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단칸방의 고구마
5학년때 별명이 강냉이인 아이가 있었다. 본명은 이강형인데 딱 봐도 꼬맹이들이 이름 따라 성의 없게 지어진 이름이었다. 호빵의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나도 그렇게 불린 적이 있으니 강형이 역시 강냉이와 하등 연관성이 없는건 당연했다. 그냥 모두가 강냉이라고 하니 강냉이로 부르는 게 마땅할 뿐. 그와의 관계는 가깝다면 가까울 수 있는데 친하다는 말로 정의 내리기엔 뭔가 좀 아쉬웠다. 학교에서 대화를 많이 하거나 도시락을 나눠 먹는 사이도 아니고 하교길을 동행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해 강냉이의 집에 제일 많이 놀러 간 아이는 나였다. 우리 반 어떤 아이보다 그의 집에 많이 출입했던 이유는 강냉이의 그림 실력이었다. 강냉이는 내 로봇 만화의 완성을 위해 꼭 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강냉이는 외모와 성격 모두 존재감을 드러내기 힘든 아이였지만 미술 시간만 되면 주목을 받았다. 인물화 풍경화 정물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뭐든 잘 그려 교실 뒤편에는 늘 그가 그린 그림이 붙어 있었다. 당시 로봇 만화 그림에 빠져있던 나는 강냉이를 흉내 내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그의 그림들은 단순한 모사에 그치지 않고 창조적이며 역동적인 힘이 느껴졌다. 흔한 미술학원 한번 다닌 적 없음에도 벌써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졌으니 재능이란 진심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하루는 습관처럼 로봇 대백과 사전의 로봇을 그리고 있는데 강냉이가 쳐다보길래 너도 한번 그려보라며 책을 내밀었다. 강냉이의 연필이 노트 위에서 몇 분간 춤을 춘 뒤 두 그림을 비교해 보았다. 내 로봇은 마치 복사한 것처럼 책의 그림과 흡사했다. 하지만 그는 책과 똑같이 그리지 않았고 움직임을 넣어 입체감을 살려냈다. 강냉이의 그림은 대체로 그런 식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자신만의 감각으로 보고 느끼며 구현해 냈다. 그의 로봇을 본 순간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 너희 집에 놀러가도 돼?
갑작스런 내 말에 그는 살짝 망설이더니 응!이라 답했다.
강냉이의 집은 낮에도 빛이 잘 들지 않는 지하 단칸방이었고 아빠 할머니와 셋이 세 들어 살고 있었다. 우리 집도 2년 전까지 셋방살이를 했지만 이렇게 열악한 환경은 낯설긴 했다. 사실 강냉이의 집이 넉넉지 않을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교실에서 아이들의 빈부를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다. 같은 옷을 계속 입는다거나 육성회비 방위성금을 제때 못 낸다거나 학용품의 가지 수가 적다는 등인데 강냉이는 이 모든 게 다 적용되었다. 방에는 텔레비전과 책상도 없었고 손바닥만한 부엌에는 오래된 석유곤로와 간단한 주방도구만 있었다.
- 엄마는 없어.
상처 주려고 물었던 건 아닌데 자연스레 그의 엄마가 안 계신 걸 알게 되었다. 순간 머리를 살짝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넌 엄마가 없는 걸 아무렇지 않게 얘기할 수 있구나. 난 언제부턴가 우리 집에 애들이 놀러 오는 게 내키지 않았다. 분명 이들은 엄마가 어디 있냐 물을 테고 그럼 긴 투병 생활에 대해 설명해야 하니 그 점이 거북하고 싫었다. 적어도 그때 엄마는 있지만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아버지가 무섭다거나 할머니 할아버지와 방을 같이 써서 놀 수가 없다는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강냉이는 정말로 아빠랑 할머니와 같이 한방을 쓰고 있었다. 순간 그와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기운을 느꼈다. 형편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엄마의 부재와 할머니의 역할까지 일종의 동질감이 생긴 것이다.
강냉이의 할머니는 나의 방문에 잃어버린 자식이라도 만난 양 과한 리액션으로 반겨주었다. 짐작컨대 집에 손주 친구가 놀러 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녀는 내가 집에 올 때마다 곤로에 고구마 두 개를 삶아 방으로 가져왔다. 모락모락 뜨거운 김이 사라지기 전에 고구마의 껍질을 반쯤 까서 후후 불어 내 손에만 쥐어주었다.
- 뜨거우니까 요기 잡고 묵거라.
