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힘들고 지친 일상 속에서 하루 하루 버티는 우리를 위하여
중학교 1학년 자녀를 둔 평범한 20년차 직장인 입니다. <작가는 처음이라>, <유대인 교육의 오래된 비밀>, <토닥 토닥 마흔이 마흔에게> 작가 입니다.
40대, X세대를 응원하는 <토닥 토닥 마흔이 마흔에게> 저자가 책의 원고를 브런치 가족분들께 시리즈로 공개합니다
코로나 판데믹 시대, 위기의 ‘마흔’, 이제 진짜 나를 만나야할 시간
<토닥 토닥 마흔이 마흔에게> 스토리7_가족과 함께하는 따뜻한 동행
2001년 사회생활에 첫 발을 내딛은 나는 기업에 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CEO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각오로 잭 웰치의《끝없는 도전과 용기》라는 책을 구입했고, 당시 세계 최고 기업인 GE를 맡은 최고경영자의 모습을 보며 나의 미래를 꿈꾸었다.
그러나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CEO가 되기란, 아니 임원까지 되기도 하늘의 별따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지금 생각해 보면 워낙 두꺼운 책이라 다 읽지도 못했던 것 같다.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2004년 결혼한 우리 부부는 집을 사기 위해 자동차 없이 장기간 뚜벅이의 삶을 살았다. 16평 전세 아파트로 시작해 25평 아파트로 오는데 10년이 꼬박 걸렸으니, 일 년마다 1평씩 늘어났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바빠서 주말에도 회사에 자주 나가곤 했는데, 차가 없어 임신한 아내 혼자 할인마트에서 구입한 크리스마스트리를 끌고 장시간 걸어온 이야기는 지금도 나를 미안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다 어느 날 전셋집 주인이 전세 값이 오른 만큼 월세를 받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기간은 버텼으나 2년마다 가파르게 오르는 월세에 혀를 내두르며, 은행 대출을 통해 겨우 내 집을 장만하게 되었다.
없는 살림에 은행과 손잡고 집을 사면서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계기가 되었다. 결혼 전에 신용카드도 없었다는 아내를 설득해 큰 금액의 대출을 받고 집을 산다고 하니 아내는 울고불고 하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 과정을 통해 배운 점은 내 몸에 주치의가 필요하듯이 내 가족만을 위한 부동산 주치의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때 만난 부동산 사장님에게 좋은 정보를 많이 들을 수 있었고, 지금도 지나가다 들려 음료수를 건넬 만큼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내 집 마련’이 대한민국 고유명사가 된 지는 꽤 오래 되었다. 1960년대 불어 닥친 개발 붐이 시작이었다. 1970년대엔 도시 빈민이 급증했는데, 특히 서울이 심했다. 집 없는 설움을 톡톡히 맛본 서울 서민의 염원 1순위가 바로 내 집 마련이었다.
1977년 당시 상황을 한 신문 사설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남의 집 문간방에서 집주인의 눈치를 살피며, 우는 아기의 입을 틀어막아야 하는 어미의 눈에는 한 맺힌 이슬이 핀다.
예나 지금이나 도시 서민의 첫째 소원은 제 땅에 제 집 짓고 사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의 부모님도 그 당시 집을 가지게 된 계기가 아들만 셋이었던 우리 집에서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아서 집 주인의 괄시와 서러움에 악착같이 돈을 모아 집을 장만하게 되었다고 한다.
1980년대 들어서자 내 집 마련은 국민적 명제가 됐다. 1980년엔 서울 시민 45%만이 자기 집에서 살았다. 언론은 ‘멀어져 가는 내 집 마련의 꿈’을 단골 메뉴로 다루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아직까지도 ‘대한민국 국민이 제일 부러워하는 동물은 달팽이’라는 풍자가 유행할까. 달팽이는 날 때부터 자기 집을 갖고 태어난다는 이유 때문이다.
내 집 마련은 현재까지도 국민 염원 1순위 자리를 지키고 있고, 웬만한 인기 재테크 책엔 내 집 마련 비법이 빠지지 않고 실려 있다.
젊은 시절에는 호기를 부리며 기업의 별이 되고 싶었으나, 40대에 접어들고 아이가 자라면서 조금 더 큰 아파트에 살고 싶다는 꿈을 가진 평범한 가장이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의 40대를 규정하는 두 단어는 ‘부담’과 ‘불안’이다. 주택비 부담에 자녀 학비와 사교육비 부담으로 허리가 휜다. 집값 등락으로 가장 고통을 겪는 것도 역시 40대다.
‘하우스 푸어’의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돼 있다. 노후 준비도 변변히 해놓은 게 없는데 삼팔선, 사오정 소리를 들으며 언제 퇴출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의 40대는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양극화의 문제를 피부로 느끼고 있는 세대다.
나도 지금 돌이켜보면 집이 생기기 전에는 경제적 압박감으로 아내와 많이 다투었던 기억이 난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내가 집이 없고 미래가 불확실했을 때 서로 민감해져서 사소한 일에도 상처 주는 말을 했던 것이다. 나는 부동산 정책 전문가가 아니기에 내 집 마련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할 입장이 아니다.
하지만 중년의 우리들에게 따뜻한 보금자리가 생겨 웃음꽃이 피는 가정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러나 내 집 마련이 당장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가정의 화목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영원한 청년 고(故) 최인호 작가는 1975년부터 2010년까지 25년간 월간지에 자전적 수필 <가족>을 연재했다. 가족에 대한 그의 애틋한 사랑은 사후에 《나의 딸의 딸》로도 발간되었다.
그가 부인과 나눈 마지막 말은 “사랑해요”, “여보, 나도 사랑해”였다고 한다.
황혼이혼과 졸혼이 유행하는 세상이지만, 그의 마지막 말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 최인호 선생이 세상에 던지고 간 마지막 선물이다.
가족을 의미하는 영어 ‘FAMILY’는 ‘Father and Mother, I love You!’의 첫 글자를 딴 것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가족은 사랑의 다른 표현이다.
그렇다. 내가 현재 집이 있건 없건, 몇 평에 살고 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나와 함께 따뜻한 동행을 할 수 있는 FAMILY가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