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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봉 칡꽃 향그러우나 서벽엔 일제 진지동굴 씁쓸
by
무량화
Aug 08. 2024
아래로
성산일출봉은 걸출하게 잘 생긴 한 덩이 수석이랍니다.
그만큼 수려하면서도 위용 장관이지요.
성산일출봉 오르는 길.
들머리 지나 계단에 이르자 달콤한 향훈이 스며들더군요.
알 듯 모를 듯 그러나 친근한 내음이었어요.
어렵잖게 향기의 발원지를 찾았는데요.
한껏 무성한 칡덩굴에 피어난 자주보랏빛 칡꽃이었습니다.
해당화나 찔레꽃이나 인동초 꽃향기처럼 오래전부터 오감으로 익힌 내음.
그처럼 스스럼없이 자연스레 익숙해진 칡꽃 향기네요.
요즘이 때마침 절정의 개화기인 듯 여기저기
숲덤불에서 고개 갸웃 내미는 칡꽃.
이건 아예 향수통에 빠진 느낌이 들 정도였어요.
낱낱의 세포마다에 탱탱하게 채워지는 그윽하면서도 감미로운 향.
성산일출봉 오르는 내내 온 데서 번지는 칡꽃 향에 스르르 그만 침몰해 버렸지요.
꽃 향의 세례를 받으며 걷는 산행은 숫제 황홀지경 거닐기.
그 향기에 취해 걷다 보니 어느새 성산일출봉 정상에 이르렀습니다.
나비처럼 이리도 가벼이 일출봉 정상에 올라보기도 처음입니다.
산자수명한 제주, 하여 휴가철 아니라도 사계절 제주는 각광받는 여행지 맞습니다.
따라서 공항은 늘 붐벼, 오분 단위로 비행기가 이착륙을 하더군요.
관광지
제주섬은 바가지 물가로 외면당했다느니, 제주로 여행을 갈바엔 일본 다녀오겠다 한다지만 여전히 매혹적인 관광지 맞아요.
한여름 휴가시즌엔 아예 항공편이 동나기 예사이거든요.
제주살이
한해 해볼 거라고 섬에 들어온 제 경우, 꿀단지에 빠져
삼 년째 서귀포에 사는데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여기서 노후 즐길 겁니다.
날마다
동으로 서로, 혹은 한라산 좌우로 넘나들며
날씨만 받쳐주면 걸어서 구석구석 쏘댕기는데요.
주말
에 찾은 성산일출봉 인근은 여태껏 와본 중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았어요.
단기 여행객들은 일출봉 정상에 올라 인증샷 날리고 바삐 내려와 또 다른 장소로 이동을 할 겁니다.
여유작작인 저는 그간 별러온 대로 여기에도 많다는 동굴진지를 찾아보기로
했어
요.
마침 썰물 때라 물이 쭉 빠져 수마포 해안 진지동굴 탐방로도 안전하게 확보돼
있었거든요
.
태평양 전쟁 막바지, 일제는 제주도를 그들 최후의 보루로 삼아 결사 항전의 의지를 다졌다네요.
일본 본토를 사수하기 위해 정예부대 7만여 명이 제주도로 들어와 '결 7호 작전'을 펼쳐나갔답니다.
식민지 백성을 동원해 단단한 암반 뚫어 비밀 진지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가미카제 특공대를 매복시켰던
것이지요
.
이처럼 바다와 면한 제주 해안가를 연합군의 상륙 거점으로 예상하여 제주 곳곳에 진지동굴을 구축하였는데요.
수월봉·송악산·서우봉·삼매봉·일출봉 등 제주도에는 이 같은 진지동굴이 5백여 개 이상 될 것으로 파악하고 있더군요.
패색 짙어질수록 발악하듯 일제는 총력전을 펼치며 혈안이 돼, 온 섬을 요새화하려 들었더랍니다.
이에 따른 일제의 모진 수탈 정책으로 현지에 사는 제주인들의 피맺힌 한, 무릇 그 얼마일까요.
그때 강제 동원된 조선인이 이천오백여 명으로 추산되는데, 그들은 해군 항공기지와 해상특공기지 건설 현장으로 내몰렸대요.
당시 제주도 인구는 약 25만 명이었으니 전체 인구의 10분지 1이나 된다네요.
결국 젊은 남정네는 거개가 차출당해, 남의 나라가 벌인 전쟁의 광기에 억울하게도 희생 제물로 바쳐졌답니다.
