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수로 떠난 여자 4편.
기차에서 기차를 기억하다.
겨울눈이 밤사이 녹아버린 서울은 질척하고 칙칙해져 도시의 본모습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청량리역에서 호수마을로 향하는 기차는 유난히 덜렁거렸다. 기차는 지상과 터널을 번갈아 가며 함께 달리는 중이었다. 양평에 이르자 창밖으로는 눈이불을 덮은 북한강 설경이 시선을 끌었다. 지난 계절의 일들은 모두 봉인한 채 하얗게 침묵하는 것으로 이 겨울을 나겠다는 듯 적요했다. 내가 탄 기차는 그 적요의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달리는 중이었다. 비둘기호 기차에 대한 추억이 떠오른 건 그 때였다. 기차는 앞을 향해 달리고 내 기억은 이십여년을 거슬러 거꾸로 달렸다.
치커덩치커덩...
대학 졸업을 앞둔 98년도 겨울이었다.
룸메이트였던 친구와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는 미래를 품은 청춘이었지만 세상이 아직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 간극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친구와 나는 주머니를 털어 강촌으로 가는 춘천행 비둘기호 기차에 몸을 실었다. 형편만 보자면야 그마저도 사치였지만 그렇게라도 기차에 몸을 싣지 않고는 베길 수 없었다. 아마 친구의 권유였으리라. 지금의 식권 사이즈 마분지로 만들어진 작은 표를 받아 역장에게 보여주고 기차에 올랐다. 빛바랜 남빛 벨벳 좌석에 앉아 북한강을 끼고 달리던 비둘기호는 한 겨울에 몇 안 되는 손님을 강촌에 내려놓고 다음 정거장을 향해 떠났다. 어차피 무턱대고 떠난 길이니 아무것도 예정된 건 없었다.
강촌에 내리긴 했지만 어떤 계획도 없었다.
정보도 전무했다. 우리에게 핸드폰 따위도 없었다. 강촌에 내렸을 때 짧은 겨울해는 이미 자취를 감추고 관광객 없는 강촌의 밤은 거짓말처럼 적막했다. 겨울 비수기를 맞은 강촌은 불 꺼진 모텔과 휴업인 식당들, 인적 없는 휑한 거리엔 지난 성수기의 흔적마냥 쓰레기가 나뒹굴었다. 우릴 반기는 것은 그런 을씨년스런 거리와 한기 서린 겨울밤뿐이었다. 어찌어찌 길을 헤매다 북한강변에 자리 잡은 불 켜진 집으로 더듬더듬 찾아간 곳이 말하자면 통기타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는 무대가 있고 김치볶음밥에서 비빔밥, 돈까스에 스테이크까지 파는 당시 유행하던 레스토랑이었다. 나지막한 천고가 아늑하고 통나무로 된 인테리어는 촌스럽기보다 정이 있었다. 이런 날, 이런 시각에 손님이 올 줄 몰랐다는 주인장 부부는 뜨아해했지만 급하게 친절한 얼굴로 우리를 난로 가까운 자리로 안내해놓고 뭘 먹겠냐고 무거운 코팅 메뉴판을 내밀었다. 기차에서 내려 휑한 강촌에 처음 놀란 우리가 두 번째 놀란 것은 비싼 밥값이었다. 달리 갈 곳도 없어 우리는 가장 싼 김치볶음밥과 비빔밥을 시켜 허기도 채우고 황망함도 채웠다. 다만, 아주 천천히 식사를 했다. 아주 천천히...최대한 오래 ...
식당을 나가서는 갈 곳이 없었고 숙박비도 없었다.
