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자주 황천길을 생각한다.
사람들은 보통 그 길을 두려워한다. 저승사자가 데려가는 길, 끝나버리는 길, 슬픔과 이별이 기다리는 길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내 마음속 황천길은 조금 다르다. 죽음이라기보다 또 한 번의 여행 같은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어릴 때 읽었던 오래된 전설 속 길, 안개와 빛이 섞인 물결, 검은 강을 건너는 나룻배.
그 위에 서 있는 나는 두려움보다는 이상하게 기대를 느낀다.
그 기대에는 여러 겹의 사연이 있다.
내가 사랑했던 존재들이 하나둘 먼저 그 길을 건너갔기 때문이다.
먼저 떠나간 고양이들, 조부모님, 어린 시절의 친구들.
언젠가 그 길을 걷게 된다면, 그 아이들이 나를 알아보고 꼬리 치며 달려올 것만 같다.
내가 어린 시절부터 부러워하던 옛사람들과도 우연히 마주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상상을 하면 황천길은 단순히 끝이 아니라,
잃어버린 것들과 아직 만나지 못한 것들이 함께 있는 미지의 길이 된다.
나는 그 길을 구체적으로 상상해 본다.
새벽의 미묘한 빛이 번지는 길, 노란 샘물이 길이 되어 발아래로 잔잔히 흘러간다.
왼쪽에는 오래된 집들의 처마가 안갯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고,
오른쪽에는 작은 들판이 펼쳐져 있고, 그 위에 무수히 많은 발자국들이 교차해 있다.
어떤 발자국은 고양이의 것이고, 어떤 발자국은 오래전 죽은 친구의 것이다.
그 길을 따라가면 언젠가 그들과 다시 마주칠 것만 같다.
“이리 와, 어서 와”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저쪽에서 들리는 듯하다.
이런 상상을 하다 보면 현실에서의 내 삶이 거꾸로 비친다.
회사와 연구실, 늘 반복되는 일과,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들.
나는 그곳에서 점점 무표정해지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혼자 걸을 때, 창밖으로 비치는 하늘과 빛이
어쩐지 저 황천길과 닮아 보였다.
내가 매일 오르내리는 계단, 오랫동안 열어본 적 없는 문,
냄새가 밴 낡은 실험복과 먼지 쌓인 책장.
이런 것들이 내 마음속에서 황천길과 섞여 하나의 긴 꿈으로 펼쳐진다.
그래서인지 나는 종종 꿈에서 황천길을 걷는다.
꿈속에서 그 길은 끝없이 이어져 있다.
처음에는 산책로처럼 평화롭지만, 걸을수록 더 깊어지고 더 낯설어진다.
길가에 피어 있는 꽃들도 처음엔 익숙한 들꽃이지만
점점 보지 못한 색깔과 모양으로 변해 간다.
이름 모를 새들이 머리 위를 날며 맑은 소리를 내다가
어느 순간에는 여자들의 얇은 웃음소리로 바뀌어 귓가를 스친다.
그 소리는 나를 조롱하는 듯하면서도, 끝내 이곳까지 오게 한 길잡이의 속삭임 같다.
길 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조상을 닮은 얼굴, 떠나간 반려동물의 그림자,
생전에 팬이었던 연예인의 웃음, 이름 모를 사람들.
그들은 나를 스쳐 지나가면서도 한 번씩 돌아보며 미소를 짓는다.
나는 그 미소를 보고 잠시 멈춰 선다.
이 길이 단순히 죽음의 길이 아니라, 나를 이루고 있는 모든 기억들이 모여 있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황천길이란 사실 저 멀리 있는 저승이 아니라,
이미 내 마음속에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있던 그리움의 길일지도 모른다고.
잃어버린 것들과 아직 만나지 못한 것들이 안갯속에서 손짓하며 기다리는 길.
그 길을 떠올릴 때마다 내 삶이 조금 덜 무겁게 느껴진다.
언젠가 진짜 그 길을 걷게 된다면,
나는 지금처럼 두려움만 느끼지 않고
호기심과 기대를 함께 품어보고 싶다.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디딜 때의 떨림처럼,
오래된 집의 문을 여는 듯한 설렘으로.
아마도 황천길의 끝에는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세계가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먼저 떠난 고양이를 다시 안고,
어린 시절의 나와도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조상들과도, 생전에 그리워했던 사람들과도,
꿈속에서만 만나던 인물들과도.
그런 장면을 상상하면, 죽음은 더 이상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삶, 또 하나의 여행이 된다.
그리고 나는 그 상상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언젠가 내 발걸음이 그 길에 닿을 때,
나는 조용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리고 싶다.
“아, 드디어 왔구나. 이제 새로운 길을 걸어보자.”