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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이 좋아서, 봄

시작이라는 봄은

by 현정아

초록이 좋아서


Chapter 1. 봄, 시작은 마냥 초록이 좋아서 in the spring

『초록이 좋아서』라는 말에 이끌려 책을 집어 들었다. 나도 온 천지의 초록이 좋아서이다.

봄이 시작되는 소리를 읽는다. 7년 차 정원 생활자 <더초록 홍진영 작가>는 아파트 생활을 뒤로하고 주택의 생활을 선택했다.


주택에 입주한 날부터 눈에 든 마당을 두고 정원을 일구기 시작한다. 그 안에서 4계절을 난다. 몇 번의 계절은 반복되지만 매번 다르게 다가오는 정원 생활은 어쩌면 인생을 조금씩 가꾸어가는 무수한 반복과 인내의 과정이다. 그렇게 초록은 단순한 색이 아니다. 내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봄의 정원이라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하던 일을 멈추고 되돌아 나오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몰입과 중독의 차이는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올 수 있는지로 결정되는 게 아닐까. p.21


삶은 균형의 예술이다. 즐거움과 책임, 몰입과 현실 사이에서 조화를 찾아야 한다. 이 순간이 아름다움을 즐기되, 조금 더 여유를 갖고 미래의 삶도 슬기롭게 챙겨가야겠다. p.21

정원일을 하다 보면 한창 자라고 부풀어 오르는 꽃눈들로부터 눈을 떼기가 어렵다고 작가는 말한다. 앉고 보살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나와 눈이 맞을 때의 기운을 알게 된다. 작가의 정원일이 그러하다. 나와 만나는 최고의 몰입상태가 되는 것. 나의 일에서 몰입이란 나와 가장 자신 있게 만나가는 순간이라 여겨진다. 집중보다 더한 몰입의 경지는 주변의 상황이 다르게 바뀔지라도 연연하지 않고 행해지는 순수의 상태이다.


그러나 적당의 지점을 알고 행하는 것,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하되 어느 정도의 여비를 주는 것이 정원 일에서는 필요함을 알게 된다. 좋아하는 일로 다른 생활이 타격을 받도록 두어서도 안 되지만 정원의 자연물들도 보살핌의 손길로부터 멀어져 스스로 자라날 공간의 여유가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몰입하되 적당의 거리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몰입하되 헤어 나올 수 있는 선택과 조율이 필요하다.

봄에 피는 꽃들은 모두 긴 겨울을 견뎌내야 비로소 풀어볼 수 있는 자연의 선물이자 환희다. p.33


봄을 제대로 만나려면 겨울이 지나가야 한다. 겨울이 있어야 봄이 온다. 겨울의 맨 땅을 억척스럽게 견딘 자만이 딱딱해진 땅을 뚫어 봄의 햇살을, 따뜻한 온기를 맞이할 수 있다. 뭐든지 쓰러져보고 넘어져 보아야 다음이 단단해지는 것처럼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에게도 그런 계절이 있다.


봄이 오는 길목에 태어난 탄생의 순간은 작고 여리나 여름의 우렁찬 기운을 받아 청춘으로 물든다. 가을의 익어감에 나도 따라 익어가는 너그러움이 생기고 겨울의 시련을 따라 다시 꽃필 계절을 맞이할 수 있는 것처럼. 어쩌면 계절은 1년이 아니라 날마다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상이 순간들이 계절만큼이나 변화무쌍하기도 하니 매일 나를 잘 다스려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정원에서 일을 하다 보면 식물들이 마치 내 얘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시끄럽고 복잡한 세상에서 아무 말도 없이 침묵으로 묵묵히 위로를 건네는 식물들 p.38


정원일에 서툴던 초반에는 성공보다는 실패가 주를 이뤘다. 열심히 해도 달라지는 게 없었다. 종종 불확실성의 폭풍을 견딜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 기다림은 지침이 아니라 설렘이라는 것. 그리고 소중한 것들은 천천히 자라나니 조바심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p.48


봄을 맞이하는 자의 마음이란 결국 이런 것이 아닐까? 화려하거나 예쁜 것 뒤에 박힌 인내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기어코 꽃은 피어난다는 것. 지금의 내가 행하는 일들이 모자라 보이고 서툴고 눈에 들지 않아도 조금씩 하다 보면 언젠가 꽃은 피고 인내의 열매는 반드시 자라난다고 믿고 싶다. 내가 하는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일들이기에 반드시 내게 채워져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봄은 지나고 있지만 봄을 떠올린 글 안에서 봄 정원을 나른하게 떠올린다. 나른함은 피곤한 것이 아니라 기분 좋은 가르랑거림이라는 것. 누구나의 봄이 여기저기 피고 지며 차곡차곡 쌓이어 간다는 것을 말이다.


매일 작은 기쁨이 차곡차곡 쌓이는

삶은 균형의 예술


긴 겨울을 견뎌야 피어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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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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