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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스한 골방 Jan 29. 2024

남탓만 하는 사람은 결국 외로워져요

멜라니 클라인의 편집분열자리, 우울자리

  다른 사람과의 갈등이 있을 때 우리는 누구의 잘못이 더 큰지 따져보곤 합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당연히 해볼 수 있는 일이고 분명 대인관계에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지요. 예를 들어 나의 잘못이 컸다면 앞으로 고쳐나가면 되는 것이고, 상대방의 잘못이 컸던 일이라면 사과를 받고 넘어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사람 간의 갈등에서는 옳고 그름의 기준을 정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한 연인의 예시를 함께 보면 어떨까요.


혼자 지내는 것이 편한 A와 혼자 지내는 것이 불편한 B는 1년째 연인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A와 B는 다른 가치관들은 서로 잘 맞는데요, 함께 보내는 시간이 대해서는 유독 서로 의견이 맞지 않습니다. 현재 A와 B는 주 3회 정도 데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A는 B와 함께하는 시간이 지나치게 많다고 생각하고 반대로 B는 지금도 A와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누구의 잘못일까요?


  위의 문제는 사람들의 가치관에 따라서 충분히 답이 달라질 수 있겠죠. 이처럼 사람 관계에서는 딱히 정답이랄 게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어느 한쪽이 명백하게 잘못한 갈등도 분명 존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 간의 가치관 차이에서 오는 갈등도 적지 않아요. 이처럼 한 사람 잘못보다는 두 사람의 차이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경  많기에, 대인관계에서의 갈등은 잘잘못을 따지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


  만약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도움되지 않는 갈등 상황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갈등을 풀어나가야 할까요? 이런 고민들에 대해서 오늘 이야기할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대상관계이론(object-relations theory)이 도움이 될 수 있기에 소개드리려고 합니다




  프로이트의 이론에 반대하면서 출발한 클라인의 대상관계이론은, 이제까지 이 책에서 설명드렸던 프로이트의 이론과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 자아, 방어기제와 같은 개념들을 통해서 '한 사람'이 가진 내적갈등을 탐구했습니다. 반면에 클라인의 대상관계이론은 '두 사람'의 상호작용에서 생기는 내면세계의 변화들에 좀 더 초점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대상관계이론은 한 사람의 내면보다는 두 사람의 관계에 관심이 많습니다.


  대상관계이론의 핵심개념인 대상관계는 상당히 추상적이고 난해한 개념이기에 우선적으로 설명드리려고 해요. 우리는 인생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겪으면서 대인관계에 대한 기억들을 무의식적으로 저장합니다. 자전거를 타다 보면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자전거 타는 방법을 기억할 수 있죠. 이와 비슷하게 대인관계에서의 주관적인 경험들도 우리 마음에 자연스럽게 기억됩니다. 기록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 대한 기억조차도 예외가 되지 않아요. 안타깝지만 사람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모든 과거의 관계들이 마음에 기록되거든요.