하긴 남 탓할 일만도 아니겠지요.
나라가 힘없으면 주변국의 먹잇감 되기 십상이므로 모두가 한마음 되어 국력 극대화에 매진해야 할 이유입니다.
광치기 해변에서 마주 보이는 일출봉 석벽은 깎아지른 수직 단애가 더할 나위 없는 명품이지요.
바짝 다가가서 보면 그랜드캐년 협곡 응축돼 쌓인 일월의 나이테처럼 켜켜이 포개진, 서로 결 다른 화산석이
압도해 온답니다.
아득한 신생대 때, 펄펄 끓는 마그마가 바닷속에서 분출되며 겹겹 쌓여 층을 이룬 수성 화산체인 일출봉.
대한민국 천연기념물이자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인증을 받은 귀한 보물인데요.
오랜 세월토록 파도에 깎이고 바람에
씻겨온
풍화작용으로 기암절벽마다 기기묘묘한 침식 절단면을 이룬
지층들 장관이지요
.
바로 이곳, 지질 트레일 코스 따라 걷다 보면 지구 역사와 화산의 퇴적 과정을 적나라하게 관찰할 수
있답
니다.
그럴 수 없이 훌륭한 야외 지질학습장에 견학 온 기분이 들
정도인 곳이
지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광휘로운 해돋이를 볼 수 있는, 그래서 이름도 성산일출봉.
이 장엄한 경관에다 일제는 대자연에 아주 몹쓸 해작질을 해놓았더랍니다.
검은 입 헤~ 벌린 동굴도 있는가 하면 파다가 중도에 그친 미완성 굴, 더러는 바위 깨작거리다 만 흔적도 남아있더라고요.
여기저기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 암벽에 구멍을 내고 지역민들
내몰아 괭이질을 하고 끌질로 동굴 넓혀나갔을 테지요.
의지할 거 하나 없는 저 가파른 낭떠러지에서 바위 굴 파다가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무고하게 스러져 갔을는지요.
일출봉 오른쪽을 감싸고 있는 수마포 해안 절벽 아래 콘크리트 구조물의
진지동굴을
필두로 벼랑에도 동굴 여럿 위장시켜
뒀더랍
니다.
연합군의 총공격 시 방공호로 사용하기 위해 구축된 진지동굴을 해안절벽 따라 열여덟 개나 연이어
뚫어놨다는
군요.
태평양 전쟁 말기, 일제가 해상특공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구축한 동굴진지가
그렇게
일출봉 밑자락에 줄지어
뚫
려있었어요.
일본군이 연합군 함대 향해 자살 폭파 공격을 시도코자, 수상 특공 병기인 소형 어뢰정을 보관하기 위한 격납고로
구축됐다
는데요.
성산일출봉의 동굴 진지는 입구가 스무 개 가까운 데다 길이 12여 m에 내부 동공 크기가 3∼4m에 이른다고
해요
.
한 곳 구조만 여러 갈래로 뚫려 '王(왕)'자 형과 흡사하고 나머지는 '一'자 형태를 띠고 있다 하네요.
패망을 목전에 둔 일제는
이처럼
최후의 발악을 하게 됩니다.
연합군에 대한 옥쇄작전을
펼칠
자살 특공대를
조직해
폭약과 함께 진지동굴에 은닉시켜
두었던 거지
요.
아픈 과거에 대한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활용 됨직한 진지동굴인데 의외로 방치된 채 뒷전으로 밀려나있는 느낌이
들더라고
요.
그러나 현재 엄연한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311호입니다.
소문난 카페니 맛집 투어나 하면서 먹고 마시며 즐기는 대신 요즘 제법 뜨고 있다는 다크 투어리즘
, 어때
요
?
여길 와보면 '그래도 일본 여행'소리가 쏙 들어갈텐데.
하건만 갯바위 끝에는 낚시꾼만 오도카니 서있을 뿐 한나절 동안 찾는 이 전무했더랍니다.
아무도 없다 보니 영 휘휘해, 해안에 깔린 암반 넘나들며 재빠르게 둘러보는 동안 일출봉 오르면서도 흘리지 않은 땀에 흠뻑 젖었지요.
이곳 지질 트레일과 진지동굴을 한데 묶으면 훌륭한 역사
교육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으련만 제주관광청은 왜 뒷짐 쥐고 있는지?
해당 부처부터 하품만 하지 말고 좀 더 적극적으로 관심 갖고 홍보에 나서길 촉구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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