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사물을 고마워하는 마음
살다 보면 상황에 따라 나타나는 것을 해결하고자 여러 가지 이유를 댈 때가 있다. 그 이유를 면밀히 살펴보면 어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변명을 늘어놓기도 하고, 타인의 잘못을 비방하여 나의 행동이 ‘참됨’을 나타내기도 한다. 나의 원칙을 지키되 타인을 비난하거나 이용하려는 마음을 접는 것이 품위를 지키는 삶이다. 아예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야말로 나를 진정 세우는 길이다. 남을 통해 이루려는 것들은 나를 위한 일이 아니다.
자신의 기쁨을 타인의 고통 위에 쌓지 마라.
p.154
타인의 아픔을 나의 기쁨으로 이용하는 것이야말로 아름답지 않은 인생이다. 상황에 대비하는 내 행동의 이유를 타인에 빗대어 말하기보다 자신이 가진 원칙과 소신으로 정확하게 알리는 것이야말로 이순신의 삶처럼 기품이 있는 삶이다. 기품이 넘치는 인생은 곧 고통도 행복의 일부처럼 맞이하여 받아들이고 겪어내야 함을 이야기한다. 행복과 고통은 같은 선상에 붙어있는 것이다. 하나의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고통이 함께 자리한다. 물론 행복을 얻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에서 하기 싫은 것을 겪은 후의 보람과 행복은 따라오게 된다.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싫어하는 일 10가지를 넘어야 얻을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이 살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 중의 하나는 기회의 마음이다. 타인의 위에 군림하기보다 기다려주는 마음은 억지로 타인을 바꾸려 들지 않고 그 스스로가 해내도록 마음으로 응원하는 것이다. 서툰 시도는 실패를 부르지만, 모든 이들에게 동등하게 기회를 주고 싶어 했다. 그것은 타인의 고통을 즐기고, 시험 삼아 바라본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존재를 진정 사랑하는 마음이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바라볼 마음은 제각각이다. 그래서 기회를 믿음이라 부르고 싶다. 내가 믿는 만큼 기회는 보이고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마음이 비로소 열리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야말로 그것을 이어갈 힘을 주는 기다림일지도 모른다.
완벽한 긍정은 완벽한 부정과 맞닿아 있다.
p.158
긍정의 에너지가 높은 이순신의 삶을 통해 그의 생각을 따라가는 일은 진정 배울 만한 삶의 통찰이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열쇠를 돌려내는 일이다. 섬세한 마음의 목소리로 그의 생각을 따라 읽어 내려간다.
⓵ 내게 없는 것이 아닌 존재하는 것을 보라
⓶ 보이지 않는 지점을 바라보라.
⓷ 생명의 소중함을 인식하라.
⓸ 사식이 끝난 자는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⓹ 상황에 기대지 말고 자신에게 의지하라.
위의 다섯 가지 어록을 찬찬히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기회의 문은 열린다. 내가 어떤 행동으로 그날의 나를 이룰 것인지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이 아닌 나! 남이 아닌 나에게로 문을 열어 기회를 주는 것이야말로 지금을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의 풍요라 여겨진다.
나를 아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p.161
그렇다. 나를 먼저 알고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나를 잘 아는 것이야말로 타인을 알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다. 자신을 제대로 모르면서 어떻게 남을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난중일기를 통해 기록된 것은, 결국 타인이 아닌 이순신 자신의 내면을 먼저 아우르고 만져간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자신을 잘 이해하였기에 백성을 잘 품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삶을 따라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지만, 이런 마음을 읽는 것만으로도 벅찬 마음은 그 크기와 색깔 자체부터가 다르다. 어려운 일도 이겨낼 유연함이 이 시간을 통해 채워진다. 그가 쓴 시를 다시 읽는다. 우리가 너무 잘 일고 있는.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성 위에 높이 지은 다락집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찬 나의 시름이 깊어지는 순간
어디선가 흐르는 한 곡조의 피리 소리에 애가 끓는다.
p.162
7년 동안의 전쟁통에 누구보다 백성의 안위를 걱정하여 온 밤을 홀로 시름하였을 그의 사색이 달빛을 통해 절실히 드러나는 것만 같다. 그 마음이 투영된 빛은 큰 칼을 내려놓을 수 없는 형국의 시름을 고뇌로 반사시켜 나타나게 한다. 조용한 고독의 시간을 따라 피리 소리의 곡조가 유난히 슬픈 이유는 백성을 향한 걱정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순신은 강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어진 마음이 백성을 향해 있었기에 흔들리지 않은 원칙을 굳건히 지켰다.
부정적인 사고를
내려놓는 순간
새로운 삶이 길이 열린다.
p.162
어지러운 시국에 무엇보다 좋은 시선을 지닌 사람. 그를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은 이유는 그의 삶이 지닌 통찰을 배우고 알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전쟁을 치르지 않지만 그만큼 하루를 버티고 이겨내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다. 누구보다 자신과의 싸움을 잘 끌어내는 사람이야말로 일상을 잘 간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간다. 그렇기에 내 일상을 좋은 마음으로, 좋은 시선으로 엮어가는 것이 중요함을 알게 된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 있고,
그들이 사는 다양한 상항이 존재한다.
