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철학, 아홉 번째

나의 소신이 닿은 자리가 등불처럼

by 현정아


제2부 단순하고 절박한


제15장 제 역할을 다한다는 것 │ 묵묵한 소신의 철학 p.180~191


♧ 세상에 태어난 모든 존재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 p.181


♧ 어떻게 하면 제 역할을 다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스스로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판단이 필요하다. p.181


♧ 사람들도 타고난 능력이 저마다 다르다. 그렇지만 능력이 다르다고 해서 그 가치마저 다른 것은 결코 아니다. p.181


♧ 나무든 인간이든 다양성이 중요하다. 문화도 다양한 인간과 민족이 만들어낼 때 가치가 있다. 만약 이 세상에 하나의 문화만 있다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p.182


♧ 사람들은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한다. 요행을 바라기 때문이다. 인간의 화는 자신의 역량 이상으로 무언가를 바랄 때 생기는 지도 모른다, p.188


♧ 나는 남의 관심을 끌지 않으면서 매력적인 향기를 품어내는 쥐똥나무 같은 존재가 어두운 세상을 밝힌다고 생각한다. p.191


♧ 쥐똥나무처럼 키가 작더라도 작은 키를 인정하면서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의 등불이다. p.191




<나의 생각 따라가기>


키가 작은 것이 콤플렉스인 적이 있었다. 옷을 입어도 태가 나지 않고 바지 기장은 줄여서 입어야 한다.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을 내리는 것도 불편했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 키가 크다고 해서, 겉의 모습만 근사하다 해서 멋진 것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키가 작다고 해서 나만이 해낼 수 있는 역량의 크기가 작은 것은 아니다. 자신감은 큰 키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먼저 인정하고 귀히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높은 곳의 물건은 발판이 있기에 얼마든지 꺼낼 수 있고, 바지 길이는 줄여서 맞게 입으면 된다. 깨끗하고 청결한 이미지와 함께 뿜어 나오는 세련미는 당당함으로 만들면 된다.


마음의 크기마저 작다면 내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 지금 나의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하여 스스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한다. 인정받으려 하기보다 내가 하는 일을 묵묵히 해나간다. 해나가다 보면 그것은 내게 좋은 역량으로 쌓인다. 역량이 있고 없음은 내가 하는 일의 꾸준함을 이룬다.


모두는 자신만의 가치가 있고 다양성 안에 존재하는 힘이 있다. 남이 아닌 나를 제대로 보아가 소신의 삶을 향해 진득한 나를 만들어야 한다. 내 안의 잠재력을 발견하여 이끌기 위해서는 감사의 삶으로 묵묵히 하루를 다해내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이룰 소신의 삶은 내 마음이 이끄는 삶의 방향을 알려 준다.


감사의 힘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경험으로 이룰 행위는 나의 역할에 대한 태도를 통해 내가 가져갈 삶의 방향을 이끌게 된다. 그것을 꾸준하게 이끌기 위해서는 배움이 필요하다. 과정 안에 깃든 일들에 배움이 함께 한다면 나의 성장은 차츰 커져만 간다. 마음이 확장되는 순간이랄까?


화려함에 이끌기보다 스스로 꾸준함을 만들기 위해 내가 가져갈 가치가 진정 무엇인지 고민해 본다. 겉모습에 치우치기보다, 내면만 중요히 가져가기보다 겉과 속이 단단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리라.


각자의 역할이 존재함






제2부 단순하고 절박한


제16장 등신처럼 살아야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다. │여락與樂의 철학 p.192~203


♧ 등은 다른 존재에 기대어 살면서 또 다른 존재에게 자신을 내준다. p.195

♧ 덩굴성 식물이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존재라고 여기는 것은 편견이다.

편견은 어떤 사실을 정확하게 보지 못하고 한쪽으로 기운 상태로 삐딱하게 보는 것을 말한다. p.195


♧ 등이 다른 존재의 몸에 기대어 살아가는 모습은 일종의 ‘동행’이다. 동행은 같이 가는 것을 의미한다. 같이 간다는 것은 어느 한쪽이 우위에 있지 않다는 뜻이다. p.195


♧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우선 존재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인식의 전환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생명체가 처음부터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p.197

♧ 살면서 독락獨樂만큼 가치 있는 것은 ‘여락與樂’ 일지도 모른다. 여락이라는 단어는 맹자가 말한 ‘여민동락與民同樂’에서 빌린 말인데, ‘함께 즐긴다’라는 것만큼 위대한 것도 드물다. p.197


함께한다는 ‘여與’는 ‘준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등이 가지를 참새에게 내주는 것이 바로 여락이다. 누군가가 쉴 수 있도록 몸을 내주는 것, 지친 사람에게 어깨를 빌려주는 일은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위대하다. p.198


♧ 즐거움을 함께하기보다 슬픔을 함께하는 자가 진정 좋은 벗이듯, 핀 꽃보다 진 꽃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그 존재를 한층 더 사랑할 줄 아는 자다. p.200


♧ ‘등신’처럼 산다는 것, 갈등 없이 산다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이다. P.203



<나의 생각 따라가기>


살아가면서 나의 것을 준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줌으로 인해 더 큰 기쁨을 얻는 것이다. 주고받음이 있기에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된다. 강요가 아닌 깊은 마음의 주고받음은 한 줄기 빛처럼 밝은 희망과 행복을 준다. 내가 있기에 도울 수 있고, 네가 있기에 나 또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서로 헐뜯고 나만 잘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고받는 온정 안에 함께라는 힘이 서로를 위한 상생을 만든다. 진정한 내어줌은 무언가를 바라는 바가 목적이 될 수 없다. 무엇을 바란다는 것은 욕심을 부른다. 나무가 몇백 년, 몇천 년 질기게 살아가는 이유는 어쩌면 내어줌의 관계에서 온 건지도 모른다.


힘든 세상살이에서 등신의 미학은 함께 함이다. 등신은 같이 가는 존재로서 그 힘을 더한다. 함께함으로 하나의 손이 모이고 모여 더 큰 힘을 만들기도 한다.

내가 살아갈 공간에서 어떤 온기를 나누어야 하는지 나무를 통해 배운다. 여름이 다가오면 등나무의 보랏빛 꽃망울은 나무 사이로 늘어질 것이다. 등불처럼 환한 빛은 세상을 향해 아래로, 아래로 불을 밝힐 것이고 계절을 함께 안아갈 것이다. 그 향기를 닮아가려 한다.


내가 즐길 수 있는 지금을 잘 보듬어가 책과 호흡하는 순간을 이어가며 함께 하는 즐거움이 배로 커진다. 나무의 철학이 와닿은 글귀는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향해 즐거이 살아갈지 생각해 보게 한다.



편견 없이 동행으로


함께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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