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PC의 두 번째 한 달, 그리고 8월을 기록합니다.
OBPC에 장마가 찾아왔습니다. 코로나는 잠잠해지나 싶더니 다시 확산이 시작됐고, 올림픽대로와 잠수교가 침수되는 길고 강한 장마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누군가는 찾아줘야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때론 저 높은 곳에 있는 누군가에게 야속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돌아보니 불안한 마음에 하나라도 더 하려고 보낸 한 달이었습니다. 더뉴그레이가 새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매장을 비우는 시간이 불안했고, 내리는 비가 야속했고, 지쳐 보이는 애들 얼굴이 마음을 무겁게 했고, 그럼에도 할 건 너무 많이 보였던 한 달이었습니다.
어땠을까요? OBPC의 7월
100원을 벌었다고 치자. 손님들에게 나가는 모든 식자재, 주류, 음료를 준비하는 데 32원을 썼고(원가율이라고 한다더라), 주말과 연휴를 반납한 것은 물론이고, 하루에 열두 시간 이상을 매장에서 보내는 애들의 급여가 19원이었다. 애들 커피 마시고, 밥 먹고, 회식하는 데 1.5원을 썼고, 이것저것 사고, 전기 쓰고 한 게 2.8원이었다. 그리고 월세와 보험 매장을 운영하는 서류 작업에 14.2원을 썼다. 그리고 21원이 남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문을 열었다면 절대 이룰 수 없었을 매출이기도 하고, 주변의 도움과 애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결코 만들 수 없었던 매출이다. 나와 영기 광민이 형, 그리고 투자자와 첫 배당을 진행했다. 어떤 기분이었냐고? 나갈 게 너무 많아서 들어오자마자 죄다 나가서 보람이나 성취를 느낄 틈도 없었다고 한다. (멀어져 가는~~)
애들한테 새로운 메뉴를 만들자는 숙제를 줬다. 사이드가 곱소곱소 하나뿐인 것도 있지만, 나는 그냥 애들이 무언가를, 그게 뭐든 하나를 만들어보는 경험을 주고 싶었다. 스물아홉, 내가 가진 밑천이 다 그런 것들이니까. 아무튼 이제 어느 정도 완성 단계에 다가가고 있지만, 지난주 8월을 맞이하고 늦은 회식을 하면서 애들한테 이런 얘기를 했다.
"모르겠다. 내가 만들면 이틀이면 만들어. 맛은 모르겠는데, 어떻게든 결과물은 만들었을 거야. 나 성격 급한 거 알잖아. 이렇게 성격 급한 내가 왜 굳이 기다려가면서 너네한테 만들어보라고 했을 것 같아. 매장에서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 너네한테, 두 달 동안 연휴도 주말도 없었던 너네한테 왜 자꾸 욕심부리는 것 같아."
지금 보니 그냥 꼰대의 강요인데 나는 정. 말. 진. 심.으로 애들이 이곳에서 성장했으면 좋겠고, 애들의 성장이 나는 절실하게 필요하다. 나 혼자 잘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시간이 지날수록 느끼고 있고, 앞으로 더 그럴 거니까.
아무튼 떡볶이를 만들고 있다. 매콤한 피자가 없다, 느끼함을 잡아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오븐 스파게티는 너무 재미없다. 그래서 제법 매운 오븐 떡볶이를 만들고 있다. 떡볶이가 나오면, "떡볶이랑 곱창 파는 피자집?" 이런 카피로 광고를 때려볼 계획이다. 이게 과연 먹히려나?
OBPC의 7월과 8월의 목표는 '일단, 맛집부터 되자! 그리고 맛집의 자격을 갖추자'였다. 평범한 날을 필름 카메라로 남겨주고, 위스키로 하루를 위로하고... 그건 당장의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나약한 소리가 아니라 정말 여력이 되지 않았다. 손님을 맞이할 자격을 갖추는 게 먼저였다.