정면을 향해 뻣뻣이 고개를 든 사람,
우측 혹은 좌측으로 고개를 돌린 사람,
유유히 다른 곳을 바라보는 사람,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사람은 이렇게 나뉜다.
특별히 착하거나 악한 사람이 가득한 나라는 없다.
모든 부류의 사람이 적절히 나뉘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어떤 상태에서도 욕하거나 흥분할 이유도 없다.
세상은 그저 적당한 상태로 정해져,
그것을 즐기는 사람의 태도로 결정되는 결과물이니까.
상황은 언제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의 몫이다.
그대는 어떤 길을 선택해 걸어가고 싶은가?
p. 163
이순신의 사색을 통해 인문학적인 정신의 세계를 만난다. 정답을 요구하고 답을 찾기에만 급급한 현실에서 비로소 무엇이 제대로 된 답을 찾아가는 길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생각이라는 도구를 제대로 활용하면 내 생각뿐 아니라 타인의 생각을 포용할 수 있다. 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각기 다른 생각 속에 더 나은 생각들이 존재한다.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상황, 다양한 환경, 다양한 생각 등. 여기서 이순신이 찾아간 것은 만족할 만한 답이 아닌 내 생각과 타인의 의견을 융합해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을 추구하며 답을 찾는 것이었다. 남의 의견만 좇기보다 내 생각만 추구하기보다 사소한 것 하나부터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일부터가 나와 타인의 다름을 이해하는 첫 시작이다.
“그대는 왜 자신이 할 수 없는 이유를 힘들게 찾아내,
자신이 무엇도 될 수 없는 이유를 증명하는 데 아까운 시간을 소모하는가?”
p.169
이순신은 난중일기를 쓰는 내내 아팠다고 한다. 전쟁을 쉬거나 휴식을 취하며 마음 놓고 지낸 적이 하루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방법을 찾는 사람이었고, 정신을 바로 잡아 몸을 따르게 한 사람이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문장이 아닌가? 현실에 나와 있는 문제를 나의 태도로 다시 돌아보는 일. 그것이 나의 인생을 대하는 마음이라는.
곧 현실의 모든 것은 내가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문제를 바로 변화시킬 수 없다. 나의 생각의 문턱을 달리 한 것이 바로 인문학적 소양이 아닐까. 일상의 것들을 허투루 여기지 않고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로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나를 잘 알아가는 것이 아닐까.
시간은 사람을 변하게 한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모든 변화는 우리가 보낸 일상이 합이다.
자주 생각하는 삶이 목적을 아름답게,
자주 말하는 단어와 표현을 맑게,
자주 접하는 사람과 풍경을 기품 있게 바꾸면,
우리의 모습도 그렇게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p.172
이 챕터의 마지막에서는 배우는 습관의 힘을 다룬다. 그것이 인문학이라 한다. 나의 일상에 배움을 함께 가져가는 것이 곧 삶의 인문학이다. 거창한 지식만이 배움이 아니라 모든 사람, 모든 자연 안에 배움은 존재한다. 하찮은 일도 귀히 여기는 마음이 그것을 빛나게 한다.
구석에 박힌 조그만 풀꽃에도 온 우주가 내린 배움이 존재한다. 살아간다는 것이 곧 배워가는 삶이다. 나의 마음을 소중히 하고 잘 알아가는 추구의 삶. 독서로 말미암아 문장을 곱씹어 나의 일상에 실천으로 이르게 하는 일.
기꺼이 나누는 마음의 열린 자세, 태도.
그 고귀한 마음을 차곡차곡 쌓아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아가련다. 나는 무슨 일이든 주어진 것은 잘 해낼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걸어가련다. 넘어지고 부딪혀 생채기가 나더라도 다시 일어나 조금씩 내딛는 길에 늘 배움이 있기에 일상의 인문학적 정신을 잘 다듬어 가련다.
배우는 자는 고귀한 사람이다.
고귀한 사람은 찬사를 받는다.
온갖 호의와 신뢰를 받는다.
다른 사람이 좋은 점을 발견하는 그들의 특징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좋은 점을 발견하고,
그것에 대해 칭찬하며 희망을 키워주는 사람을 따른다.
타인의 훌륭한 점을 발견해 격려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매일의 자시의 일상에서 배움을 추구하라.
배우는 자만이 사물과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다.
p.182
그리하여 배움의 길로 접어드는 하루하루가 기대된다. 하나를 잘 알아 나의 것으로 이어가기 위해 사물을 잘 관찰할 수 있도록 비워가는 마음을 품는다. 소중하고 감사한 것들이 가득하니까. 그것이 내가 배워갈 일이다. 또 그것이 나와 타인이 함께 어울려 잘 살아갈 힘을 내어 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