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당신들의 순함을 잊지 않기 위해

순한 맛 라면

by 카미유

문득 내 집이 아닌 곳에서 가장 많이 묵었던 곳이 어디였을까 생각해봤는데 답은 쉽게 나왔다. 큰고모의 집이었는데 초등학교 꼬맹이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방학 때만 되면 최소 보름에서 한 달 가량 있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고모의 장남인 동갑내기 용이와 친했기 때문이지만 그것만으론 뭔가 부족했다. 예나 지금이나 난 잠자리를 가리고 방구석에 틀어박히는 성향인데다 아무리 친척이라도 그렇게 오래 남의 집에 머룰러야 했던 특별한 사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염치없는 짓이기도 한 게 용이네 집은 우리 집보다 경제적 사정이 좋지 못했다. 고모부는 아버지처럼 출퇴근하는 일반적인 회사원이 아니었고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조차 몰랐다. 다섯 식구가 사는 작은 집에 방은 고작 두 개였고 가장의 불안정한 벌이는 예사롭게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고모, 고모부, 용이, 용이의 여자 동생 둘까지 어느 누구도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해온 한 아이에 대해 싫은 내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들은 내가 보고 겪었던 수많은 가족 중 가장 순하고 자애로웠다. 우리 집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더없는 안정과 온기는 방학 때마다 이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만들었다. 사실 이는 할머니의 숨겨진 의도가 반영된 것이기도 했다.

- 느그 애들도 셋이나 되는데 괜찮겠나?

- 엄마, 그런 소리 하지 마소. 용이랑 같이 공부도 하고 잘 지내니 얼마나 좋소. 밥상에 숟가락 하나만 더 놓으면 된다. OO 이는 우리 애나 마찬가지다.

할머니는 방학만 되면 이렇듯 용이네 집에 나를 맡겼다. 가뜩이나 없는 집 딸에게 입 하나 더 보태는 게 안타까웠을 법도 하지만 속내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내가 그 집에서 지내며 사랑받길 원했던 것이다. 여느 아이들처럼 철없이 까불던 아이가 언제부턴가 말이 말라가고 집에만 있는 걸 눈치챈 할머니는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표면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키진 않았지만 어쩌다 튀어나오는 신경질적인 예민함 역시 제 어미의 부재로 인한 거라 짐작했다. 집안에 장기 입원 환자가 있으면 화목한 가정도 어쩔 수 없는 침묵과 무게감을 견뎌야만 했다. 어른들은 그렇다 쳐도 아이들에게만은 짐을 얹고 싶지 않았던 두 노인네는 본인들이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을 누군가는 메꾸어주기를 바랬다. 그 대상으로 낙점된 게 바로 여섯 자식 중 가장 심성이 부드러웠던 큰딸, 나에게는 큰고모였다.

용이네 집에 가면 처음부터 내 집인 양 한쪽 방에 이불을 깔고 태연히 밥상머리를 차지했다. 고모는 점심시간만 되면 봉지라면을 큰 냄비에 끓인 뒤 네 아이를 배불리 먹였다. 라면을 매일 먹을 수밖에 없는 넉넉잖은 살림이었지만 마냥 라면을 좋아했던 어린 우리로선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고모가 끓인 라면은 기본적으로 순함을 지향했다. 신라면처럼 매운 라면은 피했고 같은 라면일 경우 매운맛이 아닌 순한 맛을 선택했다. 조리과정은 라면 네 개에 계란 두 알을 푼 뒤 파를 얇게 썰어 넣고 마지막에 찬밥을 마는 일반적인 코스. 할머니의 라면은 국물의 양을 줄이고 스프를 몽땅 넣어 진한 맛이 난데 반해 고모의 라면은 물이 넉넉하고 스프도 살짝 남기면서 전반적으로 맵지 않고 무난한 간이었다. 라면을 끊이는 방식도 성격과 연관이 있는 것일까. 할머니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할머니의 맵고 진한 라면보다 고모의 순한 맛 라면을 선호했다.

용이네 가족은 고모부를 제외한 모두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밥 먹기 전 항상 감사의 기도를 올렸는데 교회를 나가지 않는 나도 옆에서 흉내를 내며 한 가족 행세를 했다. 할머니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고모네 집에서 나는 증발했던 말을 되찾았고 침식되던 아이들의 세계로 대가 없이 편입할 수 있었다. 모로 누워 있다 느닷없이 장기 한판 두자며 주섬거리던 고모부, 눈앞에서 거친 단어들을 삭제해버린 용이, 오빠 소리를 입을 달며 다채로운 놀이에 동참했던 동생들, 순한 맛 라면을 끓여주면서 어머니의 임종 때 제일 먼저 다친 마음을 안아줬던 고모. 이들은 한마음으로 차갑고 날카롭던 아이의 뾰족함을 세심하게 갈아주었다. 행여 실수로 찔러도 서로에게 큰 상처를 가하지 않도록 말이다.

그때의 기억과 입맛을 보내고 싶지 않아서일까. 사람들은 통상 매운맛 라면을 더 선호하지만 난 여전히 순한 맛이 좋다. 너구리, 진라면 모두 순한 맛으로 사고 그조차도 스프를 다 넣지 않는다. 순함과 착함이 동의어가 아니듯 용이네 가족 역시 살면서 내가 알지 못했던 다툼과 악의는 존재했을 것이다. 나는 천국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에 가까운 인간이다. 하지만 혹여 천국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용이네 가족은 서슴없이 앞줄에 설 자격이 있을 거라 믿는다.


ramen.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