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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몰포스 Oct 15. 2023

새벽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  호수로 떠난 여자 3편. 


그 소리에 잠이 깼다.


꿈 속에서 들리는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잠이 깨서도 계속 들렸다. 

꿈이 아니었다. 삐이-익. 삐이-익 하고 반복되는 기계음이었다. 크진 않았지만  멀리서 들리는 작은 소리도 아니었다. 다시 잠들기엔 큰 소음이었다. 거리상으로 방은 아니지만 가까운 어딘가였다. 그게 어디인지를 밝히려면 침대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래서 소리의 정체를 밝혀야 한다고 판단했지만 몸은 꼼짝하지 않았다. 소리에 점령당한 온 몸이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졌다. 사로잡힌 건 청력인데 전신이 말을 듣지 않는 상태였다. 그러면서도 소리의 진원지를 추적했다. 복도 끝 화장실인가? 아니면 바로 옆 갤러리? 아니면 사람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늘 마당에 작은 등이 켜진 뒷집인가? 머릿속으로 가늠하는 사이에도 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내가 찾아 낼 때까지 멈추지 않을 작정이라는 듯 더 집요하게 들려왔다. 이젠 시끄러운 게 아니라 화가 나기 시작했다. 바보처럼 이렇게 잠도 못 잔채 공포에 짓눌려 있을 순 없다. 소리는 어떤 이유로 생긴 소리라기보다 호수마을에 정체 모를 존재, 미지의 힘이 있다는 걸 이제 막 이사 온 이방인에게 경고하려는 어떤 기괴한 신호처럼 여겨졌다. 그런 상상을 부추긴 것이 마을에 누구도 ‘이거 어디서 나는 소리지?’ 라고 기척을 내지 않았다. 이 정도면 이웃 사람들 중 누군가 소리에 잠이 깨어 나타나야 하건만 아무도 기척이 없었다. 그 소리는 나에게만 들리는 것처럼 계속 울려 퍼졌다. 시각은 새벽 2시 24분. 호수마을엔 나와 그 소리뿐이었다. 개 한 마리 짖지 않았다.  낯선 호수마을에서 소리와 대적할 사람은 나 하나였다. 그것은 또 다른 공포였다. 


슬리퍼에 발을 끼우고 코트를 입기 위해 방 끝에 창고 쪽 문을 쳐다봤다.  

창문으로 비친 달 빛 속에서 하필이면 코트위에 걸어둔 검은 모직 페도라가 마치 모자를 쓴 사내의 형상처럼 보였다. 페도라를 쓴 남자 영혼이 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여  멈칫 했다. 지금 나를 공포에 떨게 하는 소리의 주인, 조종자가 바로 저 페도라를 쓴 남자는 아닐까. 언젠가 본 영화 속 장면이 현실과 겹쳐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저건 내 모자야, 그 아래엔 내 코트고 그것 뿐이야. 하필이면 검은 모자고 검은 코트일 뿐이야. 제발 힘 좀 빼라고...어떤 목소리가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제야 발소리를 죽여, 혹시나 소리가 내가 일어나 자신을 찾아나섰단 걸 알아채기라도 할까봐였다. 소리를 조종하는 정도의 실력이라면 내 동태 정도는 훤히 꿰뚫는 다는 걸 그 순간에 생각지 못하고 발소리를 죽였다. 


조심스레 손을 뻗어 모자를 내려놓고 코트를 입었다.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서는 데는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방문을 열었을 때 손잡이가 돌아가는 소리가 여전히 들리는 기계음 속에서도 자극적으로 복도에 울려퍼졌다. 문이 열리면 보여질 어떤 것들, 머리가 길고 허연 낡은 한복을 입은 여자, 허나 발은 없는...그도 아니면 얼굴이 뭉개진 어떤 남자 입가에 피를 흘리며 손에 묻은 피를 흘리며  나를 가리키는 남자, 그 피가 복도 바닥에 툭툭 떨어지는...어떤 상태든 내가 마주해야 한다는, 이젠 정말 본격적인 공포와의 대면이 이 문을 열면 닥쳐오리라.  목숨을 걸 듯  방문을 열어 젖혔다. 갇혀서 공포에 질려 죽으나 나가서 맞닥트려 죽으나... 정말 그랬다. 그런 각오로 방문을 열어젖혔다. 현관 입구도 복도도 조용했다.  아무도 없었다. 녀석은 제법 고단수다. 재빠르게 피한거야. 몸을 숨긴 거지. 정체를 은닉한 거야.  보이는 건 없지만 공포는 여전했다. 아니 보이는 게 없어서 공포는 가중됐다. 얻은 거라면 소리가 나는 쪽이 갤러리 쪽이라는 것이다. 하필이면 갤러리라니. 




