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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애도

열흘 휴재합니다

by 샤론의꽃

교회 성도인 루시의 오빠가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다.


죽.었.다라는 단어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죽었다고 써도 될까?

세상과 이별하였다고 해야 하나, 소천했다고 해야 하나.

나보다 나이가 어린 그에게 돌아가셨다고 하기에도 뭐 하고

회에 다니는 여동생 루시를 박해했던 무슬림이었기에 천국에 입성했다는 말은 할 수가 없으니 죽.었.다 라는 말이 가장 적합한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죽. 었. 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루시만 제외하고는 가족 모두가 무슬림이라서 기독교인인 우리는 조문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교회 성도들과 함께 루시를 위로하기 위해 조문을 가기로 했다.

교인들은 자신들의 하루 일당을 부의금으로 내놓았고

나 역시 동참했다.

초상집인 루시의 집으로 간 우리는 그저 가만히 앉아 있다가만 왔다.

하나뿐인 가족을 잃은 루시는 장례준비로 정신없이 바빴고 우리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우리가 뭐를 좀 도울까 했지만 무슬림인 가족들은 우리를 경계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끼리 떨어져 앉아서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루시를 안아주고 폴레 사나 만 읊조리다 왔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수다를 떨었다.


그날밤.

나는 루시를 마음껏 애도해주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나에게 가장 충격적인 죽음은 세월호였다.

공황상태였다.

어떻게. 이런 죽음이 있을 수가 있을까?

하지만 더 충격적인 것은 세월호의 죽음에 단 한마디의 애도도 하지 않고 부활을 기뻐하는 교인들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사랑했던 교회. 존경했던 목사님에 대한 회의가 들었고 그동안 믿고 의지했던 세상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태원 때도 마찬가지였다.

애도하지 않은 교회에 나는 화가 났다.

"그러게 왜 그런델 가서 개죽음을 당하냐? 안 그래요?"라는 권사에게 "당신 아들이 죽었어도 이딴 말을 할 수 있겠냐?" 하면서 대판 싸웠던 적도 있었다.


그 후 나는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자로 살기로 했다.

애도는 인간이 인간에게 표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배려이자 마음이었다.


그렇게 결심했는데 루시의 슬픔에 대해서는 충분한 애도를 해주지 않은 것이었다.

그동안 루시가 오빠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지 봐왔기 때문이었는지도.

하지만 그럼에도 애도를 했었야 했다.

또다시 한국은 애도의 시간이다.

계엄과 탄핵 때도 욕을 디립다 하고 안타까워하면서도 나는 글을 썼다.

나의 일상은 달라진 게 없었다.

죽은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그런데 181명 중 179명이 사망한 사고 앞에 나의 일상이 평소 같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기에 일주일에 3회씩 꼬박꼬박 연재했던 글들을 잠시 휴재하고 애도의 시간을 가질까 한다.



그렇게 많은 독자가 있는 것도 찾는 사람이 많은 브런치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관심을 갖고 라이크를 눌러주시고 공감을 해주신 작가님들이 계시기에 이렇게라도 휴재의 이유를 남깁니다.

작가님들의 공감 덕분에 힘내서 쓸 수 있었어요.


정말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2024년의 마지막 날.

새해 복 많이 받기엔 너무 염치없고 아픈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우리 2025년 잘 살아보아요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여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있는 체 하지 말라 (로마서 12: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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