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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이 좋아서, 가을

찰나가 익기까지

by 현정아

초록이 좋아서 /더초록 홍진영


Chapter 3. 가을, 깊고 너그러운 찰나의 계절 in the Autume


자연은 각자 도생하는 ‘적자생존’ 시스템이 아니라 ‘공존’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모두가 연결되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니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 p.123


공존 共存


사전의 말을 빌리면 공존은 서로 도와서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순화어는 `함께 살아감'이다. 두 가지 이상의 사물·현상이 함께 있는 것. 공재(共在). 공존은 삶을 이루는 피할 수 없는 공간의 미덕이다. 이 안에서 내가 어떤 존재로 남는가에 대한 질문은 내 생각과 태도로 말미암는다. 서로가 도움을 주는 관계. 제대로의 공존은 여기서 빛을 발한다.


나의 손길 하나가 너에게 좋고 너로 인해 나도 빛이 날 수 있는 환경이야말로 지금 있는 공간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길이다. 아름다움의 과정은 쉽지 않다. 그만큼 노력이 있어야 한다. 받아들이고 가꿀 수 있는 노력. 나만 있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공존은 서로 간의 긴밀한 연결이 있어야 비로소 이루어진다. 나와 너의 이어짐 안에 아름다움이라는 관계에서의 나다움이 존재한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일까.


초록이 한창인 정원이야말로 내가 이룬 노력이 결실로 이어져 나올 법한 곳이다. 말 없는 속삭임이 쌓여 결실을 맺는다. 천천히 피어나는 꽃들은 대충의 힘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계절마다 품어 낸 노력이 찬찬히 고개를 들 때 그 안에서 비로소 이루는 공존의 미는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 될까. 나는 정원은 가꾸지 않지만, 이러한 마음이 곧 자녀를 키울 때와, 직장에서 일을 할 때에도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비단 예쁜 꽃처럼 매일 좋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꽃을 피우기 위해 싹을 틔우고 줄기를 통해 자라나는 동안의 노력이 공존의 힘을 발휘하게 한다. 공존은 서로의 인정 안에 사랑이라는 열매를 맺는다. 나와 타인의 관계 안에 조금의 사랑이 있어야 더할 나위 없이 긴밀하게 지켜낼 수 있는 정원이 되는 길이리라.


가을걷이가 한창인 논을 보면 괜스레 마음까지 넉넉해진다.
봄과 여름을 성실하게 보냈다는 뿌듯함, 다가올 겨울이 두렵지 않은 든든함.
내게 평온함과 안정감의 원천은, 천천히 계절을 응시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p.137


계절을 지나며 자연의 모습을 사진에 담을 때가 있다. 봄의 노란빛, 연두의 생생함, 따뜻한 바람의 이야기를 담는다. 여름의 짙은 청록은 매미 소리만큼 드높아진다. 자라는 크기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그늘은 진해진다. 가을이면 단풍 든 빛깔과 청명한 하늘의 색깔만으로 마음을 뺏긴다. 바람은 서늘해지고 바람 따라 잎맥들이 나부낀다. 겨울의 쉬어감 안에 눈을 맞는다. 하얀 트리처럼 드리워진 가지마다 소복해질 마음을 심는다. 작가의 말처럼 계절을 응시하는 재미를 느껴가는 것은 s가 지금 살아가는 마음을 나누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의 사진에 담긴 자연의 모습조차 그때를 놓치기 싫은 감동을 조금 저장해 두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빠의 정원 수첩

비료에 의존하지 마라.
물을 너무 자주 주지 마라.
비는 보약이다.
너무 자주 새싹을 들여다보지 마라. 안 자란다.
나무는 봄보다 가을에 심어야 더 잘 산다.
농약을 치면서 너무 깨끗이 기르려 하지 말고 주어진 대로 길러라.
벌레도 다 먹고살려고 그러는 거다. 좀 봐주렴.
너무 급하게 하지 마라.
내가 급하다고 자연의 시간이 나를 따라오는 건 아니다.
모두 때가 되어야 한다. p.151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작가는 그리워한다. 아버지가 남긴 유산은 작은 수첩에 적힌 말들과 흙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정원이다. 초보 가드너의 날마다는 아빠의 연륜으로 품어갔다.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후 주체할 수 없는 슬픔으로 인해 정원은 그녀의 생활반경에서 멀어졌다. 돌봄을 받지 못해 여기저기 소란스러워진 만신창이를 하고도 정원은 가드너를 기다려준다.