  거에 있었던 대인계는 '나에 대한 이미지''타인에 대한 이미지'로 나누어져서 기록됩니다. 어떨 때는 내가 나쁜 사람이고, 상대방이 좋은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죠. 이때 나는 나쁜 이미지로 기억되고, 타인은 좋은 이미지로 기록됩니다. 반대의 경우도 당연히 있을 수 있겠지요. 이렇게 기억된 과거 관계에서의 이미지들은 현재의 관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나쁜 이미지로 기억했던 사람은, 현재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을 쁘게 생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과거 사람들의 관계에서 자신을 좋은 이미지로 경험했던 사람은, 현재의 관계에서 같은 문제를 겪더라도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처럼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미지는 분명 과거의 관계에서 기록되어 것이지만, 동시에 현재의 관계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설명에서 클라인은 '타인'을 '대상'이라는 표현으로 바꾸면서, 자신과 대상에 대한 이미지를 대상관계라고 표현했습니다. 정리하면 대상관계는 현실의 관계에 영향을 주고 있는, 과거의 관계에 대한 주관적이고 무의식적인 기억이라고 할 수 있어요. 참고로 앞으로는 타인보다는 대상이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될 예정이라 참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제까지 대상관계의 뜻과 중요성을 설명드렸어요. 이제는 대상관계가 어디서 오는지 설명드리려 합니다. 뭐든지 첫단추를 잘 꿰야한다는 말이 있듯이, 인생에서 첫번째로 겪는 관계가 대상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첫번째로 경험하는 관계가 무엇일까요? 바로 갓난아기와 엄마의 니다. 그래서 대상관계를 설명하려면 태초의 관계, 즉 아이-엄마 관계를 살펴봐야만 합니다. 갓 태어난 아이는 배가 고파지면 생존을 위해서 본능적으로 어머니의 가슴을 찾아요. 이때 즉각적으로 아이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어머니 아이 입장에서 천사같은 좋은 대입니다. 반대로 즉각적으로 배고픔을 해결해주지 못하는 어머니는 아이에게 악마같은 나쁜 대 돼요. 이때 아이 마음은 참 갈대 같습니다. 평소에 배고픔을 잘 해결해줬던 엄마를 천사같은 좋은 대상으로 생각해왔던 아이라도, 한번 배고픔이 즉각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바로 엄마를 악마같은 나쁜 대상이라고 생각해요. 엄마 입장에서는 참 억울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때의 아이는 어려도 너무 어려서 세상 돌아가는 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 중심적인 상태입니다. 그래서 안타깝지만 아이는 아직 엄마의 고충까지는 살펴볼 수는 없고, 아이의 세계에서 엄마는 천사가 되었다가 악마가 되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갓난아기는 단순해서 사고가 매우 극단적입니다. 배고픔을 바로 채워주는 엄마는 천사와 같은 매우 좋은 대상이고, 배고픔을 바로 채워주지 않는 엄마는 악마와 같은 매우 나쁜 대상입니다


  그렇게 아이는 악마와 같은 나쁜 대상을 원망하며 공격하고 싶은 충동, 즉 공격성(agression)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누군가를 공격하고 싶은 충동이 생기면 억누르기가 쉬우시던가요? 공격성은 원망과 분노와 함께하면서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위험한 충동이에요. 그래서 아직 태어난지 얼마되지도 않은 아이가 공격성을 견뎌내는 것은 많이 버거운 일이에요. 그래서 아이 견디다 못해 자신이 느끼는 공격성을 나쁜 대상에게 떠넘기게 됩니다. 쉽게 말해 내면의 공격성을 감당하지 못한 아이가 '내가 엄마를 공격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엄마가 나를 공격하고 싶은 거야!'라고 남탓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에요. 이전에 남탓의 방어기제가 투사라고 설명드렸죠. 그래서 정신분석적으로 이 상황을 두고 '공격성의 투사'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럼 지금까지의 상황을 아래의 그림으로 살펴볼게요.  


아이는 엄마를 공격하고 싶은 마음(공격성)을 엄마에게 떠넘깁니다. 투사를 통해서 이제 공격자는 아이에서 엄마로 바뀌었고, 아이의 내면에는 공격성이 없습니다.


  이제 공격성은 아이에서 엄마에게로 떠넘겨졌고, 이제 내면에 공격성이 사라진 아이의 마음은 평온해질 수 있었어요.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아이의 공격성은 완전히 사라진게 아닙니다. 그저 공격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이에서 엄마로 바뀐 것 뿐이에요. 아까 전에 공격성이 '공격하고 싶은 충동'이라고 설명드렸죠. 공격성을 품고 있는 사람이 나의 주변에 있다는 것은, 누군가를 공격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면 공격성의 투사를 했던 아이의 세상이 달리 보이실 수 있어요. 이제 아이의 입장에서 봤을 때, '내가 엄마를 공격하고 싶다'는 사라졌지만 '엄마가 나를 공격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라는 허구의 사실이 새롭게 생기게 되었어요. 어린아이에게 엄마가 자신을 공격할 것 같다는 생각은 상당히 공포스럽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엄마가 자신을 공격할 것 같다고 착각하면서 현실보다도 더 많은 위협을 느끼고 결국 불안에 떨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공격성을 견디기가 버거워서 엄마에게 떠넘겼더니, 엄마가 나쁘고 무서운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죠. 결국 이 아이는 엄마가 주는 사랑은 제대로 느끼지도 못한 채로, 세상을 더 외롭고 불안하게 느끼면서 고립되어 갑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대인관계를 대상관계로 설명해 볼까요. 대상(엄마)에 대한 이미지는 '나를 공격하고 싶어 하는 나쁜 대상'이겠죠. 반면에 나에 대한 이미지는 '나쁜 대상이 가하는 위협때문에 불안에 떨어야만 하는 피해자'가 됩니다. 이런 패턴의 대상관계를 두고 클라인은 편집-분열자리(paranoid-schizoid position)라 이름 붙였습니다. 편집-분열이란 의심이 많아 고립된 상태를 의미하는데요, 이 상황을 잘 표현하는 적절한 단어가 아닌가 싶어요.




