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여름, 연극학교가 시작됐다. 연극과 나의 접점이라곤 수능 언어영역을 준비하면서 읽은 연극 지문 몇 개가 전부였기에 도대체 뭘 배우게 될지 기대되는 마음과 '내가 연극이라니. 잘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번갈아 왔다 갔다 했다. 연극학교 첫날, 다른 지원자들과 함께 두레문예관 연습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우리 앞을 분주히 오가는 인문극회 스태프들을 보며 뭔지 모를 그들의 존재감에 괜스레 주눅이 들기도 했다.
지원자들은 몇 되지 않았지만 독특한 개성의 소유자들이 많았다. 학내 마당패에서 활동 중이라던 커플이 유독 기억에 남는데, 여자 분도 사자 갈기 머리스타일에 남자 같은 털털함으로 굉장한 개성을 자랑했지만 남자 쪽은 아예 학교에서 보기 힘든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길쭉한 키에 언제나 헤실헤실 웃는 얼굴. 연습할 때도 언제나 흥이 넘쳤고, 언제부터 봤다고 반갑게 인사하면서 천 원 이천 원씩 빌려가서 잊어버리기도 예사였다. 다 같이 둥그렇게 바닥에 앉아서 이야기하다 갑자기 한쪽 엉덩이를 살짝 쳐들고 크게 "뿡!" 방귀를 뀌고 나서 낄낄거리는 것을 보았을 때는 정말이지... 옆에 앉은 여자 친구가 그걸 보고도 피식 웃기만 하는 걸 보면서 '이 둘은 정말로 사랑하는구나' 싶었던 기억이 난다.
또한 이곳에서 만난 친구 A와는 거의 20년째 계속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다. 사회학부를 다니던 그는 첫인상부터 여러 가지로 남달랐다. 굉장히 말을 잘했고 자기주장도 강했으며, 내숭 없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은 교내의 일반적인 여학우들과는 완전히 반대였다. 여러 가지 이유로 A는 극회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간간히 학교에서 마주치고 가끔은 따로 약속도 잡는 식으로 어떻게든 연락이 닿았다. 언제부턴가 - 내 입대 이후인지 취업 이후인지 - 각자의 인생이 바빠지면서 연락이 소원해졌는데, 내가 미국에 온 이후로 갑자기 Facebook을 통해 다시 연락이 닿았다. 한 명은 미국에서 한 명은 영국에서 둘 다 대학 전공과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공통점 때문일까? 수년만에 근황을 나누고 안부를 묻는데도 전혀 어색함이 없었고 지금도 잊을만하면 연락해서 신세한탄도 하고 소식도 나누고 있다.
대부분의 연극학교 수업은 두레문예관 연습실 혹은 인문극회 동아리방에서 이루어졌다. 90년대 초중반 학번부터 2000년도 초반 학번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인문극회 선배들이 강의를 진행하고 자신들의 경험을 나눠주었다. 대부분의 지원자들이 연극에 대한 지식이나 무대 경험이 없다 보니 발성, 대본 읽기, 스트레칭, 즉흥연기, 춤 등 다양한 세션을 통해 기본기를 익히고 즐거운 무대 경험을 하게 하는 것이 인문극회의 목표였던 것 같다. 세션들이 즐겁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기에 중도 낙오자는 한 명도 없었다.
모든 것이 처음이다 보니 그야말로 모든 것이 서툴렀다. 특히 사람들 앞에서 서있는 것, 숨 쉬는 것조차 힘들 수 있다는 것을 난생처음 알았을 때의 그 충격이란... 입시 면접 때도 언제나 말을 잘한다는 피드백을 받았고 경영학과 수업에서 조별 과제 발표를 할 때에도 남들 앞에 서는 게 신경 쓰였던 적은 별로 없었는데, 고요하고 밝은 조명 아래에서 어둠 속의 눈들을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호흡이 가빠지면서 숨쉬기 자체를 의식하게 되어버렸다. '... 숨을 어떤 식으로 들이쉬는 거더라?' 이런 상태에서 좋은 연기가 나올래야 나올 수가 없다.
6주의 연극학교는 순식간에 끝났다. 마지막 주의 최종 발표회도 재미있게 마쳤고, 녹두 거리 (신림동 고시촌)에서 뒤풀이도 신나는 분위기에서 이어졌다. 하지만 뭔가 모를 마음속의 응어리는 점점 커져갔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고 많은 것을 배우긴 했지만... 아직 시작도 안 한 것 같은데 벌써 끝이라고? 결국 옆자리에 앉은 극회 선배에게 말을 꺼냈다.
"선배, 저 인문극회 가입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