간혹 떡이나 라면이 나오기도 했지만 메인은 늘 고구마였다. 할머니는 고구마를 다 먹고 엎드려서 그리기에 몰두하고 있는 두 아이의 모습을 잠시 흐뭇하게 지켜본 뒤 밖으로 나갔다. 이럴 때 늙은이는 빠져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방 전체를 밝히기에는 조명의 밝기가 부족해 우리는 나방처럼 전구 불빛 아래 몸을 밀착시킨 채 그림을 그렸다. 특히 우리가(아니 내가) 좋아한 건 책의 모퉁이에 로봇을 그린 후 책장을 빠르게 넘기면 애니메이션처럼 움직이는,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플립북 이었다. 스토리는 내가 짜고 그림은 강냉이가 주로 그렸는데 해가 지는 것도 모를 만큼 집중하고 몰두했다. 마침내 레이저 광선으로 악당 로봇을 물리치는 마지막 장을 채우고 책장을 넘길 때의 그 손맛과 희열은 해본 사람만이 안다. 우리는 대단한 업적이라도 이룬 듯 기쁨에 겨워 함께 웃었다.
둘의 작품은 완성 즉시 반 아이들에게 선보였다. 아이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고 제 것도 만들어 달라며 교과서를 내밀었다. 졸지에 강냉이의 집은 작업실이 되었다. 딱히 보상을 바란 것도 아니고 영웅 심리에 심취된 우리는 엄청난 강도의 노동을 자처했다. 지하 방에 배어있는 퀴퀴한 냄새와 수시로 출몰하는 벌레 따위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바닥에 엎드린 채 정신없이 그리던 순간은 가난의 자국이 넘보지 못할 행복하고 열정이 넘치는 시간이었다. 반 아이들의 교과서는 하나둘 우리의 움직이는 그림들로 채워졌다. 자타공인 환상의 꼬마 만화 콤비였다.
어느 날 강냉이의 할머니가 고구마 대신 맛동산과 크래커를 가지고 들어왔다. 오늘은 고구마가 없냐고 물으니 다 떨어졌다며 가게에서 맛나 보이는 과자를 골랐다고 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다시 혼자 밖으로 나갔다. 그동안 이 집에서 과자 구경은 못해봤는데 모르긴 해도 할머니는 가게 주인에게 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과자가 뭔지 물어보고 사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과자 역시 잘 받아먹긴 했지만 늘 먹던 고구마가 빠지니 허전해서일까. 맛있다는 느낌을 받기엔 뭔가 부족했다.
6학년이 되고 반이 갈리면서 우리 만남은 뜸해졌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로봇 만화 그리기에 관심이 식은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애초에 난 강냉이처럼 그림에 재능과 흥미가 있는 아이가 아니었기에 목적이 상실된 이상 더는 그를 찾지 않았다. 졸업을 얼마 앞두고 강냉이가 이사를 간다는 말을 하길래 마지막으로 그의 집에 갔다.
- 이번에 이사갈 집은 방이 두 개야. 하나는 내 방인 거지.
- 완전 부럽다. 나도 혼자 방 쓰고 싶은데.
- 이사 가면 우리 집 전화번호 가르쳐 줄게. 중학교 가도 연락할 거지?
- 응 알았어.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왠일인지 강냉이는 번호를 가르쳐 주지 않았고 나도 찾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인연은 그대로 끊어졌다.
나는 진정 그를 친구로 생각했을까. 학창시절 인연이라는 게 원래 그렇고 그런 거라지만 강냉이에게는 뭔가 설명하기 힘든 부채감이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의 집을 수시로 들락거렸지만 정작 우리 집에는 한 번도 그를 데려온 적이 없었다. 곰곰이 돌아보면 많은 만남의 시간 속에서도 속 깊은 이야기는 함께 나누지 않은 점이 좀 의아했다. 어쩌면 비슷한 아픔을 지녔기에 자칫 마음을 열었다 서로의 상처를 긁어내지 않을까 내심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강냉이를 생각하면 미안해지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는데 바로 강냉이의 할머니였다. 내가 고구마를 좋아하게 된 건 아마 그때부터가 아닐까. 사실 그때 강냉이 할머니의 고구마가 뭐 대단한 맛이 있거나 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음식이란 소위 말하는 TPO처럼 자체의 맛에 더해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먹느냐 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어쩌면 그때 그 고구마는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강냉이 가족의 주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건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물론 할머니의 눈엔 손자를 보러 자주 오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도와 기쁨을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난 당연한 권리인 양 그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먹기만 했다. 이 좁고 어두운 강냉이 하우스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된 데에는 그녀의 몫도 결코 적지 않았다. 지금쯤 할머니는 돌아가셨을 것이고 강냉이는 나와 같은 중년이 되어 있겠지. 결국 난 이들에게 아무런 보답도 하지 못하고 떠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