  클라인은 생후 6개월까지의 아이는 편집-분열 자리에만 머무른다고 봤습니다. 생후 6개월이 지나면 아이는 즉각적으로 배고픔을 해결해 준 좋은 엄마와, 즉각적으로 배고픔을 해결해주지 못했던 나쁜 엄마가 사실은 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드디어 깨닫게 됩니다. 이 사실은 아이에게 정말 충격적인 상황이 될 수 있어요. 천사 같던 좋은 대상과 악마 같던 나쁜 대상이 사실은 같은 사람라니! 이제 아이는 어머니를 볼 때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면서 혼란스러워집니다.


엄마는 바로 밥을 줄 때도 있고, 늦게 밥을 줄 때도 있어.
그래서 엄마는 좋은 사람일 때도 있고, 나쁜 사람일 때도 있어.
그럼 지금의 엄마는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야?


  이렇게 한 대상에 대한 정반대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며 갈팡질팡하는 감정상태를 양가감정(ambivalence)라고 합니다. 애증이 대표적인 양가감정 중 하나예요. 애증의 대상을 보고 있으면 우리의 마음이 상당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저 사람을 좋아하는 건지 싫어하는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거든요. 이처럼 나이를 먹은 우리들도 처리가 쉽지 않은 양가감정을 생후 6개월이 지난 아이가 감당하는 것은 상당히 괴로울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편집-분열자리 때처럼 남탓만 하고 지내면서, 대상이 무조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지낸다면 우리의 마음이 혼란스러울 이유는 없겠지요. 무슨 갈등이든 간에 '네가 잘못한 거잖아'라고 투사만 하면 세상 편하게 갈등을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남탓을 반복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과의 갈등이 혼란스럽지도 않고 오히려 쉬운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남탓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은 언젠가 호되게 댓가를 치르게 됩니다. 결국에는 남탓에 질려버린 주변 사람들이 떠나가게 되고 결국 홀로 남게 되거든요.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애증을 알게 된 아이의 마음을 살펴볼게요. 아이는 남탓만 하면서 지내기에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엄마는 밉기만 한 사람이 아닌, 고맙기도 한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원망스럽기만한 사람에게는 남탓을 해도 속이 편할 수 있겠지만 고마운 사람에게 어떻게 남탓을 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아이는 이제까지 해왔던 공격성의 투사를 포기하고 자신의 내면에 공격성을 쌓아두기 시작해요.



투사하지 못하는 아이의 내면에는 점점 공격성이 쌓여만 갑니다.


  이 부분에서 공격성이 무서운 점이 나옵니다. 다들 화를 참다 보면 결국 자신에게 화가 난다라는 얘기를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거예요. 이처럼 공격성은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늘 대상을 찾아다녀서, 주변에 공격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면 결국에는 자신을 공격하게 됩니다. 이번 아이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아이는 스스로를 공격하고 자책하면서 우울한 감정상태로 빠지게 됩니다. 대상관계에서 대상에 대한 이미지는 '나쁜 사람이자 동시에 좋은 사람'이 되고, 자신에 대한 이미지는 '좋은 대상을 공격하고 싶어 하는 나쁜 사람'이 됩니다. 이 대상관계를 멜라니 클라인은 우울자리(depressive position)라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설명드렸던 편집분열자리와 우울자리는 멜라니 클라인의 대상관계 이론에서 핵심적인 단어들입니다. 그래서 이번 이야기를 다음의 예시를 통해서 정리해보려고 해요.


