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수로 떠난 여자 6편.
"왜 등이 자꾸 가렵지?"
등이 자주 가려운 이유가 노화때문이란 걸 한 편의 시에서 알게 됐다.
“우체국 앞 가로수 곁에/아낙네가 죽제품 좌판을/벌여놓았다. 대나무로 만든/광주리와 키와 죽침 따위에 섞여/효자손도 눈에 띄었다. 건널목/신호등이 황급하게 깜빡이지 않았더라면/ 그 조그만 대나무 등긁이 하나 /사왔을지도 모른다./노인성 소양증만 남고,/물기 말라버려 가려운 등을./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며 장난삼아 /간질간질 긁어주던/고사리 같은 손이 작은 효자손이 어느새 자라서 군대에 갔다.... (이하 생략)”
김광규 시인의 ‘효자손’이라는 시의 일부다.
시인도 알았다. 등이 가려운 건 노인성 소양증, 건조증 따위에서 기인한다는 걸. 노화는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피부가 제법 얇은 축에 속하는 등이 건조해져 가려워 진다. 그 다음이 신장이나 간이 약해지면서...의학적인 소견은 그랬다. 한 마디로 늙어서 그런 거였다. 늙어서.
호수마을 내 방에 혼자 있으면 자주 등이 가려웠다.
스탠드 불빛 아래 소설을 읽다가, 호수를 우아하게 산책하다가도 끈금없이 등이 가려웠다. 벽에 등을 대고 위아래로 비비기도 했고, 산책을 하던 중에는 누가 있나 없나 염탐 한 후에 나뭇가지를 주워 옷 속으로 넣어 긁기도 했다. 혼자 사는 일에서 곤란은 그렇게 사소하고 동물적인 영역에서 도드라졌다.
가려운 등을 긁는 순간, 희열이란 이런 것인가.
정념이 식은 중년에 희열로 온 감각이 들 뜬 게 등을 긁을 때라니. 내 손으로는 어쩔 수 없는 내 등에 남편의 손길이 닿아 시원해지는 순간, 아아 여보! 라는 탄성은 절로 나왔고 이래서 결혼을 해야 한다고 선뜻 고백하고 말았다. 그 일 분도 안 되는 시간은 남편의 손톱이 절실하고 감사한 등긁이였다. 고가 매장에 데려가 핸드백을 사주거나 꽃다발을 안기거나 티파니 반지를 사줘서가 아니라 등을 긁어줘서 무지하게 고마운 거다.
호수마을에서 180일간 나 혼자 살기로 하고 나만의 방에 살면서 등이 간지러워 남편을 불러들일 수는 없는 일이다. 어쩌다 한 번은 올 수 있지만 이곳은 금남의 집이다. 여기서 금남이란 남편을 말한다. ‘남편접근금지’를 그리 부른 것일 뿐이다. 정말로 대나무로 된 등긁이를 사야할까? 등긁이는 그동안 개량돼 반대편에 롤러나 지압용 돌기가 있는 것도 있고 구둣주걱을 겸용으로 쓰게 된 것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늙어간다는 실감도 서러운데 등긁이까지 중국산으로 사고 싶지 않아 더 찾아보니 국내산이 있다. 전남 담양군 제품은 제대로 된 국산 대나무 제품으로 디자인은 투박하다. 원목으로도 나오는데 세공이 가능해 사람 손과 거의 비슷하다. 금속으로도, 금으로도 나오는데 이건 좀 더 디자인이 다채롭다. 길이조절이 가능해 휴대할 수도 있는데 사람 손 모양을 그대로 재현한데서부터 닭발모양, 해골뼈 손 모양까지 있다.
근데, 가만 있어봐.
말이 좋아 효자손이지, 등긁이가 있는 방은 노인의 방이란 징표였다. 나는 내 자식이 효자가 되길 기대하지도 않지만 효자를 고대하며 사는 늙은이가 되고 싶지도 않다. 나 스스로 자족하고 충분한 삶을 살려고 애쓰는 중이다. 어릴 적 드나들던 할아버지 할머니 방에는 등긁이가 늘 걸려 있거나 이부자리에 놓여 있었다. 그 물건은 ‘나 늙은이요.’ 라는 간판처럼 나와는 거리가 먼 세계에 물건이었다. 나는 태어나 살아가지만 절대로, 늙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노인은, 실례지만 노인으로 태어난 줄 알았다. 그동안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산다고 하지만, 근데 언닌 몇 살 이예요? 라고 누군가 물을 때마다, 내 주변에 여자들이 모두 나에게 언니라고 부를 때, 전철에서 우연히 아가씨! 가 아니라 아줌마! 라고 부를 때, 마다 나는 겸허해지며 슬퍼졌다. 나도 늙는구나...
잘 익은 복숭아 같은 발그레한 얼굴로 웃고, 검고 긴 머리, 걸을 때마다 건강하게 빛나는 육체의 탄력을 보이며 지나가는 아가씨들을 보면 이성에 침 흘리는 동물마냥 매혹당했다. 봉긋한 가슴과 조그마한 허리, 바짝 올려진 엉덩이와 탱탱한 종아리. 남자만 여자를 탐욕으로 보는 게 아니라 아줌마도 아가씨를 욕정의 시선으로 볼 수 있다는 것에 내 자신도 놀랐었다. 얼굴까지 어여쁜 아가씨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기도 했다. 내게는 그런 시절이 없었던 것처럼, 태어날 때부터 애 셋에 오십의 나이로 계속 살아온 것처럼 집에 돌아가서도 그들의 싱싱하고 터질 듯 한 젊음이 아른거렸다. 너희들은 모르겠지만 가장 아름다울 때란다...전하지 못한 말이 미련처럼 중얼거려졌다. 나도 젊었던가? 청춘의 시절이 있었던가. 떠오른다 하더라도 그건 남의 이야기처럼 떠올랐다 사라졌다.
