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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스한 골방 Jan 26. 2024

내 마음은 얼마나 튼튼한걸까

방어기제의 성숙도

  지금까지 정신분석의 지형학적 모델과 구조적 모델을 함께 둘러보았습니다. 프로이트가 제시한 기본 개념들과 조금은 친해졌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는 프로이트가 이야기했던 건강한 마음상태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그는 내적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라고 표현했어요. 내적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이드와 초자아 간의 갈등이 잠잠해져야 하는데,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성능이 좋은 방어기제가 필요합니다.


  프로이트의 자아 심리학에서는 방어기제가 성숙한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자아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건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방어기제가 성숙한 것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해요. 지금까지 알려진 방어기제들의 종류는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서 모두 설명드리면 이야기가 지나치게 늘어질 것 같아, 여기서는 자주 사용되거나 잘 알려진 방어기제들 위주로 소개드리려고 해요. 래에 8개의 방어기제각 방어기제에 해당하는 예시 나열해 보았습니다. 각 예시 끝의 괄호 안에 있는 단어가 해당되는 방어기제의 이름에요.




성실하게 일을 해오던 사람 A가 있습니다. 어느 날 A가 그의 상급자인 B에게 다소 빠듯한 일정으로 작성한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나중에 B가 '보고서에 허점이 많다'며 A를 질책합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A는 B에게 화가 나기 시작합니다. 앞으로 A는 어떻게 대처할까요?

1. B에게 질책받았던 현실을 부정하며 스스로 분노를 느끼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부정)

2. 자신의 보고서가 문제가 아니라 B의 무능력이 문제라며 B에게 깊은 분노를 느낍니다. (투사)

3. 평소에도 부정적인 감정에 무딘 편이었던 A는, 이번 일에서도 B에게 화를 느끼지 않습니다. (억압)
4. 마음속으로는 B에게 화가 났지만, 그래도 일단 B에게 웃으면서 고마움을 표현합니다. (반동형성)
5. '이번에는 보고서를 쓸 시간이 부족했기에 어쩔 수 없었어'라고 생각하자, 상처받은 자존심이 조금은 회복되었고 B를 향한 분노도 풀립니다. (합리화)

6. B에게 화가 나긴 하지만, B가 피드백한 내용들도 의미 있었기에 의식적으로 화를 눌러봅니다. (억제)
7. 퇴근 후 가족들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오늘 봤던 B의 모습은 마치 오랑우탄 같았어'라고 표현하며 B에게 질책받았던 일을 웃어넘깁니다. (유머)
8. 퇴근 후에 테니스장으로 가서 B를 때리고 싶은 마음으로 테니스 라켓을 힘껏 휘두르자 화가 풀립니다. (승화)


  위에서 보여드린 8개의 방어기제들을 성숙도에 따라서 4개로 분류하라고 하면, 여러분은 어떻게 나누실 것 같으신가요? 조지 베일런트라는 정신과 의사가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생의 삶을 72년 동안 관찰해서 『행복의 조건』이라는 책을 썼던 사람이기도 한 그는 방어기제를 성숙도에 따라서 4가지 그룹으로 분류했습니다. 이 분류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는데요, 하나씩 살펴보도록 할게요.


병리적인 방어기제 : 부정 (1번)
미성숙한 방어기제 : 투사 (2번)
신경증적 방어기제 : 억압, 반동형성, 합리화 (3번~5번)
성숙한 방어기제 : 억제, 유머, 승화 (6번~8번)




