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산물 요리 강국
'바칼라우'를 먹었던 포르투의 식당 벽에는 거대한 건조생선이 팽팽하게 좌악 펼쳐진 채 걸려있었다.
벽에 걸린 건조 물고기가 바칼라우냐고 직원에게 물어보니 맞다고 했다. 소금에 절여서 말린 생선 '대구'를 일컫는 바칼라우. 외국 여행을 다녀오면서 생선 이름까지 외워본 건 또 처음이다.
아, 포르투갈에는 '대구 역사 박물관'도 있다고 한다. 박물관 투어를 싫어해서 가보진 않았다만, 포르투갈이 자국의 해산물 식재료에 대해 갖는 자부심이 지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토의 두 면이 바다에 접한 포르투갈은 해산물 요리 강국이었다.
국토의 세 면이 바다에 접한 우리나라에서도 바닷가 인접 지역이 아니면 해산물을 그리 자주 배불리 먹지는 못한다. 국산 해산물 가격이 어디 보통 비싼가. 수입산도 가격이 만만찮다.
노르웨이산 고등어나 아프리카 어디쯤에 위치한 모리타니아산 문어도 비싸긴 매한가지. 일용할 양식으로 먹기에는 적잖은 부담이 된다.
리스본과 포르투의 식당들은 대부분 해산물 요리를 주메뉴로 다루고 있었다. 도심의 식당 입구 진열대에는 생선과 새우등이 즐비하다. 식당이 밀집한 거리를 걸어가면 해산물 요리 냄새가 폴폴 풍겼다. 비리거나 불편한 냄새가 아니라 맛있는 냄새. 요리 종류도 다양하고 무엇보다 맛도 좋다.
리스본에 도착한 첫날, 연달아 세끼를 기내식으로 배를 채운지라 맛있는 포르투갈 음식을 먹어보리라 벼르고 있었다. 특히 첫날 첫 끼니는 가격표 무시하고 마음 가는 대로 먹어도 되지 않을까.
광장 주위를 걸으며 적당한 식당을 물색하는데 잠시 걸음만 멈칫해도 메뉴판을 든 식당 직원들이 와락 다가온다. 식당 앞에 세워진 메뉴 입간판을 훑어볼 여유조차 안 준다. 뜨내기 여행객이 많은 곳이니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것도 너무 없어 보이는 듯해서 그냥 호시우 광장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다. 시끌벅적한 노천 테이블의 분위기와 달리 식당 안은 넓고 호젓했다.
두툼한 메뉴판에는 포르투갈어와 영어가 함께 적혀있다. 단, 깨알 같은 영어는 안경을 벗고 눈앞에 갖다 대어야 보인다. 메뉴판에 있는 음식 사진이 큼지막하고 선명해서 굳이 글씨를 일일이 읽지 않아도 주문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빨판까지 또렷한 먹음직스러운 자줏빛 문어다리도 보이고 밥과 한 접시 위에 놓인 생선 튀김도 있다. 사진만 봐도 맛이 예측가능하다.
그 유명한 '뽈보', 즉 문어요리 1인분, 그리고 볶음밥에 곁들인 생선튀김 1인분을 주문했다.
생각보다 주문이 순조로워서 방심하고 있는데 갑자기 와인을 마실 거냐고 묻는다.
대낮부터 웬 술이냐 싶어서 안 마신다고 말하는 동시에 딸이 마신다고 말한다.
한 잔만 시켜서 둘이 맛만 보기로.
직원이 와인에 대해 한참 뭐라고 말하는데 레드, 화이트, 그린...색깔 정도만 들리고 못 알아듣겠다.
느낌상 그린 와인을 추천하는 듯하여 머리를 주억거리며 주문.
알고 보니 덜 익은 초록포도로 만드는 그린 와인은 식전 와인으로 즐겨 먹는 것이라나.
병 째 주문할지 한 잔만 주문할지 또 물어보길래 '와인 한 잔과 물 한 병' 달라고 했다.
와인 한 병을 들고 와서 조금 따라준 후 맛을 보란다.
맛을 모르지만 좋다고 하니 그제서야 한 잔 그득 부어준다.
첫맛은 상큼한데 신맛이 강해서 얼굴을 찡그리게 된다.
와인 맛을 모르는 나는 술맛조차도 '달달익선'이다.
이후 포르투갈의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와인이나 칵테일을 한 잔씩 시켜서 맛을 보곤 했다.
