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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오늘의 시 25화

덩그러니

아이의 가방은 어디에?

by 현정아

덩그러니


퇴근길이 퍽이나 즐거운 건

기다리는 아이가 있다는 것

운동장으로 데리러 오라는 신호

지금 달려가는 맘은 벌써 저만치


아침의 눈인사는 서로의 응원

저녁의 마중물은 하루의 격려

같은 시간 안에 놓인 다른 공간

여미고 여며 우리는 최선을 다했지

운동장을 들어서니 교정은 그대로

봄이 오는 기운 싱그럽게 열리고

나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반가운 얼굴은 어디 있을까

엄마가 오기까지 그네 위에서 줄곧

씩씩하게 그려나간 시간 점점 커지고


그만큼 두 손 활짝 벌려 달려 나가니

가득 품에 들어오는 너라는 아이

텅 빈 운동장 가 책가방만 덩그러니

벗어던진 양말마저 귀여워서

엄마를 기다리던 시간

그 동안의 행보에

한바탕 웃음이 인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니 여전히 서툴지만, 많이 성장한 아이가 대견한 요즘이에요. 엄마가 먼저 출근하니 우리는 서로 가벼운 인사로 하루의 안부를 다짐하지요. 아침밥을 먹고 양치 후 시간 맞춰 학교도 가요. 아빠가 아직 출근 전이지만 스스로 준비하고 학교로 가니 얼마나 의젓해졌는지 몰라요.

엄마 퇴근하면 운동장 놀이터로 데리러 오라는 딸의 말에 그곳으로 부리나케 달려가요. 운동장에 도착 후 아이가 어디 있는지 이리저리 살펴요. 모두 집으로 돌아가 아무도 없는 운동장은 한 아이로 인해 여전히 밝아요. 봄의 생동감이 시작되기도 전에 교정 안에 노란 아이는 벌써부터 예쁜 향기를 뾰족뾰족 심고 있네요.

그네를 신나게 타는 아이가 엄마를 보고 “엄마!” 소릴 질러요. 엄마라는 말에 걸어가는 발걸음이 이내 빨라져요. 양손을 활짝 펴서 나도 아이의 이름을 크게 불러요. 아침에 보고 처음 보는 얼굴이라 얼마나 반가웠게요. 그네 위 아이는 기다리는 동안 혼자 그네도 타고 모래로 밟으며 놀았더라고요.


아이에게 뛰어노는 기쁨을 안겨 준 시간이 좋아요. 양말은 벗어던졌고 저쪽 운동장 모래 위 책가방이 덩그러니 놓여 있네요. 아이의 손을 잡고 돌아가며 가방을 집어 들어요. 덩그러니 기다리던 시간이 살포시 내게 감겨 들어와요.


‘룰루랄라’ 집으로 돌아가요. “얘야, 잘 지내고 있었니?”, “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니?” 궁금한 말이 오늘도 많아지네요. 두 손 꼭 쥐고 두런두런 이야기 속 교정은 여전히 아이들의 마음처럼 따스해요. 마치 아이의 봄처럼요.



여기요! 저어기 벗어 놓은 가방의 주인을 찾습니다.


그네에서 신이 난다. 신이 나.


저기요! 양말의 주인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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