중년이란 참 갈등하고 방황하기 좋은 나이다.
이도 저도 아닌, 둘 다를 가진 것처럼도 보이지만 둘 다가 아닌 나이.
39세까지로 보는 청년은 애저녁에 글렀고, 중장년을 51세부터 보던가? 취업교육이나 지원사업에서도 끼인 나이. 사정이 이러하니 이참에 깊이 깊이 성찰과 방황을 해봐도 좋을 나이. 그 덕분에 난 잠깐 브레이크를 밟아야겠어를 외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어정쩡한 나이, 그래서 도전을 하기에도 맞춤 맞는 나이라는 생각은 애써 낙천적인 되려는 심사의 한줄기 비명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등긁개는 아직 내 방에 들이고 싶지 않다. 생각지도 못한 기괴하고 사소한 구석에서 혼자 사는 일의 실감을 경험케 해준다.
뜻밖에 아버지 생각으로 치달았다.
초등학교 5학년, 장마가 한창일 때 돌아가신 아버지는 술이며 담배 심부름, 등 긁어달란 일까지 나에게 시켰다. “꼭지야- 꼭지야-” 낮지만 성량 좋은 아버지가 부르는 소리는 잠 든 척 하기엔 너무나 잘 들렸다. 겨울밤에 자다가도 일어나 동네 구멍가게에 소주를 사러 간적도 있었다. 남는 돈으론 새우깡이니 하드니 군것질 하라는 단서가 아니었다면 입이 대발은 나왔겠지만 새우깡 먹을 생각에 심부름을 하려고 이불을 박차고 어둔 시골 밤 골목을 내달렸다. 자주 등도 긁어드렸는데 키가 컸던 아버지 등은 내겐 너무 단단하고 넓었고 작은 손으로 긁기엔 힘에 부쳤다. 아아 시원타라는 말은 이제 그만 긁어도 된단 신호였고 아버지의 등자락을 덮고 방을 나올 때 내 손톱에는 기름기와 허연 각질이 끼여 있었다. 나는 그게 징그럽고 불쾌해서 얼굴이 찌푸려져서 비누로 몇 번이고 손을 씻곤 했었다. 그게 아버지가 늙어가는 징후라는 걸 알 리 없는 어린나이였고 아버지는 얼마 후 돌아가셨다.
그런 아버지가 내게 남긴 유산이 하나 있다. 짧은 예언이다.
“꼭지는 크게 될 아이다.” 그러니 마음대로 하게 놔 두라고 엄마에게 신신당부했단다. 이마가 넓은 나에게 엄마가 농담으로 메뚜기 이마라고 했다가 크게 될 아이를 그렇게 놀리지 말라며 부부싸움을 한 적도 있다니, 기어이 크게 되고 말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나는 가족의 기대대로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내 마음대로 엄마의 기대와는 반대로 살아왔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말대로 크게 되지도 않았다. ‘아직도’가 아니라 ‘아직은’ 이라고 해야 할까.
말하다보니 등이 간지러워지려고 한다.
혼자 살다보니 등이 나를 간지럼 태우는 감각까지 느끼게 되다니. 그렇다고 남편 등긁이가 그립다거나 대나무든 원목이든 금속이든 등긁이를 살 생각은 없다. 등이 가려워서 애를 써야 할 지언정 혼자가 좋고 또 좋다. 오십의 여자는 혼자 호수의 나만의 방에 앉아 등이 가려워 몸부림치면서도 흡족하다. 덕분에 등긁이에 대해 생각했고 시를 떠올렸고 아버지의 유산까지 기억해냈다. 내가 '크게 될 아이'라는 말에도 현혹되었다. 혼자는 그런 것이다. 상상과 생각의 파노라마를 즐기는 자유가 있다. 혼자의 길고 긴 호수에서의 겨울밤이 또 그렇게 흘러간다. 등이 가려울 때마다 임기응변으로 스스로 해결하며 곱씹어봐야겠다. 나의 청춘과 중년의 지금, 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삶의 길목에 떨어트린 기억의 조각들, 소중한 추억들, 잃어버린 감성까지, 샅샅이 뒤지고 찾아봐야 겠다. 감히 크게 될 씨앗이나 기미가 어디에 있었던지를. 어떻게 심을것인가를. 없다면 어데서 구할 것인지를. 죽기전에는 한 번은 크게 되어야 죽어서 아버지를 만날 면목이 설 테니.
<오늘의 필사>
“...나는 영혼을 믿는다. 내 안에, 여러분 안에, 큰어치 안에, 둥근머리돌고래 안에 있는 영혼을. 나는 거친 돼지풀 위를 날아가는 오색방울새에게도, 그리고 돼지풀 한 포기 한 포기에도, 그 아래 흙 속의 작은 돌들에도, 흙알갱이들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다. 그건 낭만적인 믿음이 아니다. 시적이거나 낭만적인 믿음이 아니다. 시적이거나 감정적이거나 은유적인 (모든 현실이 은유라는 점은 예외로 하고) 것도 아니다. 한결같고 단단하고 절대적인 믿음이다... ”
-메리 올리버, <휘파람 부는 사람> 중에서 1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