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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오늘의 시 27화

살구꽃

엄마의 봄처럼 피어나리

by 현정아

살구꽃


현정아



꽃물이 든다

하늘 가득 수줍은 향기 총총 박히면

엄마의 얼굴이 못내 그립다


어린 시절 뛰놀았을

엄마의 옷자락 사이


수줍던 해맑음도

이리 피었을진대

닳은 기운 인생길 돌고 돌아

어느새 달처럼 기울고 있다

엄마의 살구꽃 향기는 지금처럼 고왔을까나


열린 꽃망울처럼 바람은 살랑

재잘대던 소리는 꽃처럼 밝아


어릴 적 엄마의 눈망울이

나무마다 톡톡 맺힌 것 같구나


엄마의 살구꽃 고운 빛 지금처럼 환하게 피었을까나





살구꽃이 봄의 부름에 답해 나무를 포근하게 덮고 있어요. 잎보다 먼저 피어나지만, 수줍은 꽃망울은 마치 어린 시절의 순수한 모습을 떠오르게 하네요.


시간이 흘러 세월을 따라 봄마다 피었을 꽃이 연한 분홍 입술을 내밀며 고운 빛깔을 가득 비추고 있어요. 내가 놀던 어린 시절 기억을 따라가 보니 그보다 더 오래전, 엄마의 어린 시절까지 흘러가게 되어요.

뛰놀던 동산에 이처럼 살구꽃이 피었을진대 꽃물 사이 배시시 웃고 뛰놀던 엄마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요? 그 모습을 떠올리니 가슴에 그리움과 애틋함이 서리네요. 작은 아이가 자라 세월의 무게를 나무처럼 받치기까지 구겨진 가슴에 어떠한 마음가짐을 담아 수도 없이 다림질하며 왔을까요?


부모님도 한때 아이였던 시절을 상상하게 만드는 꽃! 나의 아이와 지금 바라보는 꽃! 봄이 오면 풍성해질 연한 꽃잎처럼 인생을 사랑하게 되는 시절의 이야기는 지금처럼 여전했겠지요?


엄마도 한때는 순수하고 천진난만하게 세상을 바라보던 아이였는데 어느새 세월을 따라 달처럼 기울고 있네요. 엄마의 꿈은 무엇이었을까요? “엄마는 꿈이 뭐였어?” 왜 이런 질문을 못해 보았을까요? 나이가 찬 다 큰 딸은 여전히 아이인가 보아요. 나만 생각하니까요. 엄마가 아이였을 모습 뒤에 중년인 나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엄마처럼 서 있네요.


칠순이 훨씬 넘기고 나서야 엄마는 요새 미술을 배워요. 손은 거칠고 서툴러 맘대로 그려지지 않지만, 아이같이 서리는 기쁨이 있나 봐요. 천천히 그려지는 색감 따라 지금 엄마의 꿈이 살짝 피어나네요. 마치 살구꽃처럼요.


한창의 시절은 이미 지나갔지만, 엄마의 지금은 어린 엄마의 모습과 같다고 여겨져요. 어린 엄마 같은 살구꽃도 여전히 피어 우리를 바라보고 있네요.



우리 아파트 놀이터를 덮은 살구꽃이 한바탕



하늘을 향하다



엄마처럼 총총 박힌 빛깔을 따라



그림을 따라 오가는 엄마의 시간



가로수 불빛처럼 가득한


세상의 모든 빛깔을 담아 엄마가 그려내다.



돌담 사이 바람이 스미고


엄마의 살구꽃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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