만신창이의 모습으로 만신창이가 된 정원을 바라보는 작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아버지의 부재를 정원으로 보답하는 일들이 서서히 시작된다. 내가 지켜야 할 것들이 정원으로부터 나오는 기분은 직접 해보지 않으면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다시 풀을 뽑아내고 흙을 일구며 맡는 흙냄새, 바람, 햇살, 피어나는 싹. 몽글몽글.


땅의 모든 것으로부터 아버지의 향기를 맡고 있는지도 모른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세상을 향한 시간이 나에게 분명히 있다고 느끼며 다음의 문장에 마음을 기울인다.



언젠가 다시 카운터펀치를 맞는 날이 오면,
잠시 죽은 듯 쓰러져 있을 테다.
그사이 없어질 것들이라면 애초에 내 것이 아닌 거다.
놓아야 할 것들을 산뜻하게 놓은 뒤,
또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일어서겠지.
p.156


나도 아버지가 있다. 우리 모두에게는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의 인내로 나는 자랐다. 정원의 식물을 가꾸듯 곱게 키운 딸은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한 발씩 걸으며 어느덧 중년의 시기를 걷고 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자연의 이치를 곱씹어 본다.


섣불리 이루려 하지 말자. 욕심을 내지 말자. 적당한 온도와 적당한 마음을 때마다 주자. 그리고 기다리자.


그것이 아이를 키워가는 일과 맞아떨어진다. 자녀를 키워내는 일 또한 정성을 쏟아내고 반복해야 하는 일이다. 나로부터 아이에게로 전해져 가는 일들이 무릇 책에서 말하는 정원 안의 진정한 돌봄과 같다고 여겨진다.


과하거나 모자람이 없고 적당한 때와 길이 있다는. 억지로 준다고 해서 제대로 크는 것이 아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도 조금씩 자연의 순리대로 자라고 있으니 과하게 기대하거나, 함부로 솎아내지 말기를 다짐해 본다.


아쉽지만 끝이 있어야 새로운 시작이 있는 법.
끝이 있었다면 벌써 질려 나가떨어졌을 거다.
가을의 서리는 모든 걸 마무리하고 새로 시작하라는 신호다.
그래서 정원의 사계를 말할 때는 가을부터 시작하곤 한다.
올해의 꽃과 열매는 끝이지만, 내년을 위한 파종과 구근 식재는 비로소 시작이니까. p.168


처음과 끝이 있다는 것은 없는 것으로부터 있는 것으로 상황을 전환하여 가는 일이다. 새로이 시작되는 일들은 내가 찬찬히 변화되어 가는 시절의 기록이다. 이야기로 남겨지는 기록은 마무리가 있지만 또 다른 이야기는 연이어 시작된다. 끝이 있어야 시작을 이룬다. 정원을 가꾸며 사계절마다 이룬 변화는 땀과 노력이 바탕이 된다.


무엇이든 처음이 있고 사이마다 과정이 있어야 마무리가 이어진다. 마무리는 또 다른 시작을 낳는다. 어쩌면 날마다의 일들이 곧 새로운 시작과 마무리인지 모른다. 아침에 일어나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맞이하고 잠자리에 들며 그날을 퇴고하는 일들이 그것이다. 나의 시작과 마무리는 날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일상은 반복되지만 매일은 다르게 다가오니 그만한 시작과 마무리가 어디 있을까.


마음대로 흘려보내지 않을 일들을 펼쳐내는 것은 나한테 달려 있다. 또 다른 내일을 맞이한다는 것 자체가 감사함이다. 모퉁이를 돌아 새로운 일이 기대되는 앤의 말처럼 새로움에 두려움을 내려놓자. 힘들고 더딘 일 앞에서도 언젠가는 끝이 있음을 기억하며 최선을 다해 보리라. 나의 7월이 다가온다. 그렇게 농익은 가을을 향해 여름을 잘 보내보자.



1.jpg 붙잡고 싶은 가을


KakaoTalk_20250629_180819684.jpg 아빠의 정원


KakaoTalk_20250629_180819684_01.jpg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


KakaoTalk_20250629_181328381.jpg 끝이 있어야 시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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