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보면 희망에 닿아있을지도
"Akenda kazini"
오늘도 아이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아빠는 일하러 가셨어요."
(아이들의 대답에 의하면) 아이들의 아버지는 매일같이 불철주야 일을 하러 다닌다.
나는 정말 궁금했다.
그렇게 성실히 일을 하는데 왜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자식이 6명이나 되니까 감당이 되지 않았나?
그런데 알고 보니 아이들의 아버지는 일해서 번 돈 대부분을 술을 사서 마시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그나마 감사한 것은 가족들 하루 치의 식량은 남겨둔다는 거.
아이들에게 노동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거.
술에 취해 가족들을 때리거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 않는다는 거.
아이들이 교회에 다니는 것을 용납한다는 거.
과연 알코올 중독자가 맞아? 할 만큼 온순해 보이지만, 매일같이 술을 마시는 그는 알코올중독자였다.
물에 젖은 솜처럼 온 힘이 다 빠져서 생의 의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기력한 알코올중독자.
그가 아이들에게 물러줄 것이라고는 가난과 문맹과 무력과 절망뿐인 것 같았다.
그의 큰 딸인 미혼모 페니나는 18살이 될 때까지 연필을 잡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16살 제니타 역시 마찬가지였고 12살 아주아이 10살 조지라고 다르지 않았다.
6살 소피타와 3살 조셉과 돌이 되지 않은 페니나의 딸 러브니스와 그리고 곧 태어날 엄마 뱃속의 아기 역시 언니오빠 이모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지도 모른다.
선물로 받은 공책과 연필에 아이들은 마치 값진 금은보화를 받은 듯 어쩔 줄을 몰라했다.
‘이거 정말 우리 주는 거예요?’ 몇 번이나 물었다.
나도 몇 번이나 대답해 주었다.
‘너의 것이 맞아. 다 쓰게 되면 또 사줄게. 그러니 열심히 공부해야 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적어도 아이들이 문맹만큼은 유산으로 물려받지 않기를 바랬던 나는 잔지바르에 있는 동안 아이들이 문맹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큰 아이들 4명만이라도 글을 알게 된다면 동생들에게 글을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이다.
엄마가 딸을 교육시킬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읽을 수 있다면 세상은 좀 달라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희망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와 아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보름.
주일을 제외한 일주일에 6일을 수업을 할 계획이었다.
나의 목표는 25개의 스와힐리어 알파벳을 가르쳐서 간단한 언어를 쓰고 읽게 하는 거
(간단한 언어라 함은 내가 알고 있는 것 정도였다)
그런데 문득 한 달 넘게 가르쳤지만 1도 알지 못했던 킬리만자로 유치원 아이들 생각에 불안해졌다.
과연. 보름동안 해낼 수 있을까?
결론은 해냈다!!!
지난 열흘동안 아이들은 한 번도 약속 시간을 어겨본 적이 없었고 오히려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아이들은 공책과 연필 한 자루 들고 어린 동생들을 걸리고 딸을 업고 아프리카의 무더위와 건조한 모랫바람을 해치고 공부하러 왔다.
수업시간에는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지 눈에서 레이저 광선이라도 나올 기세였다.
숙제도 빠짐없이 다해왔고 오히려 더 해오는 날도 있었다.
그런 아이들의 열정과 열심 덕에 아이들은 일주일 만에 알파벳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아이들을 가르쳐봤지만 이렇게 공부에 집중하고 열심을 내는 아이들은 처음이었다.
겨우 알파벳을 알게 된 것뿐인데 아이들은 마치 대학이라도 졸업한 것처럼 자신감이 충만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조지는 군인이, 아주와이는 의사가, 제니타는 간호사가 되고 싶어 했고 미혼엄마 페니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은 책이 읽고 싶다고 했다.
책이라니....
평생 문맹으로 살지도 몰랐을 아이들의 소망을 듣게 된 나는 먹먹해진 마음으로 눈물을 삼켜야 했다.
꿈이 생긴 아이들,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아이들을 보면서 기뻐하고 좋아해야 하는데 문득 아이들에게 생긴 희망이 고문이 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다.
이다음은 어떡해야 하나?라는 막막함에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나는 곧 떠나야 하는데.
오히려 아이들에게 절망만 안겨주는 것은 아닌지.
어쩌자고 나는 다음에 올때 책을 사갖고 올께 라는 약속을 하고 있는 것인지
어쩌자고 나는 대책 없이 아이들의 인생에 걸어 들어가 희망을 갖게 했을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복잡한 마음이었다.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아주아이가 아빠의 쪽지를 건넨다.
아이들의 공책을 찢어 편지지를 대신한 아이들 아빠의 편지는 영어인지 스와힐리어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글이 쓰여 있어서 읽을 수가 없었다.
내가 겨우 읽을 수 있는 단어는 땡큐와 호프 정도였다.
문맹인줄 알았던 아이들의 아버지는 문맹도 아니었고 간단한 영어도 알고 있었다.
어쩌면 아이들을 문맹으로 살게 하면서 자신이 글을 알고 있다는 것이 미안해서 문맹처럼 살았던 것일까?
그랬던 그가 꿈을 꾸기 시작한 아이들을 통해 그 역시 희망이라는 것을 갖게 되었을까?
나도 희망을 가져보기로 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자.
하지만 이제 겨우 알파벳을 읽을 수 있는 10살이 훌쩍 넘은 아이들을 받아줄 학교는 없었다.
그렇다고 한국처럼 검정고시 제도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일단은 주변 선교사님들에게 아이들의 가정교사를 구해달라고 부탁을 하고 수소문했다.
감사하게 목회자의 사모를 구했다.
대학까지 졸업한 엘리트였고 믿을만했다.
그녀에게 당분간은 아이들이 능숙하게 읽고 쓸 수 있도록 글과 간단한 수학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고 나는 아이들을 받아줄 만한 학교와 아이들의 후원자를 알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아이들의 희망에 나의 마음을 보태기로 했다.
후원자가 생기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지만 마음들이 더 보태졌음 했다.
그런 나의 희망에 페니나 가족의 소식을 전해 들은 후배의 동생이 가정교사의 월급을 후원하고 싶다며 희망을 보탰다.
이렇게 보태고 보태고 보태다 보면 희망을 닮아가고 있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의 씨앗을 심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