건물 현관에서 오른쪽으로 내 작업실이 왼쪽으로는 갤러리였다. 

갤러리 입구는 문은 없지만 입구에서는 벽만 보이고 입구를 지나서 몸을 뒤돌아야 전시장이 펼쳐지는 구조였다. 입구에 들어선다고 갤러리가 훤히 보이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한 번의 고비를 넘어야 한다. 갤러리는 컴컴했다. 스위치는 오른쪽에 있었고 더듬는 동안 등 뒤 갤러리에서 누군가가 나를 덮친다면 꼼짝없이 당해야한다. 그 넓은 갤러리 어둠 속에 누가, 어디에, 어떻게 숨어있다가 나를 덮칠지 모를 일이었다. 갤러리 공간 전체가 이젠 공포의 대상이었다. 게다가 실루엣을 확인할 달빛조차 있을 공간이 없이 갤러리는 입구 빼고는 다 막혀 있어서 어둠은 더 무거웠다. 마치 공포를 도와주려는 듯이 어둠도 숨을 죽였다. 갤러리 안 가득 찬 어둠의 무게가 내게로 달려오는 듯이 무서웠다. 두 손을 갈고리로 만들어 입을 벌린 채 내게 다가오는 공포의 정체가...


갤러리에 불을 켰다. 

텅 비어 있었다. 소리의 진원지는 갤러리 구석에 마련된 컴퓨터였다. 시커먼 모니터 화면에 빨간 불이 깜빡이며 내는 소리였다. 누군가 경보시스템을 잘못 건드렸거나 다른 갤러리와 연동됐다면 그곳에 문제가 생겼단 거다. 적어도 내 작업실이 있는 곳엔 문제가 생길게 없다. 그러다가 설마 화장실 쪽으로 누가 침입을 했고 그걸 감지하고 울리나? 싶어 이번엔 갤러리를 나와 복도에 불을 모두 켰다. 역시 텅 비어 있었다. 복도를 걸어갔다. 이번엔 발소리를 죽이지 않았다. 이판사판이었다. 하나 둘 불이 켜지고 어둠이 사라지자 좀 더 대범해졌다고 할까. 이번엔 복도 끝 화장실 문을 열었다. 아무도 없었다. 건물 모든 곳에 불이 켜졌고 아무 이상이 없는데 경보음은 계속 울리는 중이었다. 방으로 다시 돌아왔다. 건물 전체에 불을 환히 켜둔 채로, 레지던시 관리자인 마을 어른께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렸다. 오분도 안돼 동네 어르신이 자다 만 차림새에 패딩코트만 걸친 채  달려왔다. 컴퓨터 전원을 모두 뽑고서야 소리가 멈췄고 새벽에 보안 경보음 소동은 끝이 났다. 

"그게 왜 이 시간에 울렸을리껴."

동네 어르신은 마른 얼굴을 쓰다듬더니 하품을 하며 한마디 했다. 

호수에 새벽은 다시 정적에 휩싸였다. 또 다른 공포의 전조처럼. 


방으로 돌아와서도 심장은 아직 두근거렸다.  

