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를 오픈하고 얼마 되지 않아 한가한 카페에 홀로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였다. 당시 몇 년간의 방황하며 그림의 방향을 잃어버렸었지만 다시 멋진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은 가득했다. 그래서 애꿎은 빈 종이만 괴롭히고 있는데 핸드폰에 알람이 울렸다.
[브런치] 작가님께 새로운 제안이 도착하였습니다.
'브런치에서 무슨 제안이지?' 확인한 메일에는 한 출판사 편집자가 보낸 메일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00 출판사 000이라고 합니다.
출간 제안드리고 싶어 이렇게 연락드립니다.'
출간이요? 일러스트레이터로는 꿈도 못 꿔본 출간이라니. 기분이 좋으면서도 이상했다.
일러스트레이터로 오래 활동하다 보면, 본명을 밝히지 않더라도 대외활동을 하며 얼굴과 실명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 내 그림을 올리는 sns는 가족, 친척, 친구들에게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안면을 튼 동료 작가분들도 많아지면서 sns에 '예쁜 그림'외에 다른 것을 표현하기가 무척 조심스러워졌다. 특히 우울이라든지, 불안과 무기력 같은 나의 어두운 부분들은 특히나 언급하기 힘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필명 '삼각커피'로 시작한 브런치는 나에게 대나무 숲이자 사랑방이었다. 내가 삼각커피인지 아무도 모르는 세계에서 하고 싶은 말을 글과 그림으로 속 시원하게 쏟아냈다.
일러스트로 들어오는 일도 없고, 카페도 막 시작해서 한가하게 월세만 나가고 있는 시점에 받은 '출간' 제안은 거절하기 힘든 아주 멋진 기회였다. 카페도 용기 있게 시작했는데, 책도 연재했던 글을 잘 다듬으면 출간할 수 있겠다 싶어 또 한 번 용기를 냈다. 그런데 출간을 앞두고 가장 걸렸던 부분은 내가 만든 이 '익명성'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표현의 자유의 맛(?)을 알아버린 나는 브런치와 책만큼은 주변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 편히 작업하고 싶었다. 그게 내 정신건강에 아주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으니.
그래서 책을 내는 일은 나만 알고 있기로 했다. 지인 두 분을 빼고는 출간 소식을 다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요즘 책 시장이 활발해 신간을 모든 사람이 다 읽는 것도 아니고, 만약 책이 잘되면 그때 주변 사람들에게 말해도 될 거 같았다. 내가 하는 걱정들은 책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돼서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자 마음을 조금 가벼워졌다.
카페를 오픈할 때만 해도 확실히 내 본케는 '일러스트레이터'이고, 본캐를 위해 열일하는 부캐가 '카페 사장'이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카페를 운영해서 생계를 유지하고, 틈 나는 대로 그림을 그리며 작가로서 자리를 잡겠다고 의지를 활활 태웠다. 그런데 이게 웬걸, '에세이 작가'라는 다른 부캐가 하나 더 생겼다.
들뜨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 그런데 이미 저질러 버렸는걸? 에라 모르겠다. 나는 주변 사람 모르게 은밀히 바빠지기 시작했다.
카페 오픈은 몇 년 전이고, 이야기는 시간 순서에 따라 진행되고 있습니다. 에피소드의 출간은 2020년 출간한 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