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닥 토닥 마흔이 마흔에게6(저녁이 있는 삶을 꿈꾸며)

40대, 힘들고 지친 일상 속에서 하루 하루 버티는 우리를 위하여

by 김태윤

중학교 1학년 자녀를 둔 평범한 20년차 직장인 입니다. <작가는 처음이라>, <유대인 교육의 오래된 비밀>, <토닥 토닥 마흔이 마흔에게> 작가 입니다.


40대, X세대를 응원하는 <토닥 토닥 마흔이 마흔에게> 저자가 책의 원고를 브런치 가족분들께 시리즈로 공개합니다


코로나 판데믹 시대, 위기의 ‘마흔’, 이제 진짜 나를 만나야할 시간


<토닥 토닥 마흔이 마흔에게> 스토리6_저녁이 있는 삶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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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째 맞벌이를 하고 있는 아내와 하루는 초등학교 5학년인 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아직 공부 실력은 잘 모르겠지만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아이돌이 되겠다며 댄스를 따라하고, 우리 부부에게 많은 웃음을 주는 딸이 요즘 너무 예쁘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아내가 대뜸 “십 년 전에는 지금보다 백배 더 예뻤는데”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딸아이의 어렸을 때 얼굴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사회 초년병 시절 대기업에 다니던 나는 철저히 그 회사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매일 늦게 퇴근했고 회식도 잦았던 나는 딸아이가 자라나는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어린 딸아이를 낮에는 어머니가 봐 주시고, 저녁에는 아내가 독박육아를 했던 것이다. 지금도 예쁜데 서너 살 때는 백배 더 예뻤다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도 없거니와 하숙인처럼 살았던 그 시절이 갑자기 떠오르며 부인과 딸아이에 대한 미안함에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그때는 왜 그리도 회사에 목을 매었던지.

어느 기관에서 개최한 200여 명이 모인 학부모 강연에서 “가족이 저녁을 같이하는 분 손 들어 보세요?”라고 했더니 단 두 명이 손을 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부모들이 매일 저녁 야근 때문에 저녁을 밖에서 해결하고, 업무의 연속인 회식에 치여 아이들과 함께하지 못한다.


내 아이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알려면 대화가 우선인데 볼 수 없는 아빠, 사교육으로 내모는 엄마로 인해 대화는커녕 소통이 아예 단절되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일에 대한 시간의 투입이 곧 생산성의 증가로 이어졌던 산업화 시대에는 장시간 근무하는 것이 미덕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기존의 많은 일자리들을 AI에게 양보해야 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이러한 업무 행태가 효율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여전히 많은 조직의 책임자들의 사고방식은 산업화 시대에 머물러 있다.


여전히 우리의 상사들은 꼰대처럼 오랜 시간 일하는 사람을 ‘유능하다’고 여기고, 직원들이 밤늦게까지 사무실을 지키며 ‘열심히’ 일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면서도 대외적으로는 일하는 방식을 스마트(smart)하게 개선하겠다, 일과 삶의 균형(워라벨)을 찾겠다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어느 직장인은 초등학교 2학년인 자신의 자녀가 학교에서 ‘아빠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냐?’는 선생님 질문에 ‘회초리’라고 대답했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아이와 어울리기 위한 변화를 시작한 것은 물론이다.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이 가족그림을 그렸는데 아빠인 자신이 안보여서 아이에게 물어봤더니 따로 자전거 옆에 서 있는 아빠를 그려서 충격을 받고 심각하게 육아휴직을 고민하는 경우를 보았다.


그렇다. 과거 대한민국의 아빠들은 헛기침 하나로 집안을 다스렸다. 근엄하고 권위적인 가족공동체의 절대반지이자 아이들에게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전통적인 아버지상(像) 대신 인간적이고 친근한 아버지가 그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아이와 함께 놀아주고, 대화하고, 필요할 때 곁에 있어주는 친구 같은 아빠가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아버지상의 변화는 전 세계적인 트렌드라는 시각도 있다. 친구 같은 아빠라는 의미에서 ‘프렌디(Friendly Daddy의 줄임말)’가 유행하고 있다.


개인이 중요한 시대가 되면서 아버지 자체의 지위보다 어떤 아버지냐에 초점을 두게 됐고 잘해주고 친근한 ‘친빠’가 새로운 이상형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친구 같은 아빠가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 ‘엄한 가르침을 받고 자란 40대가 자녀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접근 방식을 취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무섭고 대하기 어려웠던 아버지 밑에서 느낀 어려움의 반작용이라는 것이다. 친구 같은 아빠의 증가에는 여성의 사회 진출 증가도 한몫했다.


일하는 여성들이 늘면서 더 이상 과거처럼 아빠들이 뒷방에서 헛기침만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예전에 TV 예능에 소개된 초등학교 2학년생의 <아빠는 왜?> 라는 동시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아빠는 왜?

-초등학교 2학년생 000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예뻐해 주어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냉장고나 강아지만도 못한 존재로서 아빠를 바라보는 동심에 이 시대 아버지들의 위기와 슬픈 자화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국내 대기업의 차장급 직원은 그동안 자녀 키를 길이가 아니라 너비로 쟀다고 한다. 아이가 항상 잠든 후에야 퇴근하기 때문에 자고 있는 사이 가로 너비로 키를 쟀다는 것이다.


