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희망을 가득 안고 카페를 오픈한 지 6개월 만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시작됐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오 내가 이런 상황에서 카페를 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모든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생활 전반에 제한을 받고 있는데, 자영업계도 타격이 크다. 노래방이나 술집처럼 주로 야간에 운영해 영업시간 제한으로 인한 피해가 더 큰 곳들도 있어 내가 글을 쓰는 게 조금 조심스럽지만, 카페 역시 만만치 않다. 수입은 줄어드는데 지켜할 수칙,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몇 달에 한 번씩, 빠르게는 2주만 지나도 바뀌고 있다.
바닥이었던 매출이 몇 달간 꾸준히 오르고 있는데 오르락내리락하더니 점점 줄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내 카페는 코로나를 직통으로 맞은 것 같은데 지나가다 흘깃 보면 다른 카페들은 이 상황에도 손님이 많은 것 같다. 매출 하락이 과연 코로나 탓인지 내 가게 탓인지 혼란스러웠다. 무엇보다 이 시국에 카페를 잘 운영하고 유지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아무리 마음이 답답해도 자영업을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런 고민을 쉽게 털어놓을 수 없었다. 털어놓아도 공감받기 힘들었다. 카페를 하는 고충을 진솔하게 토로할 곳이 필요했는데 인터넷에서 카페를 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 모임에 가입한 뒤 가장 좋은 점은, 1인 카페를 운영하며 혼자서만 느끼고 겪었던 고충을 동종업자끼리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방역 지침이나 날씨에 따른 고민, 커피머신과 음료 재료에 대한 정보 등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다. 확진자가 늘어 떠들썩 한 날에는 나처럼 매출 하락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글이 올라왔고, 서로 몇 잔 팔았다며 응원해 주는 댓글도 보였다. 우리 카페 빼고 다른 카페는 다 경쟁사라고만 생각했는데 다들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고 생각하니 동병상련의 마음이 들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또 다른 부캐인 '에세이 작가'로 활동하는 나는 해야 할 원고 작업이 있어서 이 시국을 견딜 수 있었다. 코로나 시국에 손님이 적어 이렇게 앉아 있는 시간이 많을 때 다른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오히려 잘된 거라고 정신승리(?)를 하며 원고 작업에 몰두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불행이 결국 책의 소재가 되었으니 그리 나쁜 일만은 아니라고 마음을 다독였다. 이렇게 적고 보니 꽤나 덤덤하고 알차게 시간을 잘 보낸 것 같지만 지금도 마음속에 폭풍우가 몰아치다 가라앉기가 여러 번이다.
나는 힘들고 하기 싫은 일을 잘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돈은 못 벌어도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즐겁고 대우받는 일만 하고 싶었고 또 그렇게 20대를 살아왔다. 그런 내가 지금 이 시국에 카페를 운영한지도 2년이 넘어가고 있다. 카페를 하는 사람들의 인터넷 모임에서 알게 된 어떤 분은, 나보다 매출이 적은 날에도 종종 웃긴
'움짤'이나 깡통 차는 그림과 함께 오늘은 맛있는 야식을 먹으며 쉬어야겠다는 해학 넘치는 글을 올린다. 그 글 아래에는 똑같이 유머러스하고 다정한 댓글들이 달린다. 맥주를 마시며 글을 보던 나도 피식 웃으며 오늘의 근심을 조금은 털어낸다.
'아, 진짜 힘들 때 욕하고 화내는 것보다 의연하게 대처하고 이겨낼 줄 아는 사람이 정말 강하고 대단한 거구나...'
카페 문을 연 지 얼마 안 됐을 때에는 일희일비가 너무 심했다. 그날 적게 벌었으니 다음날도 그만큼만 벌거라 미리 단정 지으며 내 앞날을 암울해했다. 그런데 징크스처럼 재료를 적게 준비하면 꼭 그날은 같은 음료 주문이 우르르 들어와 재료가 부족해 음료를 못 파는 일이 일어났다. 오늘 장사가 망했다고 가게가 망한 게 아니고, 내일 장사가 오늘과 같을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오히려 단골손님 중 상당수가 오늘 오지 않았다면 다음날 몰릴 수 있다. 손님은 적은데 사이드 메뉴를 많이 팔아 매출이 높은 날도, 손님은 많은데 테이크아웃만 해서 수입이 적은 날도, 비가 오는데 그날따라 손님이 쉬지 않고 오는 날도 있다.
장사를 하며 삶에 대한 의연함과 초연함을 배우고 있다. 더 잘 될 날을 확신하며 내일을 준비해야 언제든, 무엇이든, 누구든 맞이할 수 있다. 미래를 긍정적으로 내다볼 때 오늘이 흔들려도 멘탈이 무너지지 않는다.
차지연의 노래 <살다 보면>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예전에는 이 가사사 쓸쓸하고 덧없이 느껴졌다. 그런데 코로나에서 벗어날 길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진정 이 말의 의미를 깨닫는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런 비슷한 마음으로 코로나 시국을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코로나 시국을 겪으며 '살다 보면 살아지는' 그 세월이 얼마나 의미 있는 건지, 견디고 버텨 숨 쉬고 있는 지금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제는 안다.
어떻게 살았는지도 중요하지만, 모진 풍파 속 어떤 형태로든 살아낸 삶도 너무나 찬란하다. 누더기 같이 너덜거릴지라도 결국 다시 피어나는 새싹이 뒤덮은 언덕, 깃대에 단단히 매달려 다시 부는 바람에 힘차게 펄럭이는 그 깃발 같은 삶이 얼마나 멋진지 나의 작은 카페에서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