계속 이런 밤을 보낼 수 있을까? 잠들지 못했다. 따스한 우유를 마셔보기도 하고, 팩을 렌지에 데워 발을 데우며 침대에 누워 두 눈만 멀뚱했다. 다시 일어나 앉았다. 그러다가 설마...하며 상상이 작동했다. 설마...설마 말이지. 내가 이 마을에 오게 된 게 이미 공포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죽은 사람들, 그러니까 영혼들이다. 아까 까치머리를 하고 부스스한 얼굴로 무심히 다녀간, 관리자 어르신조차도 산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잘 생각해보자. 나 같은 아마츄어 작가가 떠억하니 180일간이나 작업실을 무료로 쓸 수 있다니, 좋은 기회고 행운이라 생각했는데 너무 쉬웠잖아? 그래, 쇠락한 영혼들만 사는 마을에 온 거야. 이상한 소리는 오늘이 시작일거야. 하필이면 경보음이 내가 온지 삼일 만에 울리느냔 말야. 아니 어쩌면 이미 이상한 낌새는 곳곳에 있었는지도 몰라. 내가 눈치를 못 챈 거지. 그럼 그들이 이 마을에 나를 불러들인 이유는 뭘까? 에서부터 또 다른 의혹이 이전의 공포의 연상선상에서 커지기 시작했다. 설마 이 모든 게 꿈이라면? 


어쨌거나 나는 공포심의 주인공이었던 블랙 페도라부터 치우기로 했다. 

갈색과 검은색 중에 왜 하필 검은 색을 골랏나 잠깐 후회도 했다. 방 안 창고쪽 문에 걸어 두던 시커먼 페도라를 이번엔 트렁크 위에 올려두었다. 그러고나니 모자를 쓴 남자가 웅크리고 앉은 것처럼 보일 수 있겠다 싶었다. 다시 책상위에 책 위에 올려두었다. 좀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오전 9시가 돼서야 겨울해가 훤해 세상이 안전하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새벽을 설친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어둠이 공포감마저 데려가 버린 듯 해가 중천에 떠오르고서야 무서움이 사라졌다. 아니면 졸려서 다 소용없었거나. 어둠을 물리친 빛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나는 새벽의 공포가 날이 밝았다는, 환해졌단 사실 하나만으로 사그라져 있음을 느꼈다. 어둠의 공포가 지나가고 아침의 평온이 도래한 순간은 그야말로 환생의 감격 같았다. 자다가 은연중에 손이 닿은 곳에 사람의 몸뚱아리가 있다는 것이, 그런 일상이 얼마나 안심되는 일인지도 깨달았다. 혼자 공포와 사투를 벌인 후에야 남편의 체취가, 가족이 그리워졌다.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방심할 수 없다. 새벽에 공포를, 공포가 밝혀지던 그 고비고비를, 그 고비에서 만난 나의 마음을, 두려움을 글로 써보자... 침대에서 일어나 노트와 필기도구를 챙긴다. 무서움을 돌파하는 나의 무기는 노트와 펜이다...공포의 경험을 글로 쓰면 되는 일이다. 그래야 만약에 내가 당하더라도? 내 가족이 왔을 때 다른 사람이 왔을 때 내 기록을 보고 사건의 경위를 밝혀 낼 테니까. 쓰다 보니, 문장을 따라 또 다른 비약에 이르렀다. 내가 오기 전에 나 같은 희생양이 어딘가에 갇히거나 묻혀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게 지금 혼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공상의 극치라면 그것 역시 좋다. 잘하면 괜찮은 공포소설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좋다, 오늘은 공포라는 경험을 글감으로 일기장을 채워보자. 새하얀 페이지에 까만 글씨로 나의 공포담이 이어진다. 그렇게 혼자의 하루가 의외의 사건으로 채워진다. 새벽에 들려온 소리를 시작으로 공포감의 확장에서 호수마을에 대한 의심과 상상까지...공포의 새벽도 지나고 환한 겨울 햇살아래서 졸음에 겨워 하는 말이지만 이게 혼자 사는 맛이지.  


<오늘의 필사>

...김시습이 맞닥뜨린, 어둡고 어두울 정도로 어두운 밤은 아니었지만 중학교 2학년 시절 나도 어둡고 어두운 어둠을 본 적이 있었다. 그 어둠을 보지 못했더라면 나는 아주 하찮은 조각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어둠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으면 그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제 몸으로 어둠을 지나오지 않으면 그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어둡고 어두울 정도로 가장 깊은 어둠을 겪지 않으면 그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그건 중학교 2학년생에게는 너무 가혹한 수업이었지만, 또 내 평생 잊히지 않는 수업이기도 했다. ...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201,202 쪽 중에서/ 마음산책.  

이전 02화 호수가에 나만의 방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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