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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Kim Aug 18. 2021

자폐는 돈 싸움이다?

우리 가족이 미국에 정착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들 태민이다. 자폐가 있는 태민이는 미국에서의 2년 동안 많은 사람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랐고, 나는 한국의 열악한 환경으로 돌아갔을 때 아이가 이렇게 건강하게 성장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여 결국 미국 취업이라는 큰 방향 전환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 금전, 신분 등 다양한 이유로 엄청나게 고생하고 있음에도 미국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까닭은 아이가 하루하루 발전하는 모습을 보는 것, 오직 이것뿐이다. 


지난 5년간 버지니아와 텍사스에서 살면서 경험한 공립학교의 장애인 관련 프로그램은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기본적으로 언어/작업 치료를 학교에서 제공하며, 매년 학기 초마다 학교 담당자들과 아이의 발달 정도를 논의하고 구체적인 학습 목표를 설정하는 회의 (IEP, Individualized Education Program)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수도 있다. 지금 지내고 있는 버지니아의 경우, 방학 중에는 장애가 있는 아동들에게 추가 수업 (ESY, Extended School Year)도 무료로 제공한다. 물론 아쉬운 때가 없었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장애인의 입학과 학교 생활에 호의적이지 않은 한국의 많은 학교/교사들을 생각해보면 그저 태민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다만 학교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주당 30분~1시간 정도로 충분하지 않기에 많은 자폐 아동의 부모들은 사비를 들여 각종 치료/테라피를 시킨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8할은 부모 (혹은 할아버지)의 재력이듯, 이곳에서도 육아는, 특히 장애아동의 육아는 역시 돈 싸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에는 한국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수의 테라피 센터가 있고 종류 또한 언어, 작업, 음악, 승마, 체육 등등 굉장히 다양하다. 그렇기에 한국처럼 몇 달간 입학 대기를 하는 일은 많지 않지만, 경험상 실력이 좋고 인기가 많은 곳일수록 보험을 받지 않을 확률이 많으며 이 경우 시간당 $100 (약 12만 원)이 넘는 치료비를 지불해야 한다. 3종류의 테라피를 주당 2회 정도 한다고 치면 한 달에 $2400 (약 280만 원)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1년에 10만 불을 번다 치면 세금을 떼고 통장에 들어오는 돈이 한 달에 6천 불이다. 여기서 통장을 스쳐 지나가는 돈 (렌트/모기지 + 의료보험 + 폰&인터넷 등)을 제하고 나면 저축은 고사하고 식료품비 vs 테라피 비용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의 고민이 시작된다. 


부유한 부모를 두었거나 남편이 전문직이라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경우는 소수 정예의 사립학교 + 각종 테라피로 아이 스케줄을 도배하기도 하고, 별로 여유가 없는 집이라도 어떻게든 두세 가지의 테라피는 시키기 마련이다. 물론 테라피가 아이의 발달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부모가 아이와 보내는 시간도 테라피 못지 않게 아이에게 많은 영향을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최고급 테라피와 최첨단 치료 기술 등을 큰 고민 없이 선택하는 아이의 부모를 볼 때면 태민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형편에 맞게 해야 하지 않겠냐?'라는 말을 하시는 분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아마 나도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았으면 비슷한 이야기를 했을 테니까. 하지만 로운 테라피를 시작하고 고작 2~3회 만에 아이가 크게 성장하는 모습을 몇 번 본다면 다른 생활비를 줄일지언정 테라피를 줄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돈만 있으면 한국이 최고지"


여기 있는 한인들과 이야기를 할 때마다 자주 나오는 말이다. 미국의 느리고 질 낮은 서비스와 인종 차별 등을 겪다 보면 모든 것이 빠르고 돈만 있으면 문제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한국이 생각나는 건 당연한 일이리라. 다만 나 같은 장애 아동 부모에게는 돈만 있으면 미국이 최고다. 테라피 비용이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만 벌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보통은 글을 쓰다 보면 마음이 정리되면서 상쾌한 기분이 드는데, 이번 글은 뭔가 갑갑한 마음으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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