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뭐가 문제인 거야?
잔지바르에서 살고 있는 선교사님이 도움을 요청했다.
“와서 우리 좀 도와줘”
"무.... 무엇을요?"
"그냥 아무꺼나 다. 그러니까 일단 와. 급해"
그렇게 하여 가게 된 잔지바르.
제대로 터지지 않은 인터넷으로 잔지바르에 대한 정보를 찾아봤다.
유명한 여행 유투버가 세계 최고의 휴양지로 꼽았다는 잔지바르.
가히 이루 셀 수도 없는 잔지바르 사진을 보면서 나의 마음은 두근두근.
사진 속 잔지바르는 아름다웠고 사람들은 한결같이 행복한 표정으로 온 힘을 다해 누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표현하고 있었다.
나도 사진 속의 주인공처럼 누리고 싶은 마음에 어쩌면 하루 이틀 정도는 휴양지에서 시간을 보내도 되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하고 싶었지만 도움이 필요한 가난한 이들을 만나서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컸기에 휴양에 대한 기대는 접었다.
킬리만자로 공항에서 비행기로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7시간 만에 도착했다.
잔지바르가 아무리 유명한 휴양지라도 이곳은 아프리카라는 것을 상기라도 시켜주듯 6시간이나 연착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잔지바르에 도착도 하기 전에 기다림에 지친 나를 마중 나온 선교사님은 아프리카에서 수고했다며 내일부터 신나게 놀자고 하신다.
"도와 달라면서요?"
"그러니까 자기가 푹 쉬고 충전하는 것도 우리를 돕는 거야. "
감사하게도 선교사님은 나에게 휴가를 주기 위해 초대를 하신 것이다.
'쉬러 오라' 고 하면 머뭇거릴 게 뻔할 테니까 도와 달라고 하셨다고.
그렇게 하여 "한국에서 탄자니아까지 왔는데 잔지바르 관광을 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선교사님의 인도로 '잔지바르 여행'이라는 기대하지 않은 선물을 받게 되었다.
잔지바르는 인도양에 자리 잡은 섬으로 탄자니아의 자치령이며 탄자니아라는 국가명이 탕가티카와 잔지바르를 합쳐서 붙인 만큼 자치권이 강하단다.
그래서일까 같은 탄자니아인데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일단 무슬림의 영향을 더 많이 받고 있는 것 같았다.
거의 90%의 여자들이 히잡을 쓰고 있으며 그중에 대다수는 눈만 보이는 니캅을 착용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관광지이다 보니 생활이 편리하긴 했다.
인터넷도 빵빵 터지고 교통도 편하고(운전사 한 명 잘 사귀어두면 개인 차량처럼 이용할 수도 있다!)
마트와 쇼핑몰도 있었고 무엇보다 다양한 먹을 것들이 있었다 (생선이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선정된 스톤타운은 영국. 포르투갈. 인도. 페르시아 등의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보니 한국사람들이 동남아 여행 가듯 유럽인들이 많이 찾는다.
우리 동네에서는 나와 선교사님 내외분만 외국인이었는데 이곳은 외국인을 더 많이 볼 수 있고 특히 한국인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실링으로 환전하지 못한 한국신혼부부에게 환전을 해주기도)
관광지를 다니다 보니 당연히 모든 게 풍성했고 화려했지만 다양한 문화의 영향을 받은 이 풍요로움 뒤에는 슬픈 역사가 있었다.
수백 년 이상 이곳은 동아프리카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다.
잔지바르를 지배했던 술탄은 동아프리카 잡아온 사람들을 노예 시장에 팔았다.
스톤타운의 대표적인 유적지 성공회 성당은 노예들의 박물관이기도 하다.
노예들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1998년 만들어진 조형을 보면 그때의 처참함이 느껴진다.
노예들은 쉽게 도망가지 못하도록 언어가 다른 부족으로 함께 묶었는데 그들을 감시하는 사람들도 아프리카 사람들이었다
강한 부족이 주변의 부족을 공격해서 노예로 판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15세기 19세기 중반부터 아프리카에서 잡혀간 노예는 최소 천만명이라고 한다.
노예시장에 세워진 성공회 대성당. 노예무역금지운동의 상징적인 장소이다.
1857년 아프리카 노예의 실상을 영국에 알린 데이비드 리빙스턴 선교사의 노력으로 영국의 여론이 움직였고 노예무역은 막을 내렸으며 성당은 리빙스턴에 영감을 받아 지어졌다고 한다.
