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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의꽃 Dec 26. 2024

24. Happy Birthday to You

너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단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일 축하카드를 받아본 건 서른세 번째 생일. 

여섯 살 딸아이에게서였다. 

아이는 여섯 살이 쓴 것이라고 믿기지 않는 또박또박한  글씨로 

‘엄마 생일축하해요. 사랑해요. 오래오래 사세요.’ 적힌 카드와 함께 어린이 집에서 받은 간식인 딸기우유를 생일선물이라며 건넸다.      


나를 낳아준 부모에게 서가 아닌 내가 낳은 아이에게서 삼십삼 년 만에 처음으로 받아본 생일카드와 생일선물을 통해 처음으로 내 생일이 의미 있는 날이라는 것을 개미눈곱만큼 깨달을 수 있었다. 

살자니 고생이요 죽자니 청춘이었던 못 죽어 사는 인생이었는데 처음으로 오래오래 살고 싶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생일을 있게 한 나의 부모님은 나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엔 두 분의 인생이 너무 고달팠고 

어쩌면 나의 생일을 저주하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나의 생일 즈음에 사건사고를 일으켰다. 

나의 생일은 언제나 악몽이었다.      


선택적 왕따 시절을 보냈던 학창 시절에는 생일을 축하해 주는 친구도 없었고, 나 역시 그 누구의 생일도 축하해주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생일파티나 생일선물 생일축하 따위는 내 인생에 없었다.      


내가 전심으로 생일을 챙겨주고 축하해 주는 존재는 아이가 처음이었다. 

부모에게 생일을 축하받지 못하는 인생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알기에 나는 아이의 생일만큼은 차고 넘치도록 축하해주고 싶었다. 

나뿐만 아니라 아이의 친구들과 아이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아이의 생일을 축하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고 옆구리 찔러 절 받는 축하여도 아이가 축하받게 해 주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여섯 살이 되었을 때 아이는 ‘엄마는 생일이 언제야? 엄마도 생일파티 해야지’ 하면서 나의 생일을 챙겨준 것이었다.      


오랫동안 나의 생일은 축하받지 못한 날이었다.

내가 태어난 것이 기쁘고 의미 있는 일인가? 나 스스로 의문이 들 때가 있었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난 인생. 고달픔이 더 컸었다.      


하지만 아이의 전도로 하나님을 알게 되면서 예수님의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고 나의 생일을 물어봐주는 누군가들과 관계를 갖게 되면서 생일은 특별한 한 날이 되어갔다.       


그리고 나의 생일을 축하해 주는 이들을 통해 내가 태어남이 기쁘고 가치가 있는 이유가 서로의 생을 함께 축하하고 축복하는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혼자였을 때는 몰랐는데 아이가 생기고 아이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 곁에 내가 존재할 때 나의 생은 더 빛나고 가치 있었다. 

탄자니아에서 생일을 맞이했다. 

전날은 선교사님의 생일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생일선물 뭐 받고 싶어요?’ 물었고 받고 싶은 생일선물이 같음을 알게 되었다. 

‘벼룩 없는 곳에서 푹 잠들고 싶은 생일밤’ 

우린 서로에게 그 밤을 선물하기로 하고 1박 2일 아루샤 호텔에서 쉬기로 했다.      


생일날 호캉스라니. 

인스타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을 내가 연출하고 있다니.      

호텔직원들이 축하노래도 불러주고 근사한 생일상도 받았다.      


6살 아이에게 생일카드를 받았을 때 그때가 최고의 생일인 줄 알았는데

해마다 나의 생일은 최고의 생일이었다. 

올해 역시 최고의 생일이었다.

최고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서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받은 선물을 아이들과도 함께 나누고 싶었다. 

생일을 맞이한 중학교 인형극 아이들과 유치원 아이들의 생일잔치를 해주었다. 

생일케이크를 사주고 싶었는데 파는 곳이 없었고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우리 동네 전기는 오븐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래도 아쉬운 대로 팬케이크와 모닝빵으로 생일케이크를 대신하고 토끼모양 머리띠도 씌워주고 친구들에게 생일 축하노래도 가르쳐주면서 함께 축하해주게 하고  성심성의껏 생일선물과 생일 카드도 줬는데 

난생처음 해보는 생일파티에 아이들은 어리둥절. 

생일초를 부는 것도, 축하를 받는 것도 어색한 표정들이다.  

마치 오래전 서른이 훌쩍 넘어 생일축하를 받아본 나의 모습처럼 말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 역시 오늘의 기억이 아이들 생에 따뜻한 온기가 되고 그 온기가 생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작은 빛하나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신들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을. 

자신들을 만드신 하나님의 목적은 축복이라는 것을.  

자신들 존재 자체가 기쁨이라는 것을. 

아이들이 알아갔으면 좋겠다. 

생일 축하해. 얘들아. 

너희들이 태어나서 세상은 조금 더 반짝거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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