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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B Oct 22. 2023

쓸모 없음의 쓸모 있음

창광 선생님 2

(제이선생님) 선님께서는 명리학이 실용 학문이라고 이야기하시던데요, 명리학의 역할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습니다. 


(김성태 선생님) 학문으로 이야기할 것 같으면, 사람 사용 설명서라는 '육신의 생화극제'와 만물 사용 설명서라는 '오행의 상생상극', 시간 사용 설명서라는 '월령의 합충변화'를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이 세 가지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실용적으로 활용되는 학문이라고 본 것이지요. 

 

(제이선생님) 그런데 선생님 같이 잘 보시는 분들은 명식을 딱 보게 되면, 이 사람의 임무가 무엇인지, 본질은 어떤지, 그리고 어떤 쓰임을 가지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용될지, 무엇을 가지고 이 사람이 살아갈지, 이 만물을 행위할지... 이런 것이 다 보이시잖아요?
 
(김성태 선생님) 그걸 억지로 찾아서 보면은 손님 시간 없어서 가십니다. 본능에 가깝도록 연습을 해서 몸에 붙여야지요.

 

(제이선생님) 그냥 샥 바로 보이시는 거지요?
 
(김성태 선생님) 그렇지. 그냥 해야 되는 거지. 그거를 굿 세 번한 말문 안 트인 무당처럼 그러면 안 되지요. (웃음) 그걸 앉아서 한 30분씩 쳐다보고, 찾고... 이렇게 하면 그건 안 되지요. 연습이죠. 연습을 해서 그게 습관이 딱 붙어야 돼요. 만물 사용 설명서라는 오행의 상생상극, 사람 사용 설명서라는 욕신의 생화극제 그리고 시간 사용 설명서라는 합충 변화. 논리적으로나 뭐나 학습 목차만 다 알고 있으면 다 됩니다.


눈 감고도 자동으로 되어야지요. 연습을 본능적으로 해야지. 프로축구 선수들한테 '공을 알아서 차냐? 정신없이 차냐?' 물어보면 유명한 선수들 다들 정신없이 찬다고 해요. 하나의 이론을 50개의 사주를 놓고 임상을 해야죠. 그런데, 쉽지가 않아요. 아는 건 아는 게 아니에요. 평상시도 모르는데, 현장 가면 자동으로 해져야 아는 거예요. 명리학은 칼싸움과 같아요. 지금 시간이 아니면 다음 시간엔 만나지 못하는 이 땅의 기운.

 

설명서의 내용을 설명해 주면, 그다음은 그 물건을 가진 사람의 몫입니다. 자기가 할 일이지요. 너무 많은 개입을 할 수는 없지만, 그걸 해주는 게 우리의 역할이지요. 연습을 하면 돼요. 연습 많이 하시면 돼요. 자다 말고도 이렇게 가서 이렇게 축구차도 공차도 공이 들어가야 돼요. 

 

(제이선생님) 그러면 선생님. 내담자가 와서 무언가를 물으면, 어떻게 살아갈지 그런 해결 방법을 제시해 주시나요?
 

(김성태 선생님) 해결 방법은 없어요. 상식이라고 하는 거 있잖아요. 우리가 살다 보면 상식이라는 것을 잘 지키지 못해요. 종교적으로는 초심, 사회적으로는 본질이라고 하지요. 이걸 다 잊어버려요. 그래서 초심 찾아주고, 본질 찾아주고, 상식 찾아지고 그러지요. 맨날 통변이 똑같아요. 파란불에 건너가시고, 빨간불에 건너가지 마시라는 정도만 이야기해 주면 되지요.

 

(제이선생님) 그러니까 너의 임무는 뭐란다, 너의 쓰임은 뭐란다. 이런 이야기해 주시는 거지요?

 
(김성태 선생님) 왜 이렇게 변했냐. 네가 분수에 안 맞는 것을 요구했으니 불행한 것이다. 상담이 뭐 대단한 거 아니에요.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분수에 안 맞는 소원을 내려놓게 하고, 자식이나 남편이나 부인을 바꾸려 하는 말투와 눈빛을 못하게 하고. 이런 것을 고쳐주려고 노력을 하는 게 상담이지요. 