<병리적인 방어기제 : 부정>


  병리적인 방어기제는 병들어 있는 가장 취약한 방어기제입니다. 병리적이라는 단어 자체가 병적인 상태라는 것을 뜻하거든요. 여기에 속해있는 방어기제에는 부정이 있습니다. 부정(denial)은 본인에게 닥쳐온 위험한 현실을 애써 외면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보호하는 방어기제에요. 부정을 설명하기 위해 자주 설명되는 2개의 예시가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암을 진단받을 때와, 금슬이 좋았던 배우자와 갑작스럽게 사별할 때입니다. 평소에 건강한 방어기제를 사용해 오던 사람도 이렇게 힘든 순간들을 맞이하면 잠시나마 현실부정을 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에 찾아온 급한 불을 끄기 위해서 병리적인 방어기제일지라도 임시로 부정의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거죠. 이처럼 부정을 잠깐 사용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암을 진단받고도 계속 현실을 외면하며 치료를 전혀 받지 않고 있다면, 현실을 부정하는 동안에 우리의 건강이 점차 악화될 수밖에 없겠죠. 이처럼 병리적인 방어기제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우리의 삶에 상당한 위협이 올 수 있기에 반드시 조심해야 합니다.




<미성숙한 방어기제 : 투사>


  미성숙한 방어기제는 병적인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이름이 말해주듯이 성숙하지는 못한 방어기제입니다. 이곳에 속한 방어기제로는 투사가 있습니다. 투사(projection) 프로젝터(projector)와 하는 일이 비슷해요. 프로젝터가 컴퓨터에 나와야 할 화면을 다른 공간에 넘겨주듯, 투사도 한 사람의 부정적인 요소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깁니다. 이전에 A씨가 사용했던 투사를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투사 전의 현실 : A의 보고서에 허점이 많았기 때문에 B에게 질책받았습니다. (무능력한 사람 = A)

투사 후 A의 생각 : B의 무능력이 문제라며 B에게 깊은 분노를 느낍니다. (무능력한 사람 = B)


  현실에서는 A가 보고서를 부족하게 작성해서 B가 질책한 것이였는데, 투사를 했더니 갑자기 A가 아닌 B가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되었어요.  A가 무능력한 사람의 역할을 B에게 떠넘긴 셈이에요. 그래서 투사를 남탓의 방어기제라고도 합니다. 이처럼 투사를 하는 사람은 좋은 속성은 본인이 가져가고 부정적인 속성은 모두 남탓으로 돌려버려요. 그래서 본인의 세상에서는 스스로가 현실보다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타인은 현실보다 나쁜 사람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당장 A씨만 보더라도 투사를 계속하게 된다면, 본인은 능력이 있는데 주변에는 무능력한 사람들만 존재한다며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을 주구장창 늘어놓을 거예요. 그럼 A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한 채로 외롭게 살아가게 되겠죠. 부정과 마찬가지로 투사도 현실을 왜곡하면서 자신을 고립시킬 수도 있는, 상당히 부적응적인 방어기제입니다. 


투사는 내면의 부정적인 마음을 외부로 떠넘깁니다. 그래서 투사를 반복하는 사람의 세상은 아주 부정적입니다. 주변에는 자신이 버려뒀던 부정적인 마음들만 가득하거든요.




<신경증적 방어기제 : 억압, 반동형성, 합리화>


  다음으로 신경증적인 방어기제의 순서입니다. 이전에 신경증이 개인의 취약성과 비슷한 표현이라고 말씀드렸죠. 마찬가지로 여기에 속해있는 방어기제들은 취약한 부분이 있기는 해요. 하지만 여기부터는 일상생활에서 쓸만한 차선의 방어기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설명드린 2개의 방어기제에 비해서는 사용한 뒤 찾아오는 위험들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설명드렸듯, 억압(repression)은 의식이 감당하기 어려운 생각이나 감정들을 무의식 속으로 유배시키는 과정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면 나만 손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본인의 감정에 무딘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은 본인의 감정을 자신도 모르게 억누르곤 하는데요, 이렇게 본인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마음을 억누르는 방어기제가 억압입니다. 하지만 역동적 무의식의 개념에서 설명드렸듯이, 무의식에 쌓아둔 난폭한 생각이나 감정들이 얌전히 지내지는 않아요. 억압을 자주 사용하는 A씨의 내면은 겉보기와는 달리 상당히 부정적인 감정이 들끓고 있는 상태일 수도 있어요. 그래서 무의식에 쌓아둔 부정적인 마음들이 몰래 새어 나와서 우리의 행동에 묻어 나오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무의식이 견디다 못해 한꺼번에 폭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착한 사람이 화를 내면 무섭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겠지요.