어린아이가 배가 고프다며 보챕니다. 평소의 엄마는 아이에게 밥을 잘 챙겨주는 편이었는데, 오늘따라 엄마가 해야 될 일이 많네요. 그래서 엄마는 본인이 해야할 일을 하느라, 아이의 배고픔을 바로 해결해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이때 아이의 마음은 어떨까요?


<편집분열자리의 경우>


  아이는 배고픔을 해결해주지 않는 엄마가 나쁘기만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미워하는 엄마를 공격하고 싶은 충동이 생깁니다. 하지만 아이는 투사를 통해 자신의 공격성을 어머니에게 떠넘기면서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대신 큰 문제가 생겼어요. 이제는 엄마가 자신을 공격하는 무서운 사람이 되었거든요. 그래서 편집-분열 자리의 아이는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 오히려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하면서 불안감에 시달립니다. 사실 이 불안감은 투사 후의 착각에서 오는 부정적인 감정에 불과하지만, 막상 아이는 엄마가 나를 미워한다는 생각 때문에 현실의 엄마가 주고 있는 사랑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편집분열자리의 아이는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외롭기만 한 세상을 힘들게 살아갑니다.


<우울자리의 경우>


  엄마는 배고픔을 해결해주지 않는 엄마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평소의 엄마가 자신에게 해줬던 좋은 모습들을 떠올립니다. 아이에게 엄마는 애증의 대상이기 때문에 마냥 공격성의 투사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공격성을 투사하지 못하고 자신의 내면에 쌓아두기 시작해요. 엄마에게 떠넘겨지지 못했던 공격성은 결국 아이를 공격하고, 아이는 스스로를 공격하고 자책하면서 우울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아이는 현실에서 엄마가 자신을 사랑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편집분열자리에 있는 아이처럼 엄마가 나를 미워한다는 착각은 하지 않고 있기에, 자책에서 오는 우울감을 겪긴 해도 현실에서 받는 엄마의 사랑을 받아가면서 행복한 관계를 유지해갈 수 있습니다.




  오늘 드린 이야기는 사실 내면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인지라 뜬구름 잡는 듯한 말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만큼 이론 자체가 난해하기도 합니다. 이후에는 클라인의 대상관계이론이 내면세계에만 관심이 있고, 현실의 관계에는 그렇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며 정신분석가들에게 비판을 받는 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멜라니 클라인의 이론들은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줄 수 있는 의미가 있습니다. 갈등이 있을 때 상대방을 나쁜 대상으로 생각하기만 하고, 투사를 통해서 나의 부정적인 마음들을 해결하려고만 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편집분열자리의 아이처럼 사람들이 나를 미워한다고만 느끼고 외로운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겠지요.


  남들과의 갈등이 있을 때, 무조건적인 원망에 빠져있기보다는 고마웠던 마음도 조금은 떠올려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애증을 가지면 그때는 나의 감정이 혼란스럽고 많이 힘드실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의 갈등이 있다고 해서, 원망과 남탓만 반복하다보면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좋았던 기억들은 사라지게 됩니다. 미운 사람과 함께 했던 기억이 뭐가 좋다고 우리 머릿속에 남겨두겠어요.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다 보면 크고 작은 갈등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과 갈등을 한번 겪을 때마다 편하다고 해서 원망과 남탓만 반복하면 세상에 고마운 사람이 사라지게돼요. 반면에 갈등이 있더라도 상대에게 조금이라도 고마워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갈등이 한바탕 지나간 뒤에도 세상에 고마운 사람들이 남아있기에 외롭지 않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람들과의 갈등에서 서로가 잘못했다면서 날카롭게 잘잘못을 따지면 이들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에 서로의 잘못을 찾기보다는 그래도 고마웠던 점들을 떠올려가면서 부드럽게 대화를 이어나간다면 이들은 갈등 후에도 튼튼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전자는 편집분열자리에 가깝고 후자는 우울자리에 가깝습니다. 이처럼 우울자리의 삶은 남탓을 포기해야 하고 나를 자책해야 하기에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의 주변에 좋은 사람이 남아있다면 행복해지는 것은 결국 우리들 자신입니다. 그러니 나의 소중한 관계들을 유지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편집분열자리보다는 우울자리의 삶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미워도 다시 한번,
그 사람에게 고마웠던 일을
하나라도 떠올려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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