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기름 장수와 고문 기술자

by 쪼교


나는 지금까지 여러 곳에서 살아왔다.
좋은 대학에 가라는 부모님의 바람으로 고려대 옆 종암동에서 지낸 적이 있었고, 신도시의 편리함을 꿈꾸며 한때 신도시였던 일산으로 이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애착이 가고, 기억 깊숙이 남아 있는 곳은 어린 시절을 보낸 용두동이다. 세월이 흘러 이제 그 공간들은 사라지고, 내 기억 속에서 이야기로만 살아 있다.


남진의 노래 〈님과 함께〉를 들으면 언제나 고향을 떠올린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라는 노랫말과 달리, 내가 태어난 고향에는 초원도, 그림 같은 집도 없었다. 비 오는 날이면 아스팔트 틈새에서 기름때가 흘러나와 퀴퀴한 냄새가 퍼지던 곳. 그곳이 바로 내 고향이었다.

매연이 가득하고 쇠 깎는 소리, 용접 불꽃이 날리던 작은 기계 상가들이 모여 있던 동네. 주민들 가운데 호흡기 질환을 앓는 이가 많았고, 시커먼 청계천물에 피부병을 얻은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어른들은 청계천에 성냥을 던지면 불이 붙는다고 겁을 주곤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청계천은 정화되었고, 쓰레기 더미 자리에 나무와 꽃들이 피어났다. 나는 오랫동안 그곳을 떠나 살았지만, 가끔 청계천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어린 시절의 불쾌한 기억들이 새롭게 단장된 풍경 속에서 희미하게 변해가는 것을 느끼는 것이 좋았다. 무엇보다 내가 즐겨 찾던 추어탕집이 아직도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점심 무렵 그 집에 들어서면 수많은 사람들의 대화와 웃음이 뒤엉켜 정신없이 흘러간다. 나는 그곳에서 허기와 삶이 한 그릇의 국물에 녹아드는 장면을 목격하곤 했다.


내가 다니던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도 모두 용두동에 있었다. 초등학교는 사립이었다. 용두동에는 불과 1킬로미터 거리를 두고 사립과 국립 초등학교가 나란히 있었는데, 엄마는 나를 사립학교에 보내려고 새벽부터 줄을 서 추첨번호를 받았고, 입학 면접까지 치렀다. 정작 나는 친구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것이 서글펐다. 그때는 사립과 국립의 차이를 알지 못했다. 훗날 대학까지 사립학교를 다니게 되었을 때, 엄마가 지인에게 “저 자식 학교 보내느라 뼈 빠진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남아 있다. 내가 원하지 않았던 길이지만, 늘 내 탓이 되는 것 같았다.


서울시 동대문구 용두동. 그곳은 내가 대학 시절까지 살았고, 부모님이 평생 일궈놓은 결과물이자 IMF 한파 속에서 잃어버린 공간이다. 이제는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선명한 기억은 집 옥상이다. 옥탑방에 내 방이 있었다. 독립된 공간을 원하던 나는 부모님께 졸라 옥상에 방을 얻었고, 그곳에서 매일 밤 별을 올려다보았다. 옥상에서 바라본 밤하늘은 유난히 아름다웠다. 저 멀리 반짝이던 남산타워는 마치 인공위성처럼 빛났고, 이웃 옥상에 놓인 작은 화단들을 구경하는 것도 즐거웠다. 그곳에서 나는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고, 미래를 꿈꾸며 성인으로 자라갔다.




그 시절 우리 집 건물에는 여러 세대가 함께 살았다. 1층 첫 번째는 전파사, 가운데는 미용실, 끝집은 참기름 가게였다. 우리 집은 4층 주인집이었고, 나는 전파사 아들과 미용실 아들과 함께 놀곤 했다. 놀이는 언제나 전파사에서 시작됐다. 거기에는 신기한 전자부품과 갖고 싶은 장난감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전파사 아들은 늦둥이라 원하는 건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다 지루해지면 우리는 참기름 가게 앞에서 공놀이를 했다. 그럴 때마다 참기름집 아저씨는 반짝이는 대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놀라고 타이르곤 했다.


그 아저씨는 어쩐지 배우처럼 낯이 익었다. 동네 소문에 따르면 대통령을 닮아 참기름 장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어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대통령을 닮았는데 왜 참기름을 파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전파사 아들이 말하길, 대머리 때문에 전파가 교란되고 군 통신 장비가 망가진다나 뭐라나. 아이들의 이야기는 늘 그럴싸했고, 우리는 그럴 수도 있다고 믿었다. 어느 날은 참기름통을 가득 실은 리어카를 끌고 모자를 푹 눌러쓴 아저씨의 모습이 대통령이 참기름을 파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뉴스에서 그 아저씨가 종교 활동 중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를 보았다.


미용실 아들은 나보다 한 살 어렸지만 키가 훨씬 컸고, 잘 웃지 않았다. 늘 비비탄 총을 들고 다니며 아이들에게 쏘곤 했다. 어느 날 전파사 아들이 그 총에 눈을 맞자, 전파사 아주머니가 미용실에 뛰어들어가 큰 소동이 벌어졌다. 양쪽 아주머니는 머리칼을 붙잡고 몸싸움을 벌였고, 동네는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때 나는 미용실 아주머니가 무서웠다. 붉은 립스틱, 통통한 체격, 무표정한 얼굴, 그리고 가끔 나를 내려다보는 눈빛이 서늘했기 때문이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미용실집 남편은 과거 경찰이었고, 악명 높은 고문기술자였다. 민주화 운동가들을 고문한 그는 시대가 바뀌자 영웅에서 악마로 추락했다. 동네 사람들은 다 알면서도 모른 체했고,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가끔 미용실 앞을 서성이곤 했다. 아이의 눈에는 보이지 않던 진실이, 세월이 지나며 하나둘 드러났다. 그 고문기술자는 훗날 목사가 되었다고 했다.




그 시절, 우리 동네에는 세상 무서울 것이 없던 고문기술자가 있었고, 대통령을 닮았다는 이유로 생계를 위협받던 참기름 장수가 있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들 모두는 종교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신은 정말로 그들에게 용서를 내렸을까.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로 모두가 위로받고, 용서받을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언젠가 나 또한 용서받을 수 있을까.

수십 년이 지나 어느 일요일, 나는 엄마와 함께 추어탕을 먹으러 다시 그 동네를 찾았다.

엄마가 골목 어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아줌마 기억 안 나?”


고개를 돌린 순간,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미용실 아주머니였다. 헝클어진 백발, 검게 그을린 얼굴, 떨리는 손으로 폐지를 줍고 있는 노파. 그녀는 골목길 한쪽에 주저앉아, 세월의 무게를 온몸으로 짊어진 듯 보였다.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슬펐다.

만약 인생을 하나의 스펙트럼으로 나눈다면, 그녀는 어디쯤 와 있었던 걸까.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스펙트럼의 어디에 서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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