가 조금만 찍혀도 내 손톱이 부러진 것처럼 마음이 쓰라렸다. 종종 독자들이 지역 도서관에서 내 책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려주실 때가 있다. 제법 꼬질꼬질해진 책을 보고 있자니 많이 이들의 손을 거쳐 간 듯해 마치 타향에서 산전수전 다 겪고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자식을 보는 것처럼 가슴이 뭉클하다.
지금 이 은밀한 이중생활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팍팍하고 고단한 일상에 단비인 것은 틀림없다.
한 편 한 편 쓸 때마다 재밌고 속이 시원하다. 그래서 나는 이 생활을 앞으로 계속해 볼 생각이다. 이 부캐가 마음껏 뛰어놀려면 다른 부캐와 본캐는 좀 더 고생하겠지만 그만큼 내 글은 자유로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