 



(제이선생님) 선생님 저번에 저와 통화하실 때, 명리에는 사실(事實)이 있다고 이야기하시면서 선악(善惡)도, 피하(彼我)도 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그런 이야기하시면서, 명리학자는 봄이 와도 따뜻한 걸 느끼지 말고, 겨울이 와도 추운 걸 느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저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김성태 선생님) 명리에는 선악이 없지요. 명리학이 대전제로 삼는 것은 용(用)입니다. 물건을 용도에 맞게 쓸 수 있어야지요. 선악으로 구분해서는 안됩니다. 명리학에 있어서 '주관'은 절대 용납이 안 되는 단어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가 감성이나 감정에 치우치면 객관성을 잃어버릴 우려가 있지요. 그렇게 되면 안 됩니다. 사람인지라, 명식을 대하면서 주관화시킬 수 있지요. 가령 자신의 경험에 의해서, 상관만 보면 이혼시키려 한다거나 하는 사례를 생각해 보세요.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을 해버립니다. 그러면 안 되잖아요. 모든 사람은 각자의 용도가 있습니다. 그 용도를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무용지대용(無用之大用),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 못 쓰는 물건은 없습니다. 역학자는 그렇게 하면 안 되지요. 그러면 뭐 '나는 축구 선수만 상담할 거야', '나는 이혼녀만 상담할 거야' 이러면 안 되잖아요.


(제이선생님) 너무 많은 인생들을 접하셨잖아요. 
 
(김성태 선생님) 그렇죠. <무당풍경>이라는 책을 쓸 때,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사연만 들으면 눈물이 나는 거예요. 이쪽저쪽이 없는 그냥 공허한 공간에 서서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사람. 그러한 냉정함, 쌀쌀맞음. 뭐, 어떻게 이야기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런 것들이 필요했지요. 무언가 확 날려버려야 하는데 그간에 손님들에게 들은 이야기들을 무당이 굿하는 것과 같이 형상화하면서 비소설을 한 번 써보았습니다. 그 소설을 쓰고 나니까 조금 홀가분하더라고요. 

 

(제이선생님) 네. 쌓이셨던 것을 확 풀어내셨네요.
 

(김성태 선생님) <자전거>라는 거글을 쓸 때는 안타까움이 지워지지 않는 한에 관하여 생각했지요. 구조적 한은 사회적으로 개선해야 하지만, 개인적 한은 날려버려야 하잖아요. 역학자가 부끄럽게 한을 가지고 있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너무 부끄럽지 않나요?


(제이선생님) 역학자도 사람인데 어쩌겠습니까.
 
(김성태 선생님) 안 된다니깐요. 그러면 안 된다고. 내 생각이 그렇다는 이야기인 거지요. 그래서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창광'과 '김성태'를 나누는 작업을 오랫동안 했지요.


(제이선생님) 창광과 김성태를 나누는 작업이라고요?
 

(김성태 선생님) 오래 했지요. 문을 '딸깍' 열고 들어 오면 '창광'이 되었다가, 문을 '딸깍' 열고 나가면 '김성태'가 되지요. 구분을 열심히 했습니다. 지금 '김성태'를 쳐다보면 이건 뭐. 10살도 안 된 것 같아요. '창광' 쳐다보면...


(제이선생님) 500살이십니까? (웃음)

 
(김성태 선생님) 사람들이 조금 무서워하고 그러지요. 존경도 해주고, 어디 가면 대우도 해주고. 그런데 '김성태'는 그렇지 않아요. 


(제이선생님) 네네, 알겠습니다. 다른 사람의 명을 수도 없이 대하시고, 그 인생들을 다 봐오시면서 참 힘들기도 많이 힘드셨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김성태 선생님) '사유관'이라고 하는 것이 있어요. '사유 체계'라고도 하지요. 나는 지금도 '이 시간은 나의 사유 체계를 넓히고, 사유관을 또 하다 하나 더 득템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사람들을 만납니다. 가끔가다 사람은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생길 때가 있어요. 손님에게도 '좋은 경험 하신 거예요'라고 이야기하지요. 내 특기가 그런 거예요. '이번에 돈이 안 벌렸어? 아직 안 벌린 거지요. 내일 벌리면 어떻게 하려고요?' 이런 식으로.


사유관이 '아직관'으로 바뀌었지요. '안 된다'는 것은 없어요 '아직 안 된 것이다'라고 말해야지요. 원대한 꿈보다는 자기부터 위로를 해야 합니다. 자기가 자기를 위로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사람을 대하면 명리학 하면서 한도 안 쌓이고 억울할 것도 없지요. 


사람들이 나쁘게 변하는 것은 부러움을 못 견뎌서 그래요.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게 젊음이거든요. 사실이에요. 본능적으로 젊음이 부러워요. 그래서 젊은 행사를 하려고 하다 보니까, 주변머리가 없어지는 것이지요. 세속적으로는 돈과 권력이 부러워서 그걸 쫓아가다가 앉은뱅이가 되기도 하고, 구차한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부러워서 그래요.


(제이선생님) 나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는 가운데서 불행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김성태 선생님) 그렇죠. 그러니까 부러움만 없으면 돼요. 그렇다고 부러움이 없으라니까...

 
(제이선생님) 자포자기는 안 된다, 이 말씀이시지요?


(김성태 선생님) 그렇지요. 그러니 검이불루(儉而不陋 )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말고, 화이불치(華而不侈) 화려하나 치장하지는 말라는 삼국유사의 이야기가 가장 어울리는 인생일 것 같은 느낌이 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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