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권의 중국어원서가 내 것이 되기까지
중국어원서를 읽다 보면 이런 경험을 하게 된다. 읽을 땐 분명히 이해한 것 같았는데, 막상 책을 덮고 나면 줄거리도 흐릿하고, 인상 깊었던 문장조차 잘 떠오르지 않는다. 처음 읽었을 땐 이해했다 믿었지만, 그것이 내 것이 되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반복 읽기'다. 하지만 이 반복 읽기가 단순히 책장을 여러 번 넘기는 것이라면, 우리가 기대하는 효과를 얻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메타인지를 높이는 반복 읽기’이다.
메타인지는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인식하는 능력이다. 즉, 책을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이해했는지, 어떤 부분에서 막혔는지를 스스로 점검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이 부분은 무슨 말이지?”, “이 문장을 내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가 뭘까?” 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읽는 것이다. 이런 메타인지적 질문은 단순히 독서량을 늘리는 것보다 훨씬 깊고 밀도 있는 독서 경험을 만들어준다.
처음 원서를 읽을 때는 어휘나 문장 구조, 문화적 배경 지식의 부족으로 이해가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다. 나 역시 《都挺好》를 읽을 때 사업 이야기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人民的名义》에서는 복잡한 정치적 맥락 때문에 이해가 더뎠다. 《十六夜善房》에서의 조리 과정은 흥미로웠지만, 요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건, 이런 어려움 앞에서 “역시 원서는 나랑 안 맞아” 하고 덮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처음에는 원서를 가볍게 훑으며 읽는 것도 좋다. 요즘 사람들은 중드 같은 영상 콘텐츠도 ‘스킵’하며 본다. 중국어원서라고 다를 게 있나. 완벽하게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전체 흐름을 느끼며 부담 없이 읽는 것이 첫걸음이다. 중요한 건 원서와 친해지는 것이다.
나의 경우, 1 회독에서는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며 ‘다시 돌아볼 부분’을 표시해 둔다. 문장의 정확한 뜻을 몰라도 괜찮다. 잘 이해되지 않는 단어나 구조는 ‘해석’이라고 적어두고 그냥 넘어간다. 인물에는 네모를, 배경 묘사나 굵직한 사건에는 밑줄을, 작가의 문학적 표현에는 ‘문학’이라고 표시를 남긴다. 처음부터 꼼꼼히 이해하려 하기보다, 전체를 조망하는 데 집중한다.
2 회독은 처음 표시해 둔 부분들을 중심으로 다시 읽는 시간이다. 의미를 알 수 없었던 단어는 사전을 찾아보고, 문장 구조가 헷갈렸던 부분은 천천히 뜯어본다. 때로는 관련 배경지식을 찾아보기도 한다. 그렇게 읽다 보면, 내가 모르는 줄도 몰랐던 부분들이 하나둘 선명하게 드러난다. 메타인지가 바로 여기서 작동한다.
3 회독에서는 책의 핵심 키워드와 문장, 주제를 정리하고 그것을 나의 삶과 연결해 본다. “이 책이 내게 어떤 질문을 던졌는가?”, “이 문장에서 내 삶에 가져올 수 있는 변화는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통해 읽기는 단순한 이해를 넘어 ‘사색’의 단계로 이어진다. 철학자 슈바이처는 “독서는 단지 지식의 재료를 공급할 뿐이다.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사색의 힘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이 바로 반복 읽기의 핵심을 짚어준다.
그렇게 한 권의 중국어원서를 천천히, 여러 번 읽고 나면 자연스레 자신감이 생긴다. 어휘를 외우려 애쓰지 않아도 책 안에서 계속 마주치는 단어는 어느 순간 내 것이 된다. 작가의 의도와 서사의 맥락이 비로소 나에게도 꿰뚫려 보이기 시작한다. 마치 낯선 도시를 여러 번 걸으며 길이 익숙해지는 것처럼, 반복 읽기는 우리에게 언어와 이야기의 지도를 몸에 익히게 해 준다.
모든 중국어원서를 이렇게 읽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떤 책은 꼭 이렇게 읽어야만 그 진가가 드러난다. 길거리 음식처럼 간단히 소비되는 책도 있지만,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요리는 천천히 씹어야 제맛이 나는 것처럼 말이다.
반복해서 읽을 만한 원서, 내 인생 중국어원서라고 느껴지는 책이라면, 꼭 한 번 ‘메타인지를 높이는 반복 읽기’를 해보자. 단 한 권의 책이라도 그런 방식으로 읽고 나면, 독서의 깊이는 전혀 다른 차원이 된다. 그리고 그 경험은, 또 다른 책을 마주할 때 더 단단한 나로 서게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