그런 대한민국이 점차 변하고 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사회조사에서 일과 가정 중 무엇을 우선시하는지에 대한 설문에 일을 우선시한다는 비중이 43%로 나타났다. 2년 전 54%에 비해 10% 이상 하락했다.


2011년 해당 조사를 시작한 이래 50% 아래로 내려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반면 가정을 우선시한다는 비율은 14%, 둘 다 비슷하다는 43%로 각각 2년 전보다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맞벌이 · 육아 지원 등 일 · 가정 양립 제도가 강화하면서 의식 변화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 아빠들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하루 평균 6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이다. 전문가들은 일과 가정 양립이 정착되려면 부부가 집에 오래 머무는 사회적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래 전 논란을 일으킨 ‘9급 공무원 가는 서울대생’도 비슷한 맥락이다. ‘화려한 스펙’에도 하루 종일 업무와 상사에 치이고 일과 후엔 회식이나 야근에 치이는 ‘저녁이 없는 삶’을 벗어나려는 이가 점점 늘어날 거란 의미다.


“퇴근하겠습니다.” 이 한마디가 어려워 의미 없는 초과 근무를 하거나 성공과 돈을 추구하기보단 자신만의 행복을 찾겠다는 선택. 쉽지 않겠지만 당사자는 부럽다는 반응을 주위 친구들에게 많이 들었다고 한다.

40대인 우리들은 학교에서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것은 배웠는지 모르지만, 정작 브레이크 밟는 법을 배운 기억은 없는 것 같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도 나가는 일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을 뿐, 멈추고 그치는 일에 대해서는 그동안 거의 무관심했다.

초고속 산업화와 고도 성장기를 지나오면서 우리는 오로지 앞만 보고 전진해 왔다. 그동안 멈춤은 우리 시대에 대한 배신처럼 여겨졌다. 그래서인지 중년의 우리들은 멈출 수 없고 그칠 수 없는 삶을 살아왔다.


멈춰보고 그쳐본 경험이 없었기에 멈춤과 그침에 대한 두려움이 내재화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멈춘다는 것은 한강의 기적을 맞본 기성세대들에게는 패배와 동의어였다.


멈춤 없이 그 사람 잘나간다, 그 회사 잘나간다는 소리를 들어야 직성이 풀렸다. 왜냐하면 그것이 성공을 의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당신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라는 카피로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광고가 있다. 가족 시간 계산기로 앞으로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을 계산해 주는 내용이었다.


동영상은 서울의 한 건강검진센터 진료실에서 건강 검진 결과를 받기 위해 방문한 사람들이 뜻밖의 시한부 선고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9개월 남으셨습니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특별 제작된 검진결과표를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이내 생각에 잠기거나 먹먹해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들이 선고받은 남은 시간은 평균 수명의 남은 시간에서 일하는 시간과 자는 시간, TV 및 스마트폰 보는 시간, 출근 준비 시간과 화장실 이용 시간 등을 뺀 것으로, 온전히 가족과 함께할 시간을 뜻한다.


동영상에서 남은 시간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된 사람들은 회한에 잠기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여보, 나 오늘도 늦어”, “아빠 오늘 피곤해”, “엄마, 일이 있어서 못 내려가요” 등의 말로 가족과 함께할 시간을 미루는 현실에 대해 이 영상은 조금 색다른 방식으로 가족의 의미를 돌아볼 계기를 만들었다.


제작사 관계자는 “대다수 사람들이 일상에 쫓겨 가족과의 시간을 미루고 ‘다음에 잘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는데 그 ‘다음’이라는 순간이 얼마나 짧은지 깨달았으면 한다”며 “많은 사람들이 영상을 보고 소중한 가족과의 일상에 조금이라도 변화가 일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가족 시간 계산기를 통해 삶의 우선순위에 대한 고민을 해 보았다면 앞으로 어떤 부모가 될 것인지 액션플랜(action plan)을 짜보는 것은 어떨까? 가족과 함께하는 가치 있는 시간이야말로 자신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다.


가령 ‘일주일에 한 번은 반드시 가족과 함께 식사하기’, ‘배우자와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데이트하기’, ‘배우자와 마주앉아 한 시간 이상 대화하기’, ‘배우자(자녀)와 함께 여행하기‘ 등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시간을 의식적으로 마련해 보자.


가족과 함께하는 가치 있는 삶을 위한 징검다리를 하나씩 하나씩 놓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많은 해를 같이 살아왔어도 배우자와 자녀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며 살아왔다면 우리는 오늘이라도 반성해야 한다.


예로부터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결국 산다는 것은 저마다 삶의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돈으로, 권력으로, 지식으로, 재주로 저마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 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물처럼 흐르고 바람처럼 사라지며 모래처럼 흩어지기 쉽다.


그러나 내 가족을 포함해 주변 사람들을 위한 ‘행복한 추억의 흔적’은 문신처럼 짙게 새겨져 누군가의 가슴에 남고 영혼에 담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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