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연극의 준비는 어찌 보면 프로보다 더 복잡하다. 프로 극단의 경우 배우들이 이미 연기를 위한 몸과 경험을 모두 갖추었기에 예산과 공연장을 확보하면 그때부턴 공연 자체에만 신경 쓰면 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마추어 극단은 경험이 없거나 적은 배우들을 가지고 공연을 올려야 한다. 그렇기에 공연의 모든 것을 총괄하는 '기획', 배우들의 연기와 장면을 만드는 '연출'과 더불어 무대감독, 소위 '무감'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원래 무대감독이란 연출에 필요한 촬영, 무대장치, 소품 등을 준비하고 및 무대 점검을 하는 역할이라고 하는데, 인문극회나 중앙동아리 '총연극회' 모두 무감들은 연출과의 연습 전 1시간가량 배우들의 신체를 단련하고 긴장을 풀어주는 일을 담당했다. 몸이 충분히 예열이 되어야 제대로 된 연습이 되기에 무감 시간은 매우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이 시간은 '트레이닝'의 느낌이 강하기에 스트레칭, 춤, 체조, 즉흥연기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배우들이 자칫 지루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람마다 신체 조건과 생활 습관이 다르기에 어떤 사람은 자연스럽게 서 있어도 왠지 구부정해 보이며, 몸이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틀어져 있는 사람도 있고, 가만히 서있거나 앉아있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양 어깨가 앞으로 약간 굽어 있어서 무감 시간 내내 '어깨 뒤로 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무감 시간을 통하여 배우들의 몸을 꾸준히 단련하고 교정해 주어야 하는 이유이다. 또한 초보 배우들이 많은 공연의 경우 발성 교육에도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는데, 복압을 통해 소리를 밀어내지 못하고 목으로만 대사를 만드는 경우 객석 끝까지 소리가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흔히 "관객이 대사를 먹는다"라고 얘기한다). 그렇다고 무대에서 대사를 고함치면서 던질 수도 없는 노릇이니 좋든 싫듯 발성은 계속 연습할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대사를 객석의 뒷자리까지 전달할 수 있을 때까지...
'세 개의 해트 모자' 공연의 무감은 총연극회 출신의 97학번 H 선배였다. 해병대를 막 제대하고 온 그는 가만히 있을 때는 꽤나 접근하기 어려운 인상이었다. 마르고 길쭉한 키에 시커먼 피부, 스포츠형으로 짧게 깎은 머리까지 그야말로 엄격한 분위기를 온몸으로 풍겼으니까. 하지만 정작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하얀 이를 드러내는 푸근하고 순박한 미소가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무감 시간의 그는 그야말로 악마가 따로 없었다. 군인 정신으로 무장한 그의 무감 시간은 거의 군대의 PT 시간을 방불케 했는데, 거의 20년 가까이 지금도 이때 했던 최악의 하체 운동이 잊히지가 않는다. 일종의 Jump Lunge였는데, 머리에 두 손을 얹고 아래 그림과 같은 동작을 40회 반복해야 했다. 한번 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어지간한 남자들도 20번이 넘어가면 다리가 후들대기 시작한다. 배우들은 모두 힘들다고 난리였지만 H는 "해병대에서는 이거 다 해"라며 쿨하게 무시했다. 다른 운동들은 금방 적응했지만 이 것만은 결코 익숙해질 수가 없었고, 결국 무감 시간 후에는 남자고 여자고 모두 기진맥진해서 연습실 바닥에 널브러지는 것이 일상 다반사였다. 그 이후에도 다양한 공연을 하면서 많은 무감을 겪었지만 H의 하체운동만큼 힘든 코스는 없었기에, 공연 끝 뒤풀이에서 "사실 다 뻥이었어. 해병대에 그런 게 어딨냐?"며 웃던 그를 본 순간의 배신감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