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생을 무엇으로 버티냐고 묻는다면 위에 언급한 바로 두 가지일 것이다. 어렸을 적에는 친구들과 놀고 먹고 마시고 게임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때는 그게 당연했으니까.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어느덧 30대 후반을 바라보니 단순히 스트레스 푸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에 쉼표를 찍을 수 있는 수단 같은 것이 필요했다. 특히 누군가와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사색하는 걸 좋아하는 내게 재즈는 그야말로 복잡한 머리를 씻겨주는 단비 같은 존재였다.
나는 사실 어울리지 않게(?) 힙합을 좋아했다. 범생이(좋게 말해서)같은 외모에 멍한 표정, 그리고 느릿함까지 갖춘 내가 힙합에 매료되었던 건 아마도 자유로움 때문일 것이다. 리듬 속에서도 박자를 타며 뱉어내는 랩들은 뭔가 위축되고 억압된 내게 해방감을 느끼게 해준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힙합을 듣다가 어느 날 우연히 ‘재지팩트’란 가수의 앨범을 듣게 된다. 힙합을 안다면 들어봤을 ‘빈지노’란 래퍼와 ‘시미 트와이스’라는 프로듀서가 의기투합해 결성된 듀오다. 그냥 힙합 노래들도 좋았지만 당시 재지팩트는 내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저 자유분방한 재즈의 선율 위에서 쏟아지는 랩들은 나한테 구세주가 되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재즈 음악도 좋아하게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이 음악들로 하여금 삶을 연명해 살아가고 있다.
위스키에 입문한 건 의외로 오래되지 않았다. 술을 싫어하는 편도 아니었고, 소주 맥주 가릴 것 없이 좋아했지만 양주는 달랐다. 어렸을 적엔 비싸기도 했고, 저 쓰디쓴 나무 향 나는 알콜음료를 왜 마시는지 이해가 안 됐다. 항상 ‘그 돈이면 국밥 사 먹고 말지’로 귀결되었다.
하지만 재즈를 듣게 되면서 당연히 위스키에도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위스키를 홀짝이며 재즈를 듣는 모습들을 여러 매체에서 수도 없이 접해왔기 때문에 도대체 위스키의 매력이 뭘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렇게 처음 방문한 재즈바에서 추천받은 위스키 한 잔은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독했지만 은은한 바닐라 향과 함께 목을 타고 내려가는 따뜻함은 묘한 기쁨을 선사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재즈에 리듬을 타며, 위스키를 홀짝이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다. 다들 다양한 형태로 이 휴일을 만끽하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크리스마스 재즈를 틀어놓고, 트리 장식의 불빛들을 멍하게 바라보며 위스키 한 잔을 홀짝일 예정이다. 여러분들에게도 삶에 쉼표를 찍을 수 있는 취향이 하나쯤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가끔 그 쉼표를 즐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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