호텔이 된 프레디머큐리의 집.
잔지바르는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고.
영국의 록밴드에 관심이 있고 그를 기념하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았는데, 막상 잔지바르에서는 인지도가 낮다고 한다.
잔지바르는 인도양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상 동아프리카 해상무역의 중심지였는데 대표적인 거래품목은 향신료다. 비옥한 토양과 다양한 열대작물이 있으며 세계 최대 정향 생산국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거리가 온통 향신료 냄새다.
선교사님의 배려로 능귀. 콴다. 파제 해변을 비롯하여 현지인들만 안다는 알려지지 않은 구석 관광지까지 관광했는데, 그래도 내가 좋아했던 장소는 스톤타운과 다라자니 시장이었다.
어딜 가고 싶냐는 선교사님의 질문에 한결같이 스톤타운요. 다라자니 시장 갈 일 없어요?라고 대답했을 정도로 나를 사로잡은 곳이다.
같은 재래시장인데 공황까지 올 정도로 거대한 혼잡이었던 미툼바와는 달랐다.
무질서하긴 했지만 나름의 규칙이 있었고 다양한 물건들이 주는 신비한 매력들이 있었다.
시장을 거닐다가 만나는 그들만이 만들 수 있는 낯선 풍경 안으로 들어가 함께 풍경의 일부가 되어보는 경험은 설레는 추억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여행의 추억을 만들어가며 웃고 즐겁고 행복한 마음이 들때마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마다, 언제나 킬리만자로 아이들이 마음에 툭툭 걸렸다.
아이들과 함께 먹으면 좋을 텐데. 아이들과 같이 왔으면 좋을 텐데.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그렇게 툭툭 아이들이 걸릴 때마다 미안하고 내가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에 마음이 쪼그라들 때도 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약속이나 한 듯 만나는 현지인들이 인사를 건넨다.
[카리부 잔지바르. 하쿠나마타타] Karibu Zanzibar. Hakunamatata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듣는 소리다.
하쿠나마타타. Hakunamatata -아무 문제없어요.
관광객에게 '하쿠나마타타'를 외치지 않으면 감옥에라도 보내는 법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들은 관광객과 스쳐지날때마다 '하쿠나마타타'라는 말을 주문처럼 건넨다.
탄자니아를 상징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우리 동네에서는 함나시다라고 한다)
나는 언제나 묻고 싶었다.
"진짜요? 진짜 문제가 없어요?"
내 눈에는 모든 것이 문제투성이처럼 보였는데 말이다.
선교사님이 일주일에 두 번씩 영어를 가르쳐주는 이웃 아이의 집을 방문했다.
여느 탄자니아 현지인의 집이었지만 달랐던 것은 온갖 채소와 야채와 과일나무들로 집안이 푸르렀다.
가족이 얼마나 부지런한지 보여주었다.
킬레오에서는 보기 드물게 성실한 아버지가 있는 가정이었다.
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밭을 일구고 농사를 지으면서 미혼모인 큰 딸이 낳은 아이까지 12명의 가족들을 부양하고 있었다.
그 역시 나를 보자 '하쿠나마타타' 라고 한다.
다 쓰러져가는 집에 살면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줄줄이 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과 병에 걸린 노모와 6살 아들을 홀로 키우고 있는 미혼모 딸까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의 상황에 놓여있는 것 같은데 그는 하쿠나마타타이다.
나는 그동안 묻고 싶었던 질문을 했다.
"진짜 문제가 없나요?"
그는 어깨를 으쓱하면 되물었다.
"뭐가 문제겠어요?"
"........ "
"우리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이 있는데. 아무 문제 없어요"
그의 대답에 눈물이 나왔다.
그래. 뭐가 문제겠는가? 나에게는 나의 사랑이 필요한 이들이 있고, 나를 사랑해 주는 이들이 있는데.
그리고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이 있는데.
그의 환한 미소에 나도 모르게 나도 '하쿠나마타타' 라며 웃는다.
각자의 인생이 있는 거다. 그러니 마음에 걸어놓지 말자. 뭐가 걱정이야. 하쿠나마타타
내가 걱정을 하고 마음에 걸어놓는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하쿠나마타타
지금은 내가 누릴 시간. 문제없을 테니 하쿠나마타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