와인을 좋아한다거나 맛을 알아서가 아니라 모든 식당이 예외 없이 와인을 마실 거냐고 물어봤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왕지사 이곳에 온 바에야 포트와인을 골고루 먹어보고도 싶었다.
잠시 뒤에 나온 메인 요리 두 접시.
엄청나게 푸짐하다.
기대했던 뽈보, 기다랗고 통통한 문어다리와 큼직한 새우가 다양한 채소들과 어울려서 보기에도 먹음직스럽다.
냄새도 좋고 맛도 좋고 다 좋은데 양이 많아도 너무 많다.
메인 접시 두 개를 테이블 중앙에 놓고 서너 명이 앞접시에 덜어 먹으면 딱 좋을 양이다.
양이 너무 많다고 하니 '먹고 남은 것은 싸갖고 가면 된다'며 접시 위 음식을 이리저리 나누는 시늉을 한다. 아, 남은 음식은 싸주는구나.
일단 주어진 것이니 최선을 다해 양껏 먹어보자.
뽈보는 정말 맛있었다. 문어 특유의 향에 고소한 오일 향이 더해져서 풍미가 좋았다. 무엇보다 질깃하지 않고 부드럽다. 가히 입에 살살 녹는 맛이다.
볶음밥과 생선튀김은 흔히 먹는 '필라프와 생선까스'맛이다. 친숙한 맛, 달리 말하면 평범한 맛.
배고픈 차에 몇 술 뜨고 난 후 허기가 가시니 서서히 음식의 짠맛이 혀가 얼얼할 정도로 느껴진다.
공깃밥 한 그릇 있으면 반찬으로 먹기 좋은 음식이랄까.
심지어 볶음밥도 짜고 달다. 짠맛을 지우느라 와인과 물을 홀짝이다 보니 배는 더 빨리 불러오고 결국 음식의 반 이상을 남겼다.
내 돈 내고 음식을 먹어도 많이 남기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늘 적게 먹는 편이라 항상 그랬다.
계산을 하려고 부르니 남은 음식을 포장해 준다고 잠시 기다리란다.
볶음밥은 이미 헤적거려서 가져가기 마땅찮고 생선 튀김은 곧 눅눅해질 테고, 뽈보만 포장해 달라고 했다.
포장이 될 동안 기다리고 있자니 떠들썩하게 식사 중인 한 떼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와인을 병째 주고받으며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는 모습이 유쾌하기 짝이 없다.
메인 디쉬 2인분에 와인 한 잔과 물 한 병.
59.66 유로. 우리 돈 9만 원 가까이 나왔다.
눈대중으로 대충 본 메뉴판 가격은 추측하기로 5만 원대로 기억되는데, 결제 금액이 생각보다 비싼 듯하여 순간 당황했다.
와인 가격은 미리 확인을 안 했다만 와인이 넘쳐나는 포르투갈에서 와인 한 잔에 얼마나 할까 싶다.
혹시 음식량과 무게에 따라 가격을 매기는 건가? 라는 시답잖은 농을 하며 상황을 선해하려 노력했다.
가격표를 잘못 봤겠지, 아니면 엄청 좋은 와인이었거나. 게다가 이렇게 남은 음식도 정성스럽게 싸줬잖아.
그날 저녁, 리스본에서의 첫 저녁식사 메뉴는 점심때 먹다 남긴 뽈보였다.
깔끔하게 포장된 박스안에는 통통하고 부드러운 문어다리와 구운 감자와 브로콜리가 다소 뒤죽박죽이긴 했지만 먹음직스럽게 세팅되어 있었다.
뽈보는 뜨끈한 누룽지와 어우러져 피곤한 하루를 위로하는 멋진 저녁식사가 되었다.
구수하고 부드럽고 순순한 맛의 누룽지 밥알과 짭짤한 뽈보의 조화로움은 가히 별미였으니.
우리나라보다 국토의 한 면이 적게 바다에 접한 포르투갈에서 해산물 요리가 이렇게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가 궁금했다.
육지에서 소출되는 다른 먹을거리가 넉넉지 않은 탓에 일찌감치 바다에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먹고 살 방편을 찾았던 것일까? 아니면 해상강국으로 뻗어가던 강성하던 시기, 무역과 식민지 수탈로 부를 쌓아가던 때에 어부지리로 원양어업이 덩달아 발달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