돌아갈 차비밖에 없었다. 식당 주인에게 물어보니 역시나, 오늘 밤 기차는 끊겼고 내일 기차는 새벽 4시 반경이라고 했다. 밥을 다 먹고 나니 11시쯤이었다. 주인장 부부는 가게를 마감했고 넉살이나 배짱이라곤 없던 시골뜨기 우리 둘은 그저 주인장에게 부탁하기를 난로에 때던 불을 북한강을 바라보게 만들어진 정원 아궁이에 옮겨준다면 우리가 추위 녹이고 안전하게 잘 끄겠노라고 비굴하게 애걸했다. 주인장 부부는 가게 안에 기거하게는 못해주지만 마당에서 밤을 새게는 해주겠다며 불을 옮기고 사라졌다. 장작불이라도 얻은 건 기적이었다.
<호수마을에도 눈이 내렸다. 겨울 아침, 나보다 먼저 고양이 님이 산책을 하고 가셨다.>
친구와 나는 모닥불 앞에 말없이 마주앉았다.
캄캄한 강촌에서 북한강을 바라보고 앉아 새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차비만 남기고 천천히 먹은 김치볶음밥은 일찌감치 소화가 됐다. 너무 천천히, 오래 먹어서 그런걸까, 아님 추워서 더 그런 걸까. 배는 다시 고파왔다. 식욕이 더 이상 채워질 기미가 없단 걸 본능이 인지한걸까 이내 자포자기 하듯 졸음이 몰려왔다. 허기를 졸음으로 채우려는듯이. 친구는 침묵을 깨고- 안 그러면 무지무지 졸렸으니까- 최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과 어떤 학생이 모 교수를 사모한다는 둥, 어떤 학생은 장학금을 못 받아 울었다는 둥, 어떤 남학생이 널 좋아했는데 넌 몰랐지 라는 둥, 어떤 학생은 집에 돈이 많아 심심해서 대학을 다닌다는 둥...친구가 말이 많다 싶은데 이유가 있었다.
아무 생각없이 졸던 나는 얼른 고개를 쳐들고 북한강을 다시 노려봤다.
강물 위로 구름이 내려앉은 것처럼 피어오른 밤안개가 유령처럼 일렁였다. 그 유령은 우리가 잠들면 목숨줄을 거둬가지 않을까 싶을만큼 기묘했다. 추위에 장작불도 졸렸던가 하얗게 재를 피워 올리며 껌벅껌벅 사그라 드는 중이었다. 친구는 어디론가 달려갔다 오더니 중간 정도 굵기의 장작 두어 개를 잔불 위에 얹고 후후 불었다. 나보다 바지런하고 적극적인 친구를 나는 기특하게 바라보면서 하품을 했다. 덕분에 불은 다시 타올랐고 온기가 더해졌다. 다시 졸음은 맹렬해졌다. 달고도 절대적인 졸음의 맛을 본 것도 그 때였다. 더 이상 할 이야기도 떠오르지 않고 추위도 더해가고 그나마 더 얹은 불도 겨울밤 한기에 쉬이 사그라 들고....우리의 가물거리는 정신이, 어쩌면 까무룩 끝날지도 모르는 생명까지도 기울어가는 듯 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버겁고 감당하기 무거운 게 눈거풀이었고 갸슴츠레해진 눈으로 본 북한강은 안개속에 묻혔다.
몇 개의 실낱같은 희망처럼 깜박이는 잔불씨를 친구가 후우우...불었고 불은 이는 듯 이내 사그라들었다. 친구는 다시 한 번 나지막이, 허나 온 기운을 다해. 중얼거림에 불과할 뿐인 음성으로 “자면..안돼..”를 남겼고 내게 던진 말인지 졸린 자신을 깨우기 위한 독백인지 모를 친구의 말이 끝나자마자 둘 다 잠들었다. 그 때 강촌역 인근 북한강변은 우리에게 불안한 외계였고 우린 생포당한 젊은 두 영혼이었다.
새벽 3시가 넘은 시각, 눈을 떴을 때 우리는 아직 살아있었다.
겨울 해가 다시 세상을 밝혀놓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살아보라는 듯 세상이 준 기회앞에 우리는 잠에서 깨어 부숭한 얼굴로 서로를 보며 생존했음에 안도했다. 장작타던 아궁이를 덮고 첫 기차를 타기 위해 다시 강촌역으로 내달렸다. 주머니를 털어 청량리행 표를 끊고 다시 기차역 벤치에서 졸다가 드디어 첫 비둘기호 안에 몸을 실었다. 외계 행성에서 탈출해 이제 우리들의 별 지구, 서울로 갈 수 있다.
