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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아 May 07. 2024

삶과 죽음에 대한 경계

유한한 삶을 위한 여정

 삶은 유한하다. 우리한테 일어나고 있는 일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많다.

사고는 불시에 우리에게 온다. 바로 앞일을 모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동전의 양면처럼 운명은 갈린다. 몇 초 사이로 삶과 죽음의 경계가 나뉘게 된다. 삶은 이처럼 유한하여 끝이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만 오히려 나하고는 아주 멀리 있는 것만 같다. 다시 말해 죽음은 너무나도 가까우나 우리는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다.

코  앞에 닥치지 않고서야 쉽게 와닿지도 않는다. 마치 공개된 비밀이라고나 할까.


 죽음의 문턱에서 넘나든 자만이 그 고통을 알지만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아니 할 수 없다. 불시에 닥친 상황에서의 적응은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래서 떠나가는 사람들도, 남겨지는 사람들도 서로의 존재에 대해 아쉬움과 안타까움과 슬픔이 유한을 넘어선 사무침으로 무성해진다.


 일을 하면서 가끔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때마다 나는 남겨진 자의 마음이 되기도 하고, 먼저 가게 되는 분의 인생이 안타까우면서 슬퍼지는 마음은 걷잡을 수 없다. 아직까지도 익숙해지려야 익숙해질 수 없는 일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무엇이며 어떤 것이 잘 준비하는 것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그것은 누구도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숫자처럼 정확하게 측정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외마디 비명과 울분 안에 넘나드는 감정의 선상은 쉬이 우리에게 알려줄 수 없는 답이 되고 만다.


 내가 늙어가 자연스럽게 나의 죽음을 잘 준비하여 마무리하고 간다는 것은 위의 이야기처럼 정의 내릴 수는 없으나 각자가 세울 수 있는 기준은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잘 마무리하여 간 끝이라 함은 지금까지 살아낸 것에 대해 아쉬움이 없고 오히려 고마운 것, 행복했던 시절의 그리움으로 웃어지는 것이며 사랑하는 이들에게 가슴으로 깊이 남아가게 되는 것이다. 살아 있는 순간 고맙고 소중한 일들을 기꺼이 말하고 떠날 수 있는 마지막을 잡을 수 있도록 축복해 본다.


 현재의 나를 모른 채로 미래만을 위해 전전긍긍할 필요도, 지금 억지로 행복하려고 좇을 필요가 없다. 우울하면 우울한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그때의 감정선에서 있는 그대로 나를 보듬어 가는 것은 나에 대한 배려다. 당시의 감정에 충실하게 받아들이되 부정하여 나가기보다, 환경을 탓하고 후회하기보다 지금의 어느 시간을 잘 보내어 가는 것이 중요하리라. 내게 있을 충분히 밝은 미래를 향해 조금씩 고개 돌려 바라보아 가는 것이 내가 잘 살아지는 것이 아닐까. 이왕이면 나쁜 생각은 심지 말고 좋은 생각들을 심는다. 나의 꽃밭 위에 하루의 다해진 의미로 피워낸 선한 영향력의 열매는 또다시 꽃을 피울 씨앗 같은 귀한 선물이 된다.


 끝이 있음을 알면 하루를 허투루 살 수 없다. 소중한 인생을 하루를 다해 잘 살아내는 것은 내가 차근차근 하나씩 이루어갈 커다란 과제이다. 좋아하는 것, 내가 해보고 싶은 것 하나씩 해보는 것은 나를 생각하는 것이다. 일상의 감사함을 담아내는 것이 기쁨이고 살아가는 활력이 된다.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는 맘은 독서와 글로 이어진다.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


 나중에 늙고 늙어 자연스럽게 살아낸 기억을 뒤로하고 하늘 소풍 떠난다는 것은  어느 시인의 말처럼 훗날 남겨진 이들에게 별처럼 반짝이어 서로의 기억 안에 남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일 것만 같다. 그리고 후회 없이 잘 살아가는 지금인 것만 같다.      


         내가 만나게 되는 삶과 죽음의 경계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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