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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아 Mar 24. 2024

마흔에 읽는 그리스로마신화

우리가 로마신화를 읽어야 하는 이유

[마흔에 읽는 그리스로마신화]  장재형 지음  



우리가 로마신화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이 모두 신적인 존재들로 

법점 할 수 없는 능력들은 가지고 있으나 그들이 하는 행동은 지금 인간사에서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희로애락이 들어있고 그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생각하고 영위해 나아가야 삶이 무엇인지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갖가지 교훈을 통해 우리는 철학적인 인문 세계에서 

다시금 인간을 이해하여 보는 잠깐의 시간을 음미하게 된다.     


《사랑하고, 감동하고, 희구하고, 전율하며 살라》


오귀스트 로댕의 말처럼 지금도 가슴 뛰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행복과 불행이라는 동전의 양면 같은 삶에서 우리의 마음가짐이 

어느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것이 나에게 좋은 일인지 깨닫게 한다.


불행한 상황에서도 행복감을 찾을 수 있는 사람과, 

그와 반대로 

불행감을 더 느끼는 쪽으로 상황을 만들어 가는 사람도 있다. 

어느 상황이든 감정을 받아들여 인정하되 

행복감과 불행감 중 어느 방향으로 

이끌어 나아갈지는 결국 나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지금 현재의 고통만 바라볼 것인지 아니면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낼지에 대한 
카르페디엠은 결국 나의 선택에 있다. 

스스로 철창에 가두어
무의미한 삶으로 돌아갈지,
앉은자리를 꽃자리로 만들어 가며 
긍정으로 풍성하게 나아갈지는
나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스스로 던져진 숙제를 제대로 풀어내 가며, 

설령 얽힌 굴레를 풀기 힘들어 실패하더라도 

다시 나아가려는 자세를 지녀 보자. 과정에 힘이 있다. 

  구상 시인의 시처럼 반갑고 고맙고 기쁜 내가 되자. 


구상 시인의 꽃자리 




프로크루스테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로 집으로 오는 여행객들을 

침대에 묶어 죽이는 악행을 저지른다.

 테세우스는 결국 같은 방법으로 프로크루스테스를 죽이게 된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잡아당겨 늘이는 자’라는 뜻이다. 

심리학에서 쓰이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신화에서 유래한 말로 

자기가 세운 일방적인 기준과 틀에 다른 사람을 강제로 끼워 맞추려는 

독단과 아집을 나타낼 때 이 용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나는 살면서 특별하게 내 고집대로, 

주장대로 독단적인 방식을 써서 끝까지 내 의견만 밀고 나가지는 않았다. 

오히려 상대방 의견을 많이 적용하고 따랐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손해 보더라도 그게 배려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흐르는 시간만큼 나이가 들어가고 일을 비롯한 환경도 그만큼 변화하게 되었다. 

무작정 의견을 따르기보다 기준대로 나아가되 적절하게 내 목소라를 내게 되고, 

상대방의 이야기 또한 귀 기울이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환경에 따라 변화는 필요하다. 


그렇다고 지난 시절의 나의 행동을 후회하거나 잘못하었다고만 느끼지는 않는다. 

그것이 바탕이 되어 현재의 나를 만들어 나갔기 때문에 그 모습 또한 소중하다. 

그리고 실패의 순간에도 그것을 거울삼아 성장하여 가는 것들이 있음을 알기에 뿌듯한 순간도 많다.

 물론 조직에서는 카리스마 있고, 나서서 투쟁하고 싸울 수 있어야 하나 

성향은 각기 다른 것이니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초점을 맞추어 그르치기보다 

내가 가진 성품의 장점을 살리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잘 못하는 부분은 개선하려 하되 내가 못하는 것에 얽매이기보다 

잘할 수 있는 타인의 장점을 함께 이어가며 시너지를 만들어 가면 된다. 

나 혼자 이루어갈 수는 없다. 


그리하여 내 생각이 모두 답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어 다양성을 보게 된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임을 인정하는 것은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행동하는 것이다.

 나와 타인의 자유를 있는 그대로 보게 되고 인정하게 된다. 


 상황에 맞추어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그 대신 흥분하지 않되 강단 있는 말투로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너무 어려울 수 있지만).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은 표현의 방식은 나의 개성을 살리어 

프레임에 갇힌 아둔한 사고가 아닌 나의 잠재된 독창성이 함께 발현이 되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답은 삶 속의 모든 다름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내 마음을 표현하되
  품격을 떨어뜨리지 말라는 말도 있다  

그것이 진정한 어른이 되는 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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