아아,
우리가 그 길고 추운 밤을 견디고 살았구나! 달리는 기차 안에서 우리는 세상의 환대와 관심에 감사했다.
우리는 북한강변 밤안개 앞에서 죽지 않았다. 이만하면 세상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서울로 향하는 텅 빈 비둘기호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어깨와 머리를 맞대고 까무룩 잠들었다. 너덜너덜해진 종이 조각이나 풀어진 스웨터처럼 늘어졌다. 다시 찾은 생명처럼 깃든 햇살은 창을 통해 어깨에 내려앉아 따스했고 환했다. 살아간다는 건 그리 거창한 게 아닐지도 몰라. 그냥 하루 밥 먹고 잠 잘 곳 있어도 그게 어디야? 그 야행성 강촌 여행이 우리에게 일깨워 준 건 단순한 삶이었다.
곧 청량리역이라는 음성은 니들 살았어 안심해라는 지구의 신호처럼 반짝였다.
그 밤의 추위와 텅 빈 주머니가 걱정될지라도 우선 여기에 살아있음은 구원이었다. 서울은 다정한 우리의 별이었고, 선로를 달리는 기차 소리는 살아 뛰는 심장소리와도 같았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서 돌아왔다. 북한강변에서 얼어 죽어 귀신이 되지 않고. 기차를 타고 가는 길은 호기로웠지만 돌아오는 길은 구사일생의 간절한 귀가길이었다. 우리의 작은 자취방은 여전히 그대로였고 가난한 대로 우리의 방은 벅차고 감사했다.
기차가 달리는 동안 나의 기억은 청춘의 겨울밤을 다녀왔다.
기억의 타임머신을 타고 이십년도 넘는 세월을 돌아갔다 오니 기차는 북한강 줄기를 지나 양동역을 앞두고 서행하는 중이었다. 호수로 가는 길은 순정적인 마음으로 세상에서 부딪혀도 구김없이 일상으로 돌아오곤 했던 이십대의 그 신맛 나는 시절이 내게도 있었음을 환기하는 뜻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분명 내 것인 청춘의 겨울밤이 오십의 내 안에 깃들어 있다는 그 환기는 나를 깊이 미소짓게 했다. 기차는 계속 달리고 지금도 나는 기차에 새로운 기억을 더하는 중이다. 나는 지금 서울에 가족을 두고 호수가 나만의 방으로 가는 길이다.
<오늘 필사>
< ...삶을 글로 쓰는 일은 삶을 물음에 던지는 일임은 명백하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삶을 글로 쓰는 것은 오직 자신의 삶을 이루는 것들로 질식되고 있거나 어쨌든 그 안에서 기형적으로 틀어지고 있는 자뿐이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기쁨을 찾기 위함이 아님은 명백하다. 그와는 반대로, 나는 나의 글쓰기로 고통을 구하고 있다. 거의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그렇다, 그것은 아마도 고통이 곧 진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진실이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오로지 하나의 매우 단순한 답이 있을 뿐이라고, 나는 적었다; 진실은 나를 전멸시키는 것이다....(중략) ...나는 나의 펜이 곧 나의 무덤을 파는 삽이라는 것을 내가 어떻게 나의 아내에게 설명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그저 글을 써야만 하기 때문에 글을 쓰고 있으며, 내가 글을 써야만 하는 이유는 내가 날이면 날마다 불어대는 휘파람 소리의 부름을 받기 때문이라는 것을, 삽을 조금 더 깊이 박아 넣으라고, 바이올린을 조금 더 어둡게 연주하여 죽음을 더 달콤하게 노래하라는 부름을 받기 때문이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
-태어나지 않는 아이를 위한 기도 중에서, 120,121쪽. 임례 케르테스.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