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듣는 사람, 잘 말하는 사람

by 쪼교


방금 옆 테이블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의자를 바닥에 긁었다.

끼익―, 짧고 날카로운 소리가 카페 안을 갈랐다. 순간 주변 사람들의 얼굴이 일제히 찡그려졌다. 누군가는 커피잔을 들던 손을 잠깐 멈추었고, 누군가는 미간을 찌푸린 채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나도 무심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리를 낸 사람은 민망한 듯 어깨를 움츠리고 머리를 꾸벅 숙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소리가 나는 내게는 그다지 거슬리지 않았다. 아니, 사실 거의 들리지 않았다. 내 귀 속에는 늘 ‘삐―’ 하고 울리는 얇고 길게 뻗은 선 하나가 있었다. 그것이 다른 소리를 삼켜버린다. ‘막는다’기보다는 ‘잡아먹는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나이가 들수록 그 선은 더 두껍고 선명해졌다. 청력이 점점 약해지면서 나는 주변의 소음과 내 목소리의 크기를 잘 가늠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조용한 곳에서 목소리를 지나치게 높이거나, 시끄러운 곳에서 오히려 너무 작게 말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상대방의 표정을 살폈다.


‘지금 내가 너무 크게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다시 물어보기엔 민망하지 않을까?’

‘혹시 내가 인상을 쓰고 있어 상대가 오해하는 건 아닐까?’


머릿속에서 그런 질문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하지만 일일이 설명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내 귓속의 삐 소리처럼, 내 상황도 조용히 삼켜져야만 했다. 나는 가끔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은 이러이러한 사정이 있습니다. 제 의도는 이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오해하신 것입니다”라고 미리 알려주는 자막 같은 것. 그러나 그럴 수 없기에 세상은 늘 오해로 가득 차 있었다.


“귀를 잘 관리해서 오래 써봅시다.”


진료실의 의사 선생님은 늘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잠깐의 고요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어폰을 꺼내고, 볼륨을 낮추고, 큰 음악이 있는 곳을 피했다. 노래방도 가지 않았고, 좋아하던 헤비메탈 대신 조용한 클래식 음악만 골라 들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고요와 정적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마다 귓속의 삐 소리는 더 커졌다. 나는 결국 그 소리를 덮기 위해 다시 볼륨을 올렸다.


‘이러다 귀가 완전히 망가져 삐 소리만 남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문득문득 스쳤다.


듣기에 문제가 생기면서 나는 말하기를 더 잘하고 싶어졌다. 내가 잘 못 들었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 더 정확하고 또박또박 말하고 싶었고, 질문을 한 번에 알아들은 척 자신 있게 대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는 늘 횡설수설이었다. 제대로 듣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판단해 말을 꺼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내가 최근 독서 모임에서 묘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말을 매혹적이고 유려하게 했다. 마치 문장마다 호흡과 박자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그러나 듣는 데에는 거의 관심이 없어 보였다. 책에 대한 애정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말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듯했다. 축구선수가 패스 없이 홀로 드리블만 하듯, 수비수에게 막히더라도 앞으로만 치고 나가는 선수 같았다. 그런데 그 드리블이 현란했다. 모임의 사람들은 그 현란한 언어의 궤적을 따라가느라 어느새 책의 주제를 잊은 채 그의 말에 빠져들었다.


나는 그런 그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그와 친해지고 싶었다. 그저 꼬인 마음 없이 다가가서 그의 말을 배우고 싶었다. 잘 말하는 법을 배우면, 내 못 듣는 귀가 잠시 가려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다.

어느 날,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독서 모임 장소에 도착했다. 그날따라 카페에는 아침의 먼지 냄새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창문 너머로는 아직 덜 깬 햇살이 흘러들었다. 그 사람은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평소의 현란한 언어는 없고, 그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고요 속에 잠긴 얼굴이었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말을 걸었다.


“저기요…”

대답이 없었다.


“저기요…”


그는 눈을 떴다. 불청객이 고요를 깨뜨렸다는 듯, 힐끗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갑자기 위축되어, 목소리를 더 낮추어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말씀을 잘하시는지요?”

그는 짧게 대답했다.


“둘 중 하나만 하는 겁니다. 잘 듣거나, 잘 말하거나.”

나는 얼떨결에 물었다.


“조규호 선생님은… 잘 들으시는 분인가 봅니다.”

그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아니요. 저는 불안해서 말의 공백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말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치죠. 집에 돌아가면 늘 후회해요. ‘너무 내 얘기만 한 건 아닐까, 다른 사람의 말을 빼앗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이렇게 일찍 와서 명상을 합니다. 마음을 내려놓으려고. 하지만 쉽지 않네요. 하하.”


그 고백은 내 귀 속에 잔잔하게 울렸다.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저는… 잘 듣지 못해서 가만히 있는 겁니다.”


내가 듣지 못해 조용했는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잘 듣는다’로 보였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속으로 시간을 10초 앞으로 당길 수 있는 능력을 떠올렸다. 다른 사람이 말을 할 때마다 시간을 당겨, 다시 한번 더 또렷하게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없다면, 그런 능력이라도 갖고 싶었다.

그런 내 생각을 모른 채, 그는 여전히 말을 이어갔다. 그의 말 중 대부분을 나는 놓쳤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은 편안했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서로 반반씩 섞으면 참 좋겠네요. 하하.”


그때 다른 회원들이 하나둘 도착했고, 우리의 대화는 거기서 멈추었다. 나는 커피를 가지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왔을 때 그는 다시 사람들 한가운데서 끊임없이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등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모든 것을 다 들을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keyword
월, 금 연재
이전 18화꿈속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