손님들이 느끼는 불편함 중에서 우리가 개선할 수 있는 것(피자 나오는 속도, 더위, 모기 등등)을 죄다 개선하는 게 먼저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내부적으로도 아직 완벽하게 체제나 태세를 갖추진 못했다. 아무튼 새로운 동료를 찾고 있는데, 이 친구가 들어오면 우리도 본격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7월 중순부터 지금까지 함께할 동료를 찾지 못했다...ㅠㅠ)
a. 테라스
테라스가 너무 더웠다. 앞뒤로 서큘레이터를 두대나(?) 설치했지만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다. 그래서 지금 우레탄을 이용한 천막을 알아보는 중이다. 이거 설치하고 실외용 에어컨을 구비하려고 한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안 시원해지면 어쩔 수 없다. 마지막 시도다.
b. 매장 에어컨 추가
정문을 열어두는 매장이라, 또 에어컨은 매장 안쪽에 있어서, 문을 열어두면 매장 입구 쪽이 너무 더웠다. 두 달 동안 더위에 불편한 손님들을 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결국 에어컨을 추가로 설치하기로 했다.
그 밖에도 모기퇴치제를 테라스에 구비했고, 부채를 제작했고, 종이 커튼을 사고(왜 샀을까), 500만 원주고 사놓고 썩혀뒀던 푸드트럭 랩핑을 준비하고, 매뉴얼을 만들고... 이것저것 바꾸고, 채우고, 고쳐갔던 한 달이었다. 다음 달에는 어떠려나..?
이번에도 역시나 온갖 기분이 들었던 한 달...이었다. 이걸 안 했으면 이런 감정, 이런 기분들을 느낄 수 있었을까..? 정말로, 정말로 (그럴 일은 절대 일어나선 안될 일이지만) 망해도 상관없을 것 같다.
a. 조금 더 넓은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빛나야 내가 하는 일이 빛나고, 내가 차린 가게가 빛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OBPC를 차리고 두 달, 나 보다 애들이 빛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매일매일 다르지 않은 하루를 채워가면서, 지겹고 무료할지도 모르는 하루를 보내면서. 인생의 한 시절을 나를, 그리고 가게를 위해 기꺼이 써준 이 친구들이 빛났으면 좋겠다. 당장은 제대로 된 보상 하나 못해주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기필코 보상해줄 거니까... 날 믿어.
b. 조금... 복잡해졌다.
7월에는 6월의 3배를 더 벌었다. 기분이 째지게 좋진 않았다. 오히려 조금 복잡해졌다.
나 혼자 한 게 아니라 다 같이 해낸 건데, 누구 하나 잘나서가 아니라 모두가 애쓴 건데, 보람이나 기쁨은 정작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가게가 얼마를 팔든 애들 월급은 같으니까.
같은 기쁨을 느끼고 싶다. 같이 벌고 싶고, 같이 이루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는 게 조금 복잡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쿨하게 지금 내가 벌었던 것을 앤빵할 만큼 용기도 없으면서 말이지.
결국 '빠른 성장'이 필요할 것 같다. 이 공간을 완벽하게 채워가면서, 다른 공간을 준비하는 것. 거기서 지분으로든 권한으로든 셰어를 하는 것. 진짜 지키기 위해 여기 쓴다. 애들한테 꼭 보상해줄 거야.
애들과 작은 시도들을 이것저것 해보기로 했고(힘들 거야... 빡셀거야...), 새로운 기회가 하나 생겼는데 아직 정해진 건 없어서 이번에는 말을 아끼기로 하고, 내일은 투자자를 한분 만난다. 가감 없이 얘기하고 쿨하게 돌아서든, 미친 듯이 때려박든 할 것 같다.
아무튼, OBPC의 7월과 8월은 그렇게... 그렇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분명 쉽지 않은 달이지만, 그것조차 생경한 기억들로 내 마음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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