평소에 착해 보이는 사람도 감정을 완전히 삭제하지는 못합니다. 이들이 억압했던 무의식이 한번에 터져나올 때면, 이들은 누구보다 무서운 사람이 될 수도 있어요.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은 마음속과는 반대로 행동을 보이는 방어기제입니다. 사견이지만 반동형성보다는 반작용 형성이 좀 더 적절한 번역이 아닌가 싶어요. 원래 힘과는 반대로 작용하는 반작용의 힘처럼, 반동형성은 상대방에게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을 느끼더라도 긍정적인 행동을 하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이 방어기제를 설명할 때 반드시 예시로 사용하는 속담이 있습니다. 바로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라는 표현입니다. 렇게 음과는 정반대로 행동하는 사람의 속은 참 답답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에서는 갈등이 생길 수도 있는 사람과 원만하게 지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겠죠. 결국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방어기제인 셈입니다. 하지만 억압과 마찬가지로, 반동형성을 지나치게 사용하다 보면 정신적인 에너지가 상당히 소진될 수 있습니다. 반동형성긍정적인 행동을 하기 위해서 무의식 속에서 어나오려고 하는 난폭한 마음들을 러야만 하거든요.


  합리화(rationalization)는 좌절, 실망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도록,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방어기제입니다. 좌절과 실망은 초자아가 제시하는 이상과 도덕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발생합니다. 이전에 초자아가 부모님의 가치관으로부터 학습된 것이라고 설명드렸죠. 어렸을 때 부모님을 실망시키기 싫어서 변명을 하듯이, 합리화는 자신의 초자아를 실망시키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 변명하는 과정입니다. A씨도 합리화를 통해 일정이 촉박했다며 자신보다는 주어진 환경을 탓할 수 있게 되어 마음이 편해졌죠. 이처럼 합리화는 지나친 경우에는 투사처럼 현실을 왜곡할 수도 있지만, 초자아를 달래며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좋은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합리화는 신경증적 방어기제로 분류됩니다. 하지만 합리화의 정도가 심해지면 자기객관화가 전혀 안되거나 주변으로부터 변명만 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겠죠. 다른 방어기제와 마찬가지로 적당히가 필요한 방어기제입니다.




<성숙한 방어기제 : 억제, 유머, 승화>


  그렇다면 성숙한 방어기제들은 어떤 장점들이 있을까요? 말 그대로 유머(humor)는 익살스러운 표현을 통해 현실에서 오는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으로부터 한 발짝 벗어나는 방어기제입니다. 현재 처한 현실을 부정 정하거나 투사(남탓)하지 않고도, 웃으며 여유 있게 상황을 바라보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죠. 그래서 유머는 성숙한 방어기제라고 합니다. 워낙 일상생활에서 잘 쓰고 있는 단어라고 생각해서 이 정도로만 설명하고 넘어가도록 할게요.


  다음으로 억제를 볼게요. 억제와 억압은 철자뿐만 아니라 뜻도 비슷해서 혼동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신경증적인 방어기제인 억압(repression)과 달리 억제(suppression)는 성숙한 방어기제입니다. 억압은 불편한 마음을 무의식에 묻어두지만 억제는 전의식에 묻어두는 차이가 있어요.


  억압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해 다음과 같은 것들을 희생해야만 합니다. 첫 번째, 자신도 모르게 정신적 에너지가 많이 사용니다. 빙산의 개념으로만 생각하더라도, 맨 위층에 존재하고 있는 의식에서 맨 아래층의 무의식으로 분노를 억누르려면 많은 에너지가 소모될 수밖에 없겠죠. 두 번째, 무의식에 넣어둔 마음들은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버립니다. 무의식에 존재하는 난폭한 분노들은 기회가 오면 언제든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지만, 막상 우리는 무의식의 마음을 인식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억압은 난폭한 마음에 대한 통제권을 잃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정신적 에너지를 절약하고 감정에 대한 통제권을 갖기 위해서라도, 감당이 가능한 마음은 무의식이 아닌 전의식에 보관해두는 것이 낫겠죠. 


