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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오늘의 시 30화

이정표

파란색 이정표, 우리네 길 따라

by 현정아

파란색은 안내자


길을 잃은 나를,

헤매고 있는 나를

고요히 부르지요

여기가 어디쯤인지 모를 불안

온몸은 긴장감으로 똘똘 뭉치고

걱정과 조급함을 담아낸

가쁜 숨만 헉헉 몰아가지요


발꿈치는 더디기만 더딜 뿐

파란색 표지판

눈에 드는 순간

반가운 이정표

만남이 반가워


마음은

바다처럼

평온해지죠

조급함은 스며들고

불안은 옅어지고

가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

마음에서 나눠지는 기별

사각의 테두리,

내비게이션에만

시선을 맞추다 보니

미처 몰랐던 인생길

파란색 표지판

이끌던 방향

우리네 길마다 놓여

여전히 그대로인데

미처 눈치채지 못했죠

막막해진 거리를 따라

두렵고 불안한 마음

정처 없이 돌던 걸음

한 걸음씩 디디고 디뎌

길 따라 기억해 낸

방향에 힘을 실어

고요히 걸어가 보아요


유난히

곱고 파란

인생 따라

그렇게

다시





협회 회의 참석을 위해 외부로 나가던 길이었어요. 유난히 파란 하늘이 반가운 날이었지요. 오랜만에 출퇴근길을 벗어나 다른 길로 운전하는 사이 약속 시간 안에 도착하기 위해 내비게이션을 켰지요. 이동할 때 자주 내비게이션을 켜요.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려주니까요. 이 때문에 내가 스스로 길을 찾는 일은 드물어졌어요. 익숙한 길은 그냥 찾아가지만, 모르는 초행길은 더더욱 길 안내자의 도움을 톡톡히 받고 있어요.


사각의 테두리에 시선을 맞추고 몇 미터 전방, 좌회전, 우회전, 직진 등 도로 상황을 음성 안내에 따라 집중하여 운전하지요. 가리키는 방향대로 가다 보니 애써 기억을 하지 않아요.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예전에는 전화번호도 외우고, 길도 외우고 수첩에 기록하여 보관하고 그랬었는데 지금은 마음속 추억이 되었네요. 친구 집을 찾아갈 때는 그림으로 약도를 그려 넣고 ‘빨간 지붕, 파란 대문집’처럼 특정한 외관의 모습을 주고받으며 만났었지요.

찾아가는 초행길, 친구를 만나기까지는(만남의 장소를 찾기 전까지는) 불안함의 연속이었지만 해낸 후의 기쁨은 더없이 컸어요. 지금은 잘못 찾아갈 일도, 설사 잘못 찾더라도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아요.

운전하며 회의 장소를 가다 보니 도로 위 표지판이 오늘따라 유난히 눈에 들어오네요. 내가 사는 ‘읍, 면’에 소재한 국도는 초록색 표지판(이정표)이 많았는데 ‘시’로 나오니 파란색 표지판이 많은 것을 발견했어요. 무심코 흘려보낸 것들이 이제야 눈에 들다니요.


파란색 이정표 따라 하얀 글씨, 화살표가 꿋꿋하게 길을 안내하고 있어요. 전에는 표지판이 있더라도 내비게이션만 예의주시하다 보니 나의 관심 영역을 벗어나 있었지요. 그래서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보아도 ‘그런가 보다’하고 넘겼을 테지요.

오랜만에 파란색 표지판을 따라가 보아요. 직접 눈으로 보니 길이 훤히 잘 보이는 느낌이에요. 봄바람 타고 새로운 마음이 물결처럼 안내하네요. 표지판이 없었으면 우리의 생활은 어떨지 궁금해졌어요. 그리고 초록색이 아닌 파란색이 가진 의미가 무엇인지도 궁금해졌어요.


방향을 잃은 차들처럼, 우리 삶도 혼란스러워질 테지요. 표지판이 있기에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잘 찾아낼 수 있어요. 안내자가 있기에 여기가 어디인지 우리는 알게 되지요. 잘못 들어선 길도 표지판 따라 다시 수정해서 나아갈 수 있어요.


파란색 표지판이 유난히 많은 이유는 도심의 불빛 때문이래요. 야간에 불빛이 비쳐도 구분이 잘 되는 빛깔이라 하더라고요. 바다처럼 온화한 빛이었네요.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잘 알려주는 고마운 색이네요. 그러고 보니 오늘의 하늘색과 무척 맞닿아있어요.

우리 인생도 그러해요. 길을 걷다 보면 헤매고 주저앉고 망설여져 불안할 때도 많지요. 이 길을 가면 맞을까? 지금처럼 걸어가면 될까? 많은 고민과 망설임을 어느 때고 가지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표지판을 만나면 어떨까요? 저쪽에서 유턴하라는 방향의 안내대로, 우회전, 좌회전, 직진의 코스처럼 중간에 안내하는 표지판을 만나면 불안한 마음이 안정되어 갈 거라 여겨져요.

시기마다 만나지는 우리네 파란 표지판은 과연 무엇일까요? 모두의 마음에 들어 있는 파란 표지판은 과연 무엇일까요? 설사 그 길이 멀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어요. 언젠가 만날 파란 표지판이 가장 든든한 내 삶의 안내자가 될 테니까요. 파란 표지판처럼 내 마음이 이끌어질 방향대로, 나의 소신이 닿을 자리마다 강하게 나를 이끌어줄 바다 같은 빛이 있으니까요.

삶의 어느 지점에서건, 지금 나를 이끄는 파란 이정표가 있다는 믿음. 그 믿음 하나로 우리는 오늘도 길을 찾아가고 있는지도 몰라요.



지금 당신의 마음에는 어떤 파란 표지판이 보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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