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묻힌날...

by 쪼교


나는 그때 회사 정문 앞을 지나고 있었다.
여느 날과 같이, 정문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숨이 막혀오기 시작했고, 온몸의 신경줄이 어김없이 팽팽하게 조여왔다. 바람결까지 잔뜩 날카로워져 있는 듯했다. ‘오늘은 또 어떻게 버텨야 하나.’ 마음속에서 늘 하던 독백이 스스로를 조용히 압박했다.


그런데 그때 내 눈에 작은 무언가가 걸렸다. 회사 입구 한쪽, 낡은 화단 옆 아스팔트 위에 고양이 한 마리가 길게 누워 있었다. 내가 아는 녀석이었다. 회사 안팎을 오가며 살던 길고양이, 틈틈이 내가 사료를 챙겨주곤 했던 녀석.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상하게도 녀석은 사람이 다가오는데도 미동조차 없었다. 다가가 발끝으로 살짝 툭 쳐 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녀석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나는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회색 빛 도로 위로 흩어진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치고,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가 멀게 들렸다. 길고양이의 죽음, 드문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죽었을까. 무엇을 잘못 먹었을까. 적에게 불의의 기습을 받았을까. 도로 위의 작은 몸뚱이가 내 하루를 멈춰 세웠다.


곧이어 녀석이 낳은 새끼들이 떠올랐다. 내 기억에 세 마리였는데, 그 녀석들은 어떻게 될까. 죽은 어미보다 새끼들이 걱정스러웠다. 마음 한쪽이 묘하게 무거워졌다. 왠지 모를 책임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문득 집에 있는 보리가 생각났다. 저 녀석도 보리처럼 주인을 잘 만났더라면 따뜻한 방에서 맛있는 사료를 먹으며 살 수 있었을 텐데…. 내가 느끼는 감정은 어쩌면 죄책감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그 고양이는 내게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아직 새끼였을 때, 나는 보리가 먹지 않는 간식을 챙겨다 주곤 했다. 녀석은 처음엔 나를 경계하며 선뜻 다가오지 않았다. 나는 발밑에 간식을 내려놓고 몇 발짝 물러섰다. 그제야 녀석이 슬금슬금 움직였다. 그러나 일단 입을 대기 시작하면 과감하게 먹었다. 체구는 앙증맞게 작아도 겁이 없었다. 아직 어렸기 때문일까. 다 자란 고양이들은 오히려 더 겁이 많았다. 먹이를 보고도 눈만 굴리고 있다가, 내가 자리를 피해줘야만 겨우 다가와 먹곤 했다. 길고양이들의 그런 습성은 볼 때마다 신기했다.


가끔 나는 생각했다. 저 약하고 작은 동물들이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버텨가고 있을까. 호의적이지 않은 인간 세상 속에서 구걸하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저렇게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을까. 전날에도 나는 그 길고양이 가족에게 먹이를 주고 멀찍이서 그들이 먹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몇 시간이고 그들을 바라본 적도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고양이를 지켜보는 것조차 결코 지루하지 않다. 얼핏 졸고 있는 것 같은 순간에도 그들의 귀는 예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에겐 사방이 위험이고 적이었다. 늘 경계하며 사는 삶이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것이 본능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본능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과연 내 본능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삽을 가져와 녀석의 사체를 들어올렸다. 작은 몸이 내 팔 안에서 힘없이 흔들렸다. 회사 한쪽 공터로 들고 가 잡초가 무성한 구석을 골랐다. 혹시나 공터가 개발된다 하더라도 파헤쳐질 가능성이 없는 곳이었다. 다행히 땅이 아직 단단히 얼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구덩이를 파고, 고양이를 안쪽으로 눕히듯 밀어 넣었다. 흙으로 덮으며 삽등으로 흙을 살살 두드려 주었다. 마치 이별의 인사를 대신하듯. 새끼 때부터 봐온 녀석이라 그럴까, 가슴이 아렸다. 내 고양이가 아님에도 그랬다. 매장이 끝났지만 나는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한참을 서 있었다. 가슴속에서 치밀어 올라오는 감정이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두려움일까. 죽음에 대한 경외심일까. 알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다. 내 감정은 풍경화 같았다. 감상은 할 수 있지만, 닿을 수 없는 풍경화.


사무실로 올라가 창가에 기대섰다. 막 묻어둔 공터를 내려다보았다. 아무래도 내 잘못인 것 같았다. 새끼일 때 집으로 데려갔어야 했다. 그러면 더 오래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필사적으로 이런 생각에 매달렸다.


‘그래, 내 잘못은 아니야. 죽음에는 수천 가지 이유가 있어. 나는 그중에 하나일 뿐이야.’


모든 걸 잠시 잊기 위해 커피를 내렸다. 드립퍼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고요하게 울렸다. 커피 향이 머릿속에 퍼지자 조금 나아졌다. 묻어주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계속 찜찜했을 것이다. 그런데 다음 순간, 또 다른 찜찜함이 느껴졌다. 정말 이걸로 끝인가.


나는 사무실을 나서 그 녀석이 남겨둔 새끼 고양이들에게 갔다. 녀석들은 어미가 죽은 줄도 모르고 서로 뒤엉켜 놀고 있었다. 아니다. 아마도 알고 있을 것이다. 어미가 죽었을 때 슬펐을 것이다. 낑낑거리며 나름 애도도 했을 것이고, 앞으로의 삶이 막막해 고통스러워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 고통을 잠시 접어두고 일상 속에 몸을 쉬고 있는 것뿐이다. 새끼 길고양이들의 일상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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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들 앞에서 한동안 아무 말도 못했다. 내 처지가 그들과 닮아 있는 것 같았다. 슬프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면서 무서웠다. 나는 녀석들에게 낮게 말했다.


“너희들의 감정도 인간과 비슷할 거라 생각해. 다만 그 감정을 파헤치지 않을 뿐이지. 인간들은 뇌를 완벽하게

이해하고자 했어. 두려움이나 기쁨 같은 감정을 관장하는 어떤 부위가 있을 거라고 믿었고, 그걸 찾아내면 비밀도 쉽게 밝혀질 거라 믿었던 거야. 하지만 알면 알수록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만 알게 됐어. 만용이었지. 인간만이 그런 걸 알 수 있다는 근자감 같은 거 말이야. 너희가 알 수 없듯이 인간들도 마찬가지야. 아무리 간단한 감정이라 해도 모든 부분이 작용해야 돼. 절대 다 알 수 없어.”


나는 그렇게 녀석들을 위로했다. 내 나름의 방식으로. 나도 아직은 모르겠지만, 녀석들도 험한 세상을 길에서 살며 경험하고 느끼다 보면 조금은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죽은 어미에게 했던 것처럼 녀석들에게도 먹이를 주었다. 좀 더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며, 힘차게 내일의 세상을 살아가길 바라며….


몇 달이 지났다. 그새 녀석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그런데 덩치가 어미와 비슷해지자 한 녀석씩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세 마리가 두 마리가 되고, 두 마리가 한 마리가 되고, 결국 마지막 녀석까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놓아둔 사료는 지나가던 다른 길고양이가 먹어치우곤 했다. 세 마리 어린 고양이들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각자의 영역으로 떠났다. 아, 그렇지. 녀석들은 애초에 길고양이들이었다. 어미가 떠난 뒤로 그들에겐 집이 없었다.


나는 그들이 남기고 간 빈 공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언젠가는 나도 떠나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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