  게다가 감정을 무의식에 묻어두다 보면 감정과 관련된 기억들까지도 함께 무의식에 묻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억압을 사용했던 A는 B에 대한 분노뿐만 아니라 B에게 피드백받았던 사실도 함께 무의식에 파묻히게 되면, A가 이번 일을 통해서 얻은 교훈이 무의식 속으로 사라져버리겠죠. B에게 피드백받았던 기억들은 물론 화를 다시 유발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나중에 새로운 보고서를 쓸 때 참고하면 자기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소중한 기억입니다. 하지만 억압을 사용했던 A는 무의식에 넣어둔 피드백을 기억하지 못하니 앞으로 보고서를 쓸 때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도 있겠죠. 반면에 억제를 사용하는 A는 전의식에 넣어둔 피드백을 잠시 떠올리면서 화가 다시 날 수도 있겠지만, 얻었던 교훈을 통해 앞으로 보고서를 쓸 때 이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억제를 자주 사용하는 사람들은 아픈 생각과 감정들을 되돌아보며 성장통을 겪을 수는 있지만, 그만큼 자신의 모습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맞이합니다. 여러모로 억압보다는 억제가 성숙한 방어기제인 셈이에요.


  마지막 순서는 승화입니다. 승화(sublimation)는 본능적 욕구나 참아내기 어려운 충동을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있도록 변형시켜 표현하는 것입니다. 앞서 들었던 예시에서 A는 B를 때리고 싶은 마음으로 테니스를 쳤었죠. A는 B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대신에, 테니스 라켓을 휘두르면서 덤으로 본인의 건강도 챙길 수 있었어요. 승화는 내적 갈등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줄 뿐만 아니라, 욕구나 충동이 가지고 있었던 에너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A가 승화를 통해 테니스를 치며 건강을 챙길 수 있었던 것처럼요. 이러한 장점 덕분에 전체 방어기제 중에서 승화가 가장 좋은 방어기제라고 표현할 때도 있습니다. 그만큼 승화는 차별화되는 장점이 있는 방어기제입니다.


억압은 무의식까지, 억제는 전의식까지 마음을 억눌러둡니다. 억압을 위해서는 많은 정신적 에너지가 소모되고, 억압한 마음들은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버린 위험한 마음이 됩니다.




  아무래도 미성숙한 방어기제를 사용할 때 자아가 힘들지 않게 일할 수 있기에, 우리는 성숙한 방어기제보다는 미성숙한 방어기제에 본능적으로 마음이 이끌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미성숙한 방어기제가 모든 상황에서 반드시 나쁜 것도 아니에요. 부정의 방어기제에서 들었던 극단적인 2개의 예시처럼, 지나치게 견디기 힘든 마음상태라면 성숙한 방어기제만 고집하기보다 미성숙한 방어기제를 사용해서라도 빨리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 나은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한 가지의 방어기제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여러 가지의 방어기제를 가지고 있어서 상황에 맞게 최선의 방어기제를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것 건강한 자아에서 필요한 일입니다.


  이번 글에서 이 하나는 꼭 알아가시면 좋겠습니다. 마음이 이끌린다고 해서 평소에도 성숙하지 못한 방어기제들을 통해 현실의 과제들을 급히 쳐내다 보면, 결국은 우리의 마음이나 대인관계에 후폭풍이 찾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빠르게 현실을 처리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셈이에요. '급할수록 돌아가라'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은 속도가 느리고 답답해 보일지라도 좀 더 성숙한 방어기제를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는 건 어떨까요.




여러분의 마음은,
성숙한 방어기제를 쓰고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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