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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들어가기로 마주한 순간

by 현정아

죽음의 수용소에서/빅터 프랭클 지음


산다는 것은 곧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시련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p.19
왜(why)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how)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p.19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를 이제야 만나다니, 그의 이야기를 이렇게 진득하게 마주하다니 속으로 터져 나오는 울음은 연민과 동정의 표현일까? 아니면 그 어떤 시련 앞에서도 한 인간이 설 수 있는 가치의 힘에 이끌린 채 존경의 눈물이 저절로 나오는 것일까? 그 시절에 내가 있었다면 난 절대 그런 의미 있는 삶을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거부당하는 시절의 고통 안에서.


책은 단지 수용소 안에서의 비인간적인 횡포에 대해서만 다루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내가 거기에 있었다면 극치의 공포감에 휩싸여 인간으로서 영위해야 할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삶 자체에 무기력감과 포기, 스스로 믿지 못하고 과거의 행복을 지금과 비교하는 환멸을 느꼈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렇다면 빅터 프랭클은 생명이 위태로운 악조건이 거듭해서 치고 들어오는 나날을 어떤 감정으로 안아갔을까? 나약한 인간의 존재가 아닌 그 안에서 설 수 있는 가장 최선은 옭아맨 현실 안에서도 스스로 자유를 선택하고 생각하고 행동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과거도 일제강점기를 겪었기에(비록 내가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 절실하기만 했던 그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감히 비교할 수조차 없는 현실에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돌아본다. 나의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그들의 삶은 최소한의 인격조차 받아들여지지 않는 짐승과도 같은 삶이었다.


많은 사람이 죽고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고 가족을 잃고 고향을 찾아갈 수조차 없는 현실. 그래도 해는 뜨고 지며 시간은 흐른다. 흐르는 시간만큼 만날 수조차, 아니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모를 가족들의 그리움과 걱정 안에서 느꼈을 깊은 고뇌를 들여다보게 된다.


갈수록 수용소 안에서의 삶 자체에서 느껴지는 여러 가지 감정선 안에서 과연 인간은 어디까지 선과 악을 지닐 수 있는지 보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행하는 그 모든 행동에 누가 돌을 던질 수 있단 말인가! 만약에 나였다면, 나의 입장이 그들 하나하나와 견주었을 때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지 의심해 본다. 아마 두려움과 공포를 지닌 채 그렇게 살다가 환경에 따라 적응하고 무디어지고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삶인 양 지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삶은 흐르기에 주어진 환경 안에 어떤 마음을 먹는지에 따라 앞으로의 삶 자체가 확연히 달라짐을 알았다. 의지가 없는 삶과 다르게 작은 것 하나에도 의미를 가지는 삶. 나는 과연 어느 쪽을 택하여 지금을 살아가고 있을까?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리며 그들을 심적으로 마주하고, 나를 인내하되 아끼듯 바라볼 수 있는 마음. 아무리 혹독한 삶이라 해도 그 안에서 진정의 자유를 얻어낸다면, 그만한 삶의 위로와 행복은 없을 것이다. 어떤 상황이든 내가 택할 수 있는 것은 나의 마음이고 나의 의지이기에. 비록 누군가에 의해 꺾이고 좌절될지라도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은 내가 스스로 극복해 나가는 것이니까.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실현된다.
p.78


이 세상에 남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그것이 아주 짧은 순간이라고 해도)
여전히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78


자유가 없는 삶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을, 그 사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살기 바쁘고, 죽음이 두려울 수밖에 없는 현실 안에서 마음 안에 깊이 간직된 사랑이 그를 보듬는다. 그로 인해 행복감이 밀려온다. 행복은 내게 주어진 현실 안에서 얼마든지 존재하고 있다. 내 의지로 결코 변화시킬 수 없는 시대의 핍박 속에서도 그러한 사랑을 기억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니고 있어서 다행이다.


그런 마음을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신의 경지를 타고난 것이 아닐까? 아니면 내면의 소리를 스스로 찾아내 들여다보고 또 불러내기를 반복한 것일까? 여력이 없는 상황 안에도 꽃은 피고 지며 계절은 바뀐다. 시시각각 변하는 현실의 틈 안에서도 아름다운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 수용소 안에서의 그의 삶을 들여다보며 그것을 내내 느껴간다. 아내와 진정으로 나누던 정신적 연결의 위대한 대화를 마음 깊이.


내면세계의 극대화!


빅터 프랑클은 이것이야말로 현실 세계의 피난처라 말한다. 상상의 나래를 펼친 아주 짧은 시간일지라도 과거의 회상을 통해 향수 어린 추억을 소중히 하고 성스럽게 만들었다. 그런 상상으로 인해 자연의 아름다움, 지금의 세상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알았으니 이런 수감자야말로 삶과 자유에의 희망 같은 것으로 온몸을 감싸갔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면을 극대화하고 있는가?


현실 안에서 과거의 어떤 일을 회상하며 뿌듯한 순간을 기억하고 행복감을 느끼고 있을까? 아니면 과거의 어떤 선택을 못내 후회하며 지금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가! 전자도, 후자도 결국 다 맞다.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서 느끼는 감정의 차이가 있기에. 수용소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살아내는 치열함이 있기에 빅터 프랭클 박사의 말처럼 전자의 삶을 따라가고 싶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감사를 느끼는 순간! 나의 마음은 커진다. 행복감이 꿈처럼 밀려올 것이다. 여름의 흔적이 청춘의 빛처럼 흔들리기에 그만한 삶이 없다. 스스로 최선을 따라가는 길. 내가 하는 일에 작은 의미를 가지는 것! 스스로 뿌듯해 마지않는 감사한 마음을 잘 만나가리라.


강제수용소에서도 수감자들 사이에 예술이 존재하고 유머가 있었음을 알게 된 순간 삶은 그래도 주어지는 안에서 인간으로서 영위할 실오라기 같은 희망의 나래가 펼쳐졌다고 여겨진다. 작은 마음이 오히려 모이면 커다란 집합을 이루고 그것이 공유된 순간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작은 유머 하나가, 예술의 힘 하나가 그들이 살아냈던 그날의 기록이 되었을 것이다. 삶을 기억하는 마지막의 순간을 그들은 어떤 마음을 지녔을까?


사소한 행복이 상대적인 의미를 키운다. 수용소는 여전히 고통인 곳이지만 굴뚝이 없고 가스실이 없다는 사실 만으로도 기쁨을 느꼈다고 한다. 상대적인 것 안에는 비교가 들어가 있지만 내가 놓인 현실 안에서 작은 위안이 되기도 한다. 그것이 그들이 느꼈을 작은 행복이라 하니 씁쓸하면서도 안도의 위로 같은 것이 물밀듯이 들어온다.


작은 것에도 ‘다행’이라는 시선을 마주하던 그들을 떠올리며 내가 있는 곳에서의 행복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크지도 않다. 내 주변에 서성이고 있다. 단지 내가 그것을 느끼는지 아닌지의 차이다.


단지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그런 한 조각의 행운을 얻는 것이
당시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이었다. p.90


다음의 이야기를 뒤로 하고 책을 덮는 마음은 여전히 뭉클하고 궁금해진다. 인간이라는 존엄에 대한 가치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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