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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오늘의 시 26화

봄이라는

지금을 그대로

by 현정아

봄이라는


현정아




점심에 근처 공원을 돌았다

거니는 걸음이 점점 가벼워진다

아직은 선득한 바람, 그 바람 사이

산수유 꽃망울이 작고 오묘한 웃음을 터트린다


‘까르르’ 반가운 웃음이 봄을 부르기에

소리 하나에 이끌린 봄을 나서는 기분

작은 꽃망울 하나에 달라지는 마음의 크기

세상이 주는 몹쓸 고민 휴지통에 버린다


뭉쳐진 덩어리가 햇살만치 사그라진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로 지금을 놓치나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로 봄을 피해 가나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기만 하다


웅크린 햇살 모아 톡 터진 작은 꽃물

품어간 온기를 살포시 풀어내는 나무는 봄나무

여전히 선득한 바람은 새침한 꽃샘바람

보드라운 스펀지처럼 어루만진 햇살, 봄 햇살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길은 그대로 충만

이 길을 따라 살포시 덮어가는 생각의 두께

어지러운 공간이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쓸 것이다


이토록 고운 봄이 나를 부르니,

지금 여기 있으니






점심에 직장 근처 작은 공원에 나갔어요. 봄이 시작되는 산책길 발걸음이 가벼워요. 보도블록 위의 앙증맞은 풀잎들이 어느새 ‘빼꼼’ 얼굴을 내밀고 있네요. 나뭇가지에도 수줍은 잎망울, 꽃망울이 열리기 시작했어요. 바람은 아직 차지만 밀려오는 햇살은 또 어찌나 보드라운지 몰라요.


혼자만의 산책을 즐길 때가 있어 좋아요. 찬찬히 집중하며 자세히 보아 가는 재미가 좋아요. 나뭇가지마다 걸린 하늘과 구름도 봄의 색이기에 포근해져요. 가벼운 옷차림 사이로 시샘하는 바람이 불어대지만, 그것 또한 봄이기에 좋기만 하네요.


작은 공원에는 은행나무, 소나무, 갈참나무, 산수유나무가 있어요. 솔잎 사이로 작은 새가 지저귀고 있어요. 작은 날개 ‘포르르’ 이리저리 장소를 바꿔가며 날아다녀요. 이름 모를 새도 봄의 기운을 맘껏 느끼나 봐요. 새소리를 들으며 돌아 걷는 길에 가장 먼저 봄을 반기고 있는 나무가 보여요.


산수유나무가 벌써 꽃망울을 터트려 노란 봄을 알리고 있네요. 세상이 모아 놓은 색깔들. 저마다의 빛깔로 나타나서 우리를 어루만지게 하니 신비롭고 고맙기만 해요. 지금 나를 나타내는 색도 봄을 따라 곱게 물들어가요.


벤치에 앉아 풍경을 보고 있으니 온갖 시름, 걱정이 모두 잊히네요. 삶의 고민은 무수한 덩어리. 걱정은 실제 일어나지도 않는 것들, 지나면 별일 아닌 것들도 많지요. 하지만 그때 느끼는 마음이 가장 최선이기에 그 마음을 안아가려 해요.


걱정에 휘둘리기보다 맞이하는, 걱정에 빠지기보다 찬찬히 바라보는 마음. 그저 봄처럼 천천히, 부드럽게 안아보아요. 쓸데없는 걱정은 차곡차곡 모아 휴지통에 버려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에 구태여 온갖 시름을 껴안을 필요는 없잖아요.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그날 내가 부릴 수 있는 최선을 따라가요.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이바지하는 것이 그날의 최선이라 여겨져요.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고민을 잠시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느껴가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봄을 걷는 그 길 따라 생각을 덜어내니 온전히 지금의 공간을 살피는 길이 되었어요. 생각의 덩어리가 복잡하고 어지럽게 엉키지 않도록 신경 쓰니 봄의 빛깔이 더 충만해지네요. 바람과 햇살, 꽃이 부르는 이 순간, 그 속을 걷는 내겐 충분히 행복한 길이에요. 짧은 점심시간 사이의 산책이 특별해져요.


자연의 소리가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바쁜 일상 안에서 놓쳤던 소중한 감정들을 다시 깨닫게 해 주어요. 봄은 그 자체로 새로운 시작이라, 그런 소리와 어우러져 마음이 가벼워지고, 새로운 활력을 얻어요. 종종 놓치기 쉬운 것들을 선물처럼 보아 가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에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자.’라는 마음. 이것은 정말 중요한 삶의 태도인 것 같아요.


내 안에는 여전히 작고 여린 아이가 살아요. 산수유 노란빛을 타고 피어나는 꽃망울을 닮고 싶어요. 보이는 것은 작지만, 뭔지 모르게 커다란 기운을 품고 있어요. 심고 포개어 다듬어간 하루들이 어느새 터트려진 꽃과 잎처럼 무성해서 나의 빛을 이룰 거예요. 그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재미있네요. 자! 지금 맞이하는 나의 봄을 온전히 안아볼까요?



KakaoTalk_20250322_110818228_07.jpg 어맛! 귀여워!


KakaoTalk_20250322_110818228_07.jpg 솜털 같은 풀잎


KakaoTalk_20250322_110818228.jpg 산수유 향기 따라


KakaoTalk_20250322_110818228_01.jpg 풍성해질 봄


KakaoTalk_20250322_110818228_11.jpg 하얀 꽃 그대

KakaoTalk_20250322_110818228_09.jpg 퇴근 후 또 찾아가 나를 찍다. 봄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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