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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아 May 17. 2024

나에게 능력이 생긴다면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고 찾아낼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는

 예전 학창 시절이 불현듯 떠오른다.

수업을 마치고 다음 교시 준비하는 10분 쉬는 시간은 달콤한 시간이다. 그 짧은 시간에 초능력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초인적인 힘이 여기저기 발휘된다. 보통 2교시 지나 3교시 사이 점심 도시락을 까먹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어떤 친구는 숟가락 하나 들고 다니며 뺏어 먹는다. 빈틈을 노리고 들어오는 대단한 적극성과 집중력이다. 도시락 하나 책상 위에 올려진 순간 어디서 냄새를 맡는지 벌떼처럼 모여든다.

     

 어떤 날은 체육관 옆 매점까지 ‘우르르’ 달리기 하여 과자며 빵, 우유를 사 먹기도 하는데 주어진 시간 안에 돈을 내고 먹기까지 대단한 속도로 ‘뚝딱’ 해치운다. 10대의 체력은 초능력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방대한 에너지 집합체이다. 체육복을 안 가지고 온 친구는 제일 끝반인 10반까지 달려가 체육복을 빌리고 옷을 후다닥 입고 온다. 나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속력을 지닌 아이들이다.      


 아무튼, 학창 시절 여러 능력은 친구들의 모습을 통해 발현된다. 내가 만약 초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원하던 능력은 따로 있었다. 교과서나 문제지를 한 번만 보아도 그날 본 지식이 모두 내 머리로 들어왔으면 하는것이다. 시험 기간은 더하다. 읽고 써도 도무지 진도가 안 나간다. 봄 햇살을 더한 꽃과 나무를 보면 더 집중이 안 된다. 밖에서 친구들과 ‘까르르’ 웃어대며 노닐던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간다. 공부의 10분은 더디 가나 유쾌한 1시간은 10초로 흐른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학창 시절을 떠올리기만 해도 즐거운 추억이 가득 떠올리지만 가장 예쁘고 통통 튈 나이인 그 시절 공부가 그저 지겹고 어렵고 힘들기만 한 것이었다.    공부란 것은 웬만한 에너지로는 접근할 수 없다.


 공부를 잘해서 성적을 잘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커서 무턱대고  책을 베고 잔 후 일어나면 내 머리로 모두 책 속 지식이 흡수되어 있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리하면 너무 좋겠다는 마음에서 손으로 책을 훑어 머리에 넣어보기도 했던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현실이었다. 실제 점수는 나의 예상보다 한참 떨어져 있다. 기대하기에 실망도 크다. 그땐 왜 그렇게 공부하라면 하기 싫고 시험 기간 애써서 부여잡으려 해도 집중이 되지 않았을까?      


 정작  해야 할 땐 하기 싫고 오히려 간절할 땐 하고 싶고, 그러나 학창 시절은 이미 지났고 그 시절의 에너지도 지금은 없다.  ‘그때 더 열심히 할걸’하고 후회를 남기기도 하지만 40이 넘어가며 무언가 배우고 알아가는 것이 좋아 책에 빠져 지낸다. 전공지식만 배움이아니라 책을 통한 윤택한 삶에서 알아가고 경험하는 것들은 그 마음과 쓰임이 모두 다르게 나타난다. 그래서 각자 발현되는 시기는 다른가 보다.


 나이가 들고 보니 간절함의 이유와 동기가 내가 하고 싶은 것으로 이끄는 목표를 만든다.  그것이 내가 스스로 찾아갈 집중력을 만든다. 꾸준함이 이루어가는 것들은 의외로 많다.

    

 지금 아이를 키우니 나 또한 힘들고 가장 어렵게 느껴졌던 학업이라는 시절을 지났기에 가장 에너지가 좋을 시기에 책상 앞에만 꾸역꾸역 고개를 떨굴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기도 한다. 에너지를 가끔 책상에서 풀어내 숨소리를 불어넣어주어야 함을 느낀다.  

    

 생각해 보니 만약 초능력으로 시험지를 거침없이 풀고 상위권에 도달하여 척척박사가 되면 그 지식은 과연 내 것이 될까? 오히려 간절함과 하고 싶은 것의 꿈과 목표가 빠져 있어 과정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지날 것 같은 아슬아슬한 생각이 든다.  경험하여 알아가고 쌓아가는 것이 진정한 앎이기에, 나를 이기는 연습은 그래서 일생을 거쳐 무궁무진하게 존재하나 보다.  

    

 여전히 뒤돌면 깜빡하고 어떤 지식은 잘 외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사물을 보는 눈의 깊이는 달라졌다. 책을 깊이 있게 읽는다. 사물에 좀 더 세세하게 관심을 두고  집중할 수 있다. 조금 더 참을 수 있고 조금 더 과정을 즐기는 지금의 나이가 되어서 좋다. 그래서 지금 새로 알아가는 기쁨이, 그로 경험들이 그저 나는 좋다. 지금에 이르러 말할 수 있는 나만의 정의는 바로 이것이다.


 초능력이란 바로 내 안의 잠재력이다.


보도블럭 사이에 질긴 생명의 시